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人 匠人(14)>중요무형문화재 小木匠 강대규씨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소목장 강대규씨

장롱 반닫이 함 문갑 사방탁자 서가 책장 등 우리의 전통 목가구 만큼 소박하고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배어나오는 작품도 흔치 않다. 일제시대 조선민족미술관을 설립해 사라져가던 조선 민예품을 보존하는 데 크게 공헌한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일찍이 동양을 대표하는 목공예품으로 든 것도 바로 조선의 목가구였다.
그는 “서양을 대표하는 영국의 목공예품은 성실하고 정직하다는 느낌을 줄 뿐이지만 조선의 것에는 성실함을 넘어 자연물보다 더욱 자연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고 조선 목공예품을 극찬했다. 주변의 재료를 별다른 인위적 손질 없이 사용해 적당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조선 장인의 솜씨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5호 小木匠(소목장) 姜大奎(강대규.61·서울 성북구 정릉3동)씨는 이같은 우리 전통 목가구를 한평생 만들어 온 장인이다. 건물을 짓는 大木匠(대목장)과는 달리 소목장은 각종 목가구를 만들어내는 목수를 말한다.
건물의 실내장식 뿐만 아니라 나무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다 만든다. 그러나 시대가 변한 탓일까. 정작 정릉시장 골목에 위치한 방 두칸짜리 살림집 겸 공방에서 만난 姜씨는 “5년째 일감이 하나도 없다”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70년대부터 80년대초까지만해도 20∼30여명의 목공을 거느리고 공장도 여러 곳에 두었지만 어느새 직원들은 다 흩어지고 혼자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몇천만원대를 호가하는 수입가구들과 유명 메이커들 제품의 공세에 그많던 소규모 목공소들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 지 오래다.

“옛날 한창때는 중간업자들이 우리 목공소의 제품을 사서 수출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살기가 좋아졌다고 하는데 저는 살기가 힘들어졌어요. 가끔씩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일본인이 구입하거나 10∼20년전 이미 사갔던 제품의 수리를 부탁하는 경우가 있을 뿐입니다.”
1936년 경남 삼천포에서 태어난 姜씨는 소목장 가운데서도 다재다능한 기능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다른 소목장인 千相源(천상원.71·경남통영시)씨가 그의 장기인 回裝雷紋(회장뇌문)농을 중심으로 남도의 가구제작에 밝은 반면, 姜씨는 어릴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녀서 그런지 다양한 기술을 습득했다.

姜씨의 경우 할아버지의 직업은 기억할 수 없지만 아버지가 목수였던 것만은 분명하니까 적어도 2대째 소목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 姜又錫(강우석)은 일제때 남해안의 삼천포·여수·남해 일대에서 조선배를 잘 만드는 船匠(선장)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조선배란 당시 일본식 배와는 다른 재래식의 작은 고깃배나 나룻배 같은 목선을 말한다. 13세 때 초등학교 5학년을 중퇴하고 부친을 따라 목수일을 시작한 姜씨는 이때 부친을 도와 10여척의 조선배를 만들었다.
“집안이 가난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배웠고, 배워서 하다보니 인간문화재까지 됐다”는 것이 5형제중 차남으로 유일하게 가업을 이은 그의 辯(변)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공장이 없던 시절이라 목수들은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녀야 했다. 봄에 바닷가에서 시작한 배만드는 일은 가을이면 끝났다. 이때부터는 장롱이나 문짝 등을 만들다가 겨울이 되면 인근 사찰을 전전하며 佛壇(불단)이나 각종 佛具(불구)등 사찰에서 소용되는 물건을 만들거나 보수하면서 지냈다. 마을을 찾아다니며 참나무로 마차나 물레방아를 만들기도 했다. 6.25직후여서 가는 곳마다 목수들 할 일이 많았다고 姜씨는 당시를 기억했다.

54년 부친이 잦은 落傷(낙상)으로 배만드는 일을 그만두면서 姜씨는 서울로 올라와 철도청에 목공으로 취직했다. 그는 30세때 결혼하면서 목공소를 차려 부친과 함께 운영할 때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하며 목공을 배웠다. 이 때 다양하게 익힌 목공기술은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70년대에 들어 목가구의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姜씨도 꽤 큰 목공소를 경영하면서 목가구 만드는 일에 전념했다. 전국의 수몰지구를 돌아다니면서 구한 괴목(느티나무)을 구해와 집에서 말린 다음 재료의 상태에 따라 만들 품목을 결정했다. 도면을 미리 그려놓고 재료를 갖다맞추는 지금의 방식과는 달랐다.

姜씨는 목가구를 만들때 재료를 크기에 맞게 자른 다음 전통 목가구의 특징대로 못을 사용하지 않은 대신 물림쇠나 아교, 민어부레로 만든 접착제로 결합시킨다. 그런다음 옻칠은 칠전문가에게 맡기지만 동백기름이나 잣기름을 바르는 것은 姜씨의 일이다. 10년쯤 전부터는 전통목가구의 수요가 거의 없어 재료로 쓸 나무를 다시 사오지 않았는데도 현재 수십년동안 만들 수 있는 나무가 남아 있다고 姜씨는 말했다.

“흔히 가구나 만드는 소목장이라고 해서 대목장에 비하면 힘이 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잘못된 생각이에요. 소목장도 나무는 큰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톱질이나 대패질, 나무를 들고 다니는 일 등 모두 중노동입니다.”
姜씨의 굽은 허리와 잘라져나가 뭉특해진 손가락이 일의 고됨을 말해준다.

姜씨는 74년부터 동아공예대전에 출품해 ‘果盤(과반)’ ‘애기장’ ‘서류함’ ‘귀목8각병’ ‘문방구’등의 작품이 입선하면서 목수로서의 명성도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姜씨의 성가를 높인 것은 지난 80년 제5회 전승공예전에서 ‘輦(연)’을 출품해 대통령상을 받은 것이다. 연은 사찰에서 큰 齋(재)를 올릴 때 사용하는 일종의 佛具로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引路王(인로왕)보살을 모시는 꽃가마다. 정교하고 섬세한 조각이 요구되는 작품으로 불교 공예미술의 총화라고 할 만한 것이다.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했던 연을 재현하는 데 姜씨는 5년의 세월을 들였다고 한다.

목공예에 뛰어난 솜씨 때문에 姜씨는 주요 나전칠기의 원로들이었던 故(고)金奉龍(김봉룡)金泰熙(김태희)는 물론 현재 나전장인 李亨萬(이형만)씨 등의 白骨(백골·칠을 하기전의 목기 또는 목물)을 짜주는 것도 단골로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나전이 일반인들에게 외면당하면서 이마저도 일감이 떨어진 상태다.

88년 소목장 보유자로 인정된 것이 위안이 되지만 90년대에 들어와 급격히 변한 환경 때문에 姜씨는 힘들어했다. 전수자들도 모두 그의 곁을 떠났고 그의 뒤를 이었던 아들도 현재는 다른 것을 공부하고 있다.

“옛날에는 기술만 가지고 있으면 먹고 사는 데는 걱정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해요. 기술자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과학자나 생각하지 우리는 기술자축에는 못끼는 것 같습니다. 시대가 변해서 우리를 인정해 주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배우려는 사람은 없고 일감도 없습니다. 그러나 배운게 이것밖에 없으니 힘들면 쉬어가면서 열심히 할 겁니다.” 姜씨의 넋두리에는 오늘날 전통 장인들이 직면한 고민이 깊게 배어 있었다. <崔永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