기사 게재 일자 : 1997년 10월 09일
<김정일의 측근실세들/노동당>
김국태등 5인방이 ‘核’
94년7월 金日成(김일성)사후부터 본격화한 북한 엘리트 재편 조짐은 김일성 3년상이 마무리된 지난 7월이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엘리트재편의 핵심은 군수뇌들의 약진과 정무원 노장층의 퇴조, 즉 세대교체이다.

향후 북한을 이끌 세력은 주석단 서열에 공식적으로 드러나는 노동당·정무원·군수뇌들과 金正日(김정일)측근으로 구성된 비선·측근실세들로 나눠볼 수 있다.

金正日은 지난해 말 비밀연설에서 북한의 경제 현실을 지적하면서 노동당 핵심간부들의 무사안일주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그가 일단 당총서기에 부임한 이상 노동당 핵심세력은 군부와 함께 권력을 지탱해 나가야할 양대축이다.

노동당 엘리트 중 권력서열에 관계없이 金正日의 신임을 받는 사람은 당비서들인 金國泰(김국태.73·간부담당) 金基南(김기남.71·선전담당) 桂應泰(계응태.79·공안담당), 全炳浩(전병호.72·군수담당), 金容淳(김용순.63·대담담당)등 5인이다.

이 가운데 金容淳을 제외한 4인은 북한체제 유지에 사활이 걸린 핵심요직을 맡은 강경파들이다. 특히 선전담당 비서 金基南은 선동사업의 귀재로 꼽히며 金正日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수많은 ‘노작’은 물론 각종 축하문과 연하장까지 대필하는 인물로 알려져있다. 공안담당 비서 桂應泰는 북한의 사법·검찰·사회안전·국가보위분야 업무를 총괄하는 인물이며 군수담당 비서 全炳浩는 북한의 군수정책을 통괄하고 있다.

대남담당 비서 金容淳은 당엘리트 가운데 자강도 당책임비서 延亨默(연형묵)과 함께 온건개혁파로 꼽힌다. 앞으로 이들의 중용여부는 金正日의 정책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외부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노동당 조직부장 尹承寬(윤승관.62)은 최측근 인사다. 당조직부장은 당·정·군 간부들의 동향을 파악하며 인사관련 자료를 준비하는 막강한 자리이다.김일성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70년대 초반부터 金正日측근으로 활동했으며 당 선전부 부부장,당중앙위원등을 역임한후 지난 89년부터 당 조직부 제1부부장직을 맡아왔다. 金正日과 술자리를 함께 하는 인물로 알려져있다.

정무원 행정부격인 정무원에는 ‘노장’들이 많다. 이들이 직책에 걸맞은 권력을 지니고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金日成과 함께 빨치산 활동을 했거나 이후 북한체제 수립에 공을 세운 이들은 당분간 원로자격으로 직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부주석인 李鍾玉(이종옥.86) 朴成哲(박성철.84) 金英柱(김영주.76)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부총리인 金永南(73) 洪成南(홍성남.74) 崔英林(최영림.72) 金福信(김복신.72) 金潤赫(김윤혁.71) 張澈(장철.71) 孔鎭泰(공진태.72)등도 당분간 직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외교부장을 겸하고있는 金永南이 가장 실세다. 그의 휘하에 포진한 외교부 제1부부장 姜錫柱(강석주.58)는 대미, 대일 외교실무를 담당해온 핵심인물이고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 金正宇(김정우.55)는 경제외교를 이끌어온 실세다. 두사람은 모두 권력 서열 30위 밖에 있지만 절대신임을 받고있는 실력파들이다.

외교부 제1부부장 姜錫柱는 90년대초반부터 북한외교의 최일선에서 유엔과 미국을 상대로 직접 협상에 나선 인물로 외교부장 金永南 이후 북한외교를 이끌 재목으로 꼽힌다. 대외경제위 부위원장 金正宇는 미국과 일본의 대북투자에 대한 북한측 창구역할, 특히 나진·선봉에 대한 외국자본 투자유치를 담당해온 경제통이다.

군부 군부는 94년7월 金日成사후부터 金正日이 가장 공을 들여온 부문이다.

매달 각지의 군부대를 방문하며 군의 사기를 높였고 승진인사를 통해 군수뇌급의 환심을 샀다.

지난 4월13일 단행한 군인사에서 해군사령관 金鎰喆(김일철.69), 포병사령관 全在善(전재선.60), 820전차군단장 朴基瑞(박기서), 군총참모부 부참모장 李鍾山(이종산)등 4명을 대장에서 차수로 진급시키는 대대적인 승진인사를 단행한 것은 대표적인 군부끌어안기 작전으로 평가된다.

군최고실세는 호위사령관 李乙雪과 군총정치국장 趙明祿(조명록.68), 군총참모장 金英春(김영춘.66)이다. 이들은 95년2월 인민무력부장 吳振宇(오진우)장의위원회 서열에는 30위권에도 못들었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지난 1월 금수산궁전 참배 주석단 서열에서는 9.10.11위, 지난 4월 인민군창건 65주년 기념열병식 서열에는 5.6.7위를 기록했다.

인민무력부장 吳振宇·崔光(최광)이 세상을 떠난 이후 군의 연장자는 호위사령관 李乙雪(이을설)이다. 항일빨치산 출신 혁명1세대인 그는 그러나 워낙 고령이라 상징적 수준의 직책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인민무력부장 崔光이 세상을 떠난 후 인민무력부장은 현재까지 공석으로 남아있는데 金正日 권력승계후 후속인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군총정치국장 趙明祿, 총참모장 金英春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당군사부장 李夏一(이하일), 군 후방총국장 玄哲海(현철해), 군총정치국 부국장 박재경(57)과 수도권 방위를 맡은 3군단장 張成禹(장성우), 5군단장 金明國(김명국)도 ‘뜨는 별’이다. 이 가운데 5군단장 金明國은 金正日의 군부대방문을 수행하는 인물이며 3군단장 張成禹는 金正日의 최측근인 당조직부 제1부부장 張成澤(장성택.51)의 친형이어서 ‘실세중의 실세’로 볼수 있다.

친인척 및 비선세력 金正日의 측근권력자들은 그의 친인척이거나 비공식 업무라인에서 그림자처럼 가까이서 돕는 이들이다.

金正日의 최측근은 여동생 金京姬(김경희.51)와 매제 張成澤이다. 金京姬는 당경공업부장직을 맡고있으나 그의 권능은 무소불위이다. 당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인 張成澤은 金正日의 ‘오른 팔’이라고 불릴 정도다. 그는 최근 북·일간의 ‘북한거주 일본인 여성’의 고향방문합의를 타결시킨 막후인물이기도 하다.

비선인사중 廉基淳(염기순.73)은 金正日이 노동당에 첫발을 들여놓은 64년부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측근이지만 공식직책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노동당 중앙당 서기실장 직함을 지닌 李明濟(이명제.65)는 金正日의 비자금 관리는 물론 사생활 관리까지 하는 비서다. 정책건의는 물론 사생활까지 뒷바라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대학 졸업후 조선기록영화촬영소에서 촬영기사로 일하던중 김정일에게 발탁, 86년부터 서기실장을 맡고있다.

또 최용호는 문화담당 고문이라는 직함을 사용하고있으나 김정일의 기호품이나 간부들에게 나눠줄 선물 구매를 전담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李美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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