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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의인생노트 게재 일자 : 1997년 10월 09일(木)
(95)국정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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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나는 헌법개정 심의위원으로 위촉되어 국민의 평생교육을 헌법으로 제정토록 하였다. 그리고 이 헌법개정에 ‘국정자문위원’이라는 새 기구가 만들어졌으나 정치의 문외한인 나로서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골자는 전임 대통령이 의장이 되고 각계의 원로들이 정부의 자문에 응하도록 한 헌법기관이었다.

다음 해인 82년 뜻밖에 나도 국정자문위원의 한 사람으로 위촉되었다. 그런데 위촉장을 받던 날 잊히지 않는 일화가 남아 있다.

청와대의 홀에 약 20명의 원로가 모여 앉아 서로 잡담을 하고 있는데 의전실장이 대통령께서 나오시니 모두 앞으로 나와서 줄을 지어 서라고 지시하였다. 이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벼락 같은 소리가 났다.

“무엇이 어째? 줄을 서라고? 내가 이럴줄 알고 안나오려고 했다!” 과도 정부의 수반이었던 허정이었다. 모두가 어리둥절하여 그를 쳐다보고 있는데, Y씨가 “대통령께서 나오시는데 줄을지어 서야 할 것 아니오?”라고 하자 허정이 더 큰 소리를 질렀다. “당신 혼자나 나가서 서시오!” 이렇게 되니 누구 한 사람 나가서 서려고 하지 않았다. 비서들이 몇번씩 들락거리고 나서야 전두환대통령이 홀 안으로 들어섰다. 원로들이 앉은 자리에서 모두 일어섰고 대통령이 창가로 돌아다니면서 위촉장을 한 사람씩 전달하였다.

참으로 기이한 위촉식이었다. 나는 근래에 이런 기골있는 인물을 처음 보았다.

국정자문위원회는 법에따라 최규하 전대통령이 의장이 되고 위원들이 장방형으로 테이블 앞에 앉아서 매달 각 부처의 행정 현황을 보고 받고 또 앞으로의 방침에 대하여 의견을 개진하였다.

위원의 대부분은 전총리, 국회의장, 대장급 군인 그리고 사회 각 분야의 원로급 인사들이었다. 노산 이은상, 강원룡목사 등 민간 원로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주로 농업과 교육에 관해서 많은 발언을 하였다. 박정희정권 시대에는 청와대에도 농업관계의 특보, 새마을 담당, 농업 담당비서 세 사람이 있었는데 그 다음 정권부터는 청와대에 농업관계 인물이 단 한명도 없었다. 농업분야는 농수산부에서 과장이 파견근무를 하는 실정이었다. 경제기획원에는 농업전문가가 단 한사람도 없었다.

경제기획원에서 브리핑을 끝내고 난 다음에 나는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현 정부는 청와대로부터 경제기획원에 이르기까지 나라의 바탕인 농업을 경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내가 너무 격하고 한국 농민들을 오늘 이처럼 못살게 만든 원흉들의 집단이 바로 경제기획원이라고 호통을 쳤다.

내 뒤를 이어 몇사람이 농촌문제에 대하여 나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었다. 폐회 직전에 총리를 지낸 K위원이 긴급동의를 하여 나의 원흉 운운 문구가 속기록으로 남을 터인데 어구가 너무 거칠어 문헌으로 남겨 두기에는 곤란하니 그 부문만 삭제하자고 간청하여 나도 삭제에 동의하였다.
(유달영,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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