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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게재 일자 : 2001년 02월 17일(土)
윗사람이 아랫자리 앉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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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 달 전에 본 오슬로는 한 도시이지, 한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내가 봤던 오슬로는 오슬로를 수도로 삼고 있는 나라, 노르웨이의 면모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뭘 보았다고는 하지만, 한 주일도 못되는 ‘노벨평화상 시상식 수행단 일정’이라는 것에 매여서 본 오슬로였다.

우선 오슬로는 깜깜한 나라였다. 나라의 기후가 음침했다. 해가 짧았고 아침 늦게 서야 어둠이 걷혔고 오후는 3시쯤 되니까 어두워졌다. 자연히 자살자가 많으며, 미술관에는 비극을 묘사하는 그림이 많았다. 그런데 이 어두운 나라에서 내 정신을 핑 돌게 하는 신명나는 광경들을 보았다. 이 광경은 내 마음에 스며든 빛이었다. 그 몇 가지를 열거해보자.

우선 노벨상 시상식이 간단해서 좋았다. 위원장이 시상식사를 하고, 상을 수여하고, 수상자가 답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왜 식이 간단했을까. 그 중요한 이유는 이 식에 높은 사람들이 끼여들지 않아서인 것을 곧 알 수 있었다. 식장에 총리가 어디에 앉아 있는지도 몰랐고, 다만 국왕은 단상이 아닌 하단에 앉아 있었다. 식이 끝난 후 국왕이 걸어서 단상까지 가더니 수상자에게 악수를 하고 퇴장했다.

이 윗사람이 아랫자리에 앉는 모습을 나는 두 번의 만찬에서도 보았다. 헤드테이블 중심자리에 수상자와 수여자가 마주보고 앉았지, 한 나라의 총리는 헤드테이블의 귀퉁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식사가 끝나니까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아무 시중드는 사람도, 아는 체하는 사람도 없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나는 눈여겨봤다.

첫번째 만찬에서 내 옆자리에 배석한 오슬로 사람의 직업은 버스 운전사였다. 내가 그에게 물어서 그의 직업을 안 것인데, 그는 나의 직업을 묻지도 않았다. 두번째 만찬에서 만난 40대 오슬로 여성은 아프리카와 남미에 원조를 담당하는 장관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썩 영리해 보였고, 그 옆자리에 앉은 한국사람에게 무척이나 친절하게 대했다. 이러한 윗사람들의 순수한 모습은 존중함을 받는 국민의 모습과 대비되어 더욱 나에게 돋보였다.

노벨상 수상 축하행사의 시작은 수상식이 있었던 강당에서 행한 오슬로 초등학생들의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한 학예회였다. 수상자가 도착하기 전에 우리는 좀 일찍 입장했는데, 출연할 아이들이 모두들 떠들어대고 있었다. 드디어 학예회가 시작되었는데, 이것도 좀 엉망이었다. 화장도 않고, 입던 옷 그대로이고, 순서도 잘 안 맞았다. 서로들 틀리고서도 낄낄거리는 듯 했다. 나는 자연스러움 자체인 어린아이들이 제일 생기발랄하게 노벨상 수상자를 환영하는 것을 보았다.

오슬로에는 고층건물이 드물었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평범하고 수수해 보였다. 이 나라의 고대 신화에 나오는 신인 오딘(Odin)은 소박함과 진실을 상징한다는 것이 내가 본 인상과 일치했다.

우리를 안내한 교포여성은 독일에 갔다가 오슬로에 옮겨와 살고 있는 간호사였는데, 나는 그가 말한 노르웨이는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라는 것을 위의 구경들을 하고서 납득하기 시작했다. 윗사람은 낮아지고, 어린이·노동자·여자가 높임을 받으려 하니 돈 있는 사람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걷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하면서 내 나라에서는 백화점 수입상품 물건이 불티나게 팔리며, 서민의 구매력은 가라앉아 있다는 보도를 우울한 마음으로 되새겼다.

이 교포여성이 중요한 말 하나를 우리에게 던졌다. 부끄럽게도 우리의 입양아들이 8000명이나 있는데, 다만 이 아이들이 터키나 파키스탄 입양아들과는 달리 잘 자라고 있어 모두 모범시민들이라는 것이다. 이 아이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곳에서는 일본식당은 잘 안돼도 한국식당은 성업중이며 김치찌개를 입맛에 맞아 한다고 했다. 나는 입양아 이야기를 듣고 우리의 종자는 좋은데, 다만 윗사람들이 나쁘구나 하는 생각을 점점 굳혔다.

성탄절을 앞둔 그때 나는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의 기도―마음이 교만한 자를 흩으셨습니다. 권세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자들을 높이셨으며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가 떠올랐다. 노벨평화상을 내 나라 사람이 받은 후, 우리의 과제는 우리 나라도 노벨평화상을 준 나라와 같이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문영·경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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