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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서평 게재 일자 : 2001년 02월 21일(水)
윤치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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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일본)이 다소 몰상식하고 거칠다는 게 드러나고, 끝내 신부(조선)는 이혼을 원하게 됩니다. 이제 과연 그녀가 혼자 살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 관건이죠. 중국 씨나 러시아 씨는 남편감으로 적당치 않을 겁니다. 돈 많고 수려한 미국 씨가 있긴 하지만 과연 그가 그녀를 정실부인으로 맞아들일까요. 십중팔구 그는 그녀를 첩으로 들일 겁니다. 그렇다면 결국엔 현 남편이 자기에 대한 그릇된 태도를 고치길 기다리면서 그와 화해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난 직후 사태수습을 위해 조선군사령관 우쓰노미야 다로(宇都宮太郞)일본 육군 중장이 윤치호를 불러 한 이 말은 3·1운동의 배경이 된 우드로 윌슨 미국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조선에는 해당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선 시종일관 3·1운동에 부정적이었던 윤치호의 정세인식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1919년 3월6일 일제 총독부의 기관지였던 ‘경성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선 문제가 파리강화회의에 상정되지 않을 것이고 ▲미국이나 유럽의 어떤 나라도 조선독립을 위해 일본과 싸우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며 ▲약소민족이 강성한 민족과 함께 살아야만 할 때 약자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강자의 호감을 사는 것이란 3가지 이유를 들며 3·1운동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윤치호가 1883년부터 1943년까지 60년간 거의 매일 영문으로 기록한 일기 가운데 후반부인 일제시기(1916~1943)의 내용을 30%정도 발췌, 번역한 책이 관심을 끄는 것은 독립운동가도 아니고 중일전쟁 발발(1937) 직전까지는 확실한 친일파도 아닌채 회색인으로 어정쩡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한 지식인의 독특한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구한말 일본과 중국, 미국 등지에서 11년간 유학한 조선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으로 독립협회장을 맡는 등 개화·자강운동의 핵심인물이었으나 일제시기 YMCA운동을 주도하며 조선 기독교의 원로로 활동하다 결국 친일파의 ‘대부’로 삶을 마감하게 된 윤치호의 일생은 사실 일제시기 조선인들이 살아온 한 경향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윤치호로 대표되는 해평(海平)윤씨 가문이 해방후 지난 반세기동안 윤보선 전대통령을 비롯해 농림부장관·서울대총장 등 무수한 유력인사들을 배출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가로 자리잡았다는 점에서 우리 현대사의 행로와 관련, 시사하는 바가 크다.

책에서 드러나듯 윤치호는 일제의 통치정책과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던 반면 조선인들도 독립국가를 유지해나갈 실력이 없다는 판단아래 3·1운동을 비롯한 모든 독립운동을 반대하는 양비론적인 태도를 취했다. “도로를 놓고 학교와 병원를 세우는 등 조선에 큰 혜택을 줬다”는 일제 통치자들의 주장이 조선인들보다는 일본인 이주자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간파할 정도로 식민통치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조선시대 역사와 전통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같은 동포에 대한 불신이 뿌리깊었다.“조선인들은 일반적으로 10%의 이성과 90%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라든가, “대중목욕탕 하나 운영하지 못하는 우리가 현대 국가를 다스리겠다고”라는 글에서 보듯 그는 당시 조선인들이 자치정부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그에겐 땅을 팔아서 독립운동자금을 대주는 것보다 농경지를 매입해 그 땅이 일본인들 손에 넘어가는 걸 막는 사람이 더 현명한 애국자였던 것이다. 철저한 성악설의 신봉자로 일제가 조선에 끼치는 해악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영국이나 독일, 러시아가 아일랜드나 폴란드 같은 약소국에 했던 소행에 비춰본다면 특별히 악한 것도 없다는 식의 논리로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의식을 스스로 거둬들이고 말았다. 일제의 통치정책에 큰 불만을 갖고 있으면서도 모든 유형의 독립운동을 반대하고 실력양성운동, 민족성 개조운동을 중시했던 윤치호는 안창호, 이광수 등과 사상적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윤치호 개인에 대한 호오를 떠나 책은 일제시대를 이해하는 흥미로운 텍스트로 읽힌다. 일반적으로 친미파로 분류되는 미국유학 출신의 지식인층이나 기독교계 인사들의 경우 백인종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커 결국 친일로 가는 계기가 됐다는 내용이나 일제시기 민족주의 운동세력과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각각 안창호와 이승만으로 대표되는 서북파(평안도지방)와 기호파(서울·경기지방) 사이의 지역감정이 극심했다는 사실 등 사료로 가치가 있는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다.

천도교지도자 손병희와 양기탁 등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 등에 대한 혹평, 유길준의 을미사변 관련설, 박용만과 옥관빈의 밀정설 등 공식기록에서 찾아보기 힘든 뒷이야기들도 풍부하다. 최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은 일본인들의 식민통치 논리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과외의 소득이다.

(전문성 ★★★ 대중성 ★★★ 완성도 ★★★★)

〈김상태 편역/역사비평사·최영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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