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어느 중국인의 首丘初心

산둥성(山東省) 웨이하이(威海)에 사는 50대 후반의 전직 관료인 왕중차오(王中朝)씨는 요즘 마음이 심란하다. 자신이 20대 중반까지 생활한 제2의 조국 북한이 식량난으로 그어느 때보다 어려운 위기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도움을 주고 싶어도 능력에 한계가 있는데다 방법도 마땅치 않아 안타까움은 더해가기만 한다.

성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진짜 중국인이다. 그러나 이름을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과 북한의 공식국명 조선을 의미하는 글자가 묘하게 한자씩 들어 있다. 여기에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원래 그의 부친은 1949년 이전 만주에서 활약하던 중국인과 조선인의 연합군인 동북항일연군의 저우바오중(周保中)부대 장교 출신. 그러나 부친은 그를 낳자마자 관동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다.이때 그의 모친 왕위환(王玉環)과 그를 거둔 사람이 다름아닌 조선인 고급장교 崔庸健(최용건)이다. 일제 패망후 북한으로 들어가 부수상까지 지낸 최는 한국인들에게는 단지 6.25의 원흉으로만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중국에서는 인민해방군의 八路軍(팔로군)포병사령관을 지낸 武亭(무정)과 함께 전설적 武人(무인)으로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의 꿈을 안고 10대 후반 일찍이 중국으로 망명한 崔는 항일전의 맹장들을 무수히 배출한 윈난성(雲南省)의 강무관(講武館)에 입학한다.
나중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군을 공포에 떨게 한 인민해방군 총사령 주더(朱德)는 바로 이때 그와 함께 수학, 깊은 인연을 갖는다. 강무관을 졸업한 후 그는 조선인으로는 드물게 곧 항일의 총본산 황푸군관학교 교관으로 부임한다. 이때 최의 가르침을 받은 학생중에는 마오쩌둥(毛澤東)전주석의 후계자로까지 각광받던 린뱌오(林彪)도 있었다. 그는 광대한 대륙 내에서도 장래가 촉망되는 될성부른 나무였다. 하지만 그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채 동북항일연군에 합류한다. 그리고 조국이 독립되기 직전 부하의 가족들인 왕위환과 왕중차오를 거둔다. 왕중차오의 북한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던 것이다.

아무튼 왕중차오는 계부 최용건을 따라 북한으로 들어간다. 중국과 조선의 영원한 우호친선을 위해 봉사하라는 뜻으로 계부가 고쳐준 중차오라는 이름을 가진채. 당연히 그는 북한에서 최고대우를 받는다. 학교도 만경대혁명학원을 비롯해 한다 하는 명문만 골라 다녔다. 그러나 그 역시 계부가 그랬듯 북한에서의 모든 기득권을 미련없이 버리고 60년대초 조국으로 돌아온다. 당시 중국은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수천만명이 아사하는 대동란의 시기였다. 그는 그런 조국을 위해 자신이 북한에서 배워온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얼마후에는 문화대혁명의 시련이 찾아왔으나 그는 북한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와 북한과의 인연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인민해방군의 최고위층과 막역한 사이인 계부 최용건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수행, 양국의 친선을 위해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한 것을 그는 지금도 가슴 뿌듯하게 생각한다. 뿐만 아니다. 그는 계부가 사망한 76년 이후에는 조·중친선협회 회장에 취임한 모친 왕위환을 위해서도 그같은 봉사를 계속했다.

그는 최근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이 보도한 국경지대에서의 중국군과 북한군의 총격전 소식을 들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보도를 믿기가 싫다. 그보다는 4자예비회담의 중국측 수석대표인 외교부의 천젠(陳健)부장조리가 중·조친선사절단을 인솔, 평양을 방문한 사실에 더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한다. 또 장쩌민(江澤民)총서기겸 국가주석이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위해 뭔가 획기적인 대책을 끌어내줬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그렇게 될때 그는 자신도 고민을 끝내고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는 중국에 자신처럼 북한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중국인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가 북한이 최악의 사태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칫 북한인 최중조가 됐을 법한 그의 북한을 향한 수구초심은 이처럼 끝이 없기만 하다. <홍순도, 駐中특파원 베이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