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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벽 - 유안진 [2019-04-24]
미래는 빌려다 쓰는 빚이라는데 차용증도 없이 빼앗기는 나의 미래는 왜 한마디 불평도 없을까? 어쨌든 쓰고 보자고 나는 상상한다 희망한다 나의 미래는 가난해질수록 더…
얼굴 -김연화- [2019-04-17]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느 한순간 신비스러워져요 눈이 큰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바닷가에 서있는 듯하여 그 바다로 걸어 들어가고 싶습니다 사랑…
봄햇살 -이은봉- [2019-04-10]
봄햇살은 이웃집 순이의 물렁한 혓바닥이다 내 목덜미 부드럽게 핥는다 한껏 들뜬 두 어깨 히히잉, 너무 좋아 콧소리를 내며 웃는다 봄햇살은 아랫집 영이의 커다란 초록…
제멋에 취해 -김형영- [2019-04-03]
세상을 흔드는 봄바람에 만물은 꿈꾸기에 바쁘다. 바람이 불면 꾸다 만 꿈 깨어나 산과 들을 쏘다니다가 눈 깜짝 사이 입김을 풀어 한꺼번에 꽃피우고는 제멋에 취해 제 향…
우주율 -손진옥- [2019-03-27]
콩, 콩, 콩 봄비가 콩의 정수리를 때린다 이때까지 자기가 콩인 줄도 모르고 콩콩 놀던 콩이 튀어 보고 굴러 보고 울고 웃다가 봄 산에 천둥치듯 콩! 터진다 _____________…
바람꽃 - 고정국 [2019-03-20]
바람이 꽃 속에 들면 그건 바람이 아니었네 그곳에 숨을 죽이면 그건 곧 사랑이었네 그리고 꽃잎이 지면 다시 바람이었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발라드의 끝 -황동규- [2019-03-13]
개나리 필 무렵 성했던 눈마저 황반변성 안구 주사 맞기 시작했다. 앞으론 확대경 없이 신문 읽을 생각 말게! 안됐다는 듯 서달산이 아지랑이 피워 올리고 노랗고 하얗고 …
뜨거운 말 - 권선희 [2019-03-06]
영기가 면도칼로 손목 세 군데나 긋고 수술에서 깨어났을 때 큰형 팔뚝 움켜잡고 했다던 말 나 좀 살려줘, 형 둘째 영기가 이제는 맘 잡겠다고 오른쪽 새끼손가락 자르고 …
2월과 3월 -박미란- [2019-02-27]
할머니 돌아가시고 이란성 쌍둥이 조카가 태어났다 무언가 보고 싶은 사람들처럼 모든 기다림은 3월의 달력에 희미하게 남은 2월이었어 옆을 지켜준다는 건 그 자리에 머…
월명은 밤을 껴안는다 - 한지혜 - [2019-02-20]
사천왕사의 밤 한때는 너와 나 손을 얹던 그려놓은 누이 머리 위로 드러나는 월명사 대낮에 벽화는 마음속으로 울지 않는다 검정을 두르는 붓으로 붉은 날개를 지워서 누…
벽제화원 - 박소란 [2019-02-13]
죽어가는 꽃 곁에 살아요 긴긴낮 그늘 속에 못 박혀 어떤 혼자를 연습하듯이 아무도 예쁘다 말하지 못해요 최선을 다해 병들 테니까 꽃은 사람을 묻은 사람처럼 사람을 묻…
DMZ -류인서- [2019-01-30]
블록과 블록 사이에서 햇빛으로 어두워지는 골목들 죄수처럼 허리 묶인 비무장의 바람이 초록에 갇혀 시든다 등도 아닌 가슴에 날개 문신을 한 천사가 식어 얼어붙은 열점…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 신경림 - [2019-01-23]
어린 시절 나는 일없이 길거리를 쏘다니기도 하고 강가에 나가 강물 위를 나는 물새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카사블랑카의 뒷골목을 어슬…
오늘 - 박준 - [2019-01-16]
마늘을 한 접 더 사 오는 것으로 남은 겨울을 준비합니다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은 분명하지만 새로 들여야 할 것을 잘 알지 못하는 탓에 반쯤 낡았고 반쯤 비어 있는 채로 새…
을(乙)의 눈물 -고승철 [2019-01-09]
제약회사 영업사원 뼛속까지 을(乙)이로다 갑(甲) 고객께 술 따를 때 무릎 꿇기 버릇 됐네 갑 사모님 갑질에도 파안대소 응대하네 갑 글자만 눈에 띄면 오금 저려 갑갑하네…
새해를 맞으며 - 박두규 [2019-01-02]
새해 첫 모심 오시는 숨, 기쁘게 모시고 가시는 숨, 미련 없이 여읜다. 모든 게 고맙다. 새해 꼭지를 따며 스스로에게 당부한다. 허접한 일상을 살지라도 세상의 모진 바람…
소피아 로렌의 시간 - 기혁 [2018-12-26]
노숙을 하던 파도가 발자국을 씻어준다 씻은 것들을 곱게 펴서 때 묻은 맨발에 신겨준다 들것이 도착한 다음에도 하얗게 하반신을 뽐내는 투신 출생지의 맞춤과는 달랐지…
유빙(流氷) - 김일연 - [2018-12-19]
강이 부서져 있다 강이 몸을 부수었다 해는 중천이어도 극야처럼 어둡고 광기에 물든 바람이 교하에 펄럭인다 나만이 아니었구나, 겨울을 견디는 건 허연 배를 번드쳐 너…
지하로 내려가는 다섯 사람 - 이승하 - [2018-12-12]
암흑의 세계로 내려가는 계단 계단 옆에 설치되어 있는 기계가 고장났다 가파른 삶 지나가던 사람이 그를 업었다 덜렁거리는 두 발 다른 두 행인이 빈 휠체어를 들었다 휠…
대숲 - 문현미 [2018-12-05]
저 푸르른 수직의 맑고 높은 끝자락 서늘한 침묵의 몸짓으로 해와 달과 별을 품고 서 있다 완성도, 미완성도 다만 비켜 설 뿐 비우면 비울수록 더 단단해지는 아찔한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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