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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은 밤을 껴안는다 - 한지혜 - [2019-02-20]
사천왕사의 밤 한때는 너와 나 손을 얹던 그려놓은 누이 머리 위로 드러나는 월명사 대낮에 벽화는 마음속으로 울지 않는다 검정을 두르는 붓으로 붉은 날개를 지워서 누…
벽제화원 - 박소란 [2019-02-13]
죽어가는 꽃 곁에 살아요 긴긴낮 그늘 속에 못 박혀 어떤 혼자를 연습하듯이 아무도 예쁘다 말하지 못해요 최선을 다해 병들 테니까 꽃은 사람을 묻은 사람처럼 사람을 묻…
DMZ -류인서- [2019-01-30]
블록과 블록 사이에서 햇빛으로 어두워지는 골목들 죄수처럼 허리 묶인 비무장의 바람이 초록에 갇혀 시든다 등도 아닌 가슴에 날개 문신을 한 천사가 식어 얼어붙은 열점…
그리고 나는 행복하다 - 신경림 - [2019-01-23]
어린 시절 나는 일없이 길거리를 쏘다니기도 하고 강가에 나가 강물 위를 나는 물새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카사블랑카의 뒷골목을 어슬…
오늘 - 박준 - [2019-01-16]
마늘을 한 접 더 사 오는 것으로 남은 겨울을 준비합니다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은 분명하지만 새로 들여야 할 것을 잘 알지 못하는 탓에 반쯤 낡았고 반쯤 비어 있는 채로 새…
을(乙)의 눈물 -고승철 [2019-01-09]
제약회사 영업사원 뼛속까지 을(乙)이로다 갑(甲) 고객께 술 따를 때 무릎 꿇기 버릇 됐네 갑 사모님 갑질에도 파안대소 응대하네 갑 글자만 눈에 띄면 오금 저려 갑갑하네…
새해를 맞으며 - 박두규 [2019-01-02]
새해 첫 모심 오시는 숨, 기쁘게 모시고 가시는 숨, 미련 없이 여읜다. 모든 게 고맙다. 새해 꼭지를 따며 스스로에게 당부한다. 허접한 일상을 살지라도 세상의 모진 바람…
소피아 로렌의 시간 - 기혁 [2018-12-26]
노숙을 하던 파도가 발자국을 씻어준다 씻은 것들을 곱게 펴서 때 묻은 맨발에 신겨준다 들것이 도착한 다음에도 하얗게 하반신을 뽐내는 투신 출생지의 맞춤과는 달랐지…
유빙(流氷) - 김일연 - [2018-12-19]
강이 부서져 있다 강이 몸을 부수었다 해는 중천이어도 극야처럼 어둡고 광기에 물든 바람이 교하에 펄럭인다 나만이 아니었구나, 겨울을 견디는 건 허연 배를 번드쳐 너…
지하로 내려가는 다섯 사람 - 이승하 - [2018-12-12]
암흑의 세계로 내려가는 계단 계단 옆에 설치되어 있는 기계가 고장났다 가파른 삶 지나가던 사람이 그를 업었다 덜렁거리는 두 발 다른 두 행인이 빈 휠체어를 들었다 휠…
대숲 - 문현미 [2018-12-05]
저 푸르른 수직의 맑고 높은 끝자락 서늘한 침묵의 몸짓으로 해와 달과 별을 품고 서 있다 완성도, 미완성도 다만 비켜 설 뿐 비우면 비울수록 더 단단해지는 아찔한 황홀…
눈물의 서정 - 한분순 [2018-11-28]
밤 설친 옅은 새벽 흘리고 간 별조각 밝음이 낯설어 글썽이며 머문다 먼지는 그 마른 눈물 울다 지쳐 조는 글. 고요한 밤의 입술 휘파람이 반짝인다 별과 별을 이으며 삭이…
오후의 볕에 볼을 비빈다 -한택수- [2018-11-21]
어디쯤이었을까. 그때 어머니가 동생들의 손을 놓던 곳은 파도가 다시 밀려와 해당화 덤불을 적신다. 한없이 짙푸른 바다여. 시간은 말없이 흘러 영(嶺)을 넘었고 나는 너…
요즘은 -홍사성 [2018-11-14]
책 읽어도 금방 잊으니 잘난 척할 일 없고 큰 욕심 부리지 않으니 마음 편하네 뒤늦게 철들었는가 세상과 싸울 일 없네 _________________________ 약력 : 강원 강릉 출생…
극지 행 - 정숙자 [2018-11-07]
한층 더 고독해 진다. 자라고 자라고 자라, 훌쩍 자라 오른 나무는 그 우듬지가 신조차 사뭇 쓸쓸한 허공에 걸린다 산 채로 선 채로, 홀로 그러나 결국 그이는 한층 더 짙ㅡ…
미륵사 절터 - 이혜선 - [2018-10-31]
깨져 이끼 낀 기왓장 위에 앉아 오래 놀던 적막이 바람을 깨운다 설핏 깨어난 구름 목이 긴 망초꽃 간질이며 노는 햇살 옆구리에 부처님 그림자 하나 떨구고 간다, 어제처…
지금 다시 가을 - 김남조 - [2018-10-24]
다시 가을입니다 긴 꼬리연이 공중에 연필그림을 그립니다 아름다워서 고맙습니다 우리의 복입니다 가을엔 이별도 눈부십니다 연인들의 절통한 가슴앓이도 지금 세상에…
수면장애 - 김명인 [2018-10-17]
꿈이 증폭되지만 날개가 없으니 침대 아래로 불시착이나 하지 발도 못 디디는 잠, 갈 데까지 가서 헤맨다는 생각에 수면 밖을 두리번거리는데 밤비가 성긴 빗자루로 흉몽…
귀소(歸巢) - 안성덕 - [2018-10-10]
강물 위로 날아간다 개밥바라기 등대 삼아 간다 지상의 불빛에 비친 검은 죽지, 그을음을 지우려 먹먹한 날갯짓으로 서둘러 제 몸을 친다 털어낸 검댕이 번지는 허공 둥지…
다시 가을에 - 최동현 [2018-09-19]
이 가을엔 바람이었으면 좋겠네. 마른 갈대 사이를 지나가다가 나직하게 우는. 가는 햇살이었으면, 마른 나무였으면 좋겠네. 다시 가을엔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좋겠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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