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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럼 게재 일자 : 2001년 03월 24일(土)
안보와 평화가 함께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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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순에 있었던 한·미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나는 오늘 미국이 알아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 미국이란 구체적으로는 부시 새 미국대통령을 지칭한다. 나는 이른바 국제관계론 학자는 아니다. 나는 정상회담을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도 아니다. 나는 다만 미국이 지향하는 가치인 민주주의를, 내 나라가 어두웠을 때 이것을 실현하고자 고생했던 한 사람에 불과하다.

우선 이번에 미국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가를 미국이 제대로 알았어야 했던 근거를 제시해보자. 그간 한국에는 세 부류의 정치경험이 혼재했었다. 첫번째는 연이어 집권을 했던 부류인데, 한 마디로 안보를 내세워 민주주의를 말살했던 정치경험이다. 두번째는 민주주의를 말살하지는 않더라도, 남북통일을 먼저 서둘러 하자는 이른바 ‘선통일 후민주’의 정치경험이다. 세번째는 참으로 힘겹게 생겨난 정치경험으로,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안보도 하고 통일도 하자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상대한 김대중대통령은 세번째 정치경험의 인물이다. 이런 인물을 모름지기 미국은 잘못 알아봤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미국에는 위에서 적은 첫번째와 두번째 부류의 정치경험이 존재하지 않아서이다. 미국은 역사상 한번도 쿠데타 정권이 들어선 나라가 아니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몸부림 친 나라도 아니지 않은가.

이런 나의 견해에 대해 나로서는 미국이 최근에 쓰는 말인 ‘검증’을 해야겠지만, 미국의 부시정권과 내 나라의 국민의정부 사이에는 역사적으로 성립 배경이 다름에서 오는 동지적 연대가 부족했다고 나는 일단 ‘의심’을 해보고 싶다. 이러한 느낌은 한·미 정상회담이 그후 한국을 방문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전 대통령과 김대중대통령과의 만남에서 관찰되었던 정의(情誼)와는 매우 달랐다는 점에서 온 것이다. 이런 의심을 전제로 해서 미국이 알기를 바라는 다음 내용은 나의 최소한도의 바람이다.

그것은 미국이 안보가 중요한 것임을 알되, 안보는 안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부시정부의 정책이 평화를 위한 안보임을 스스로 검증해내지 않을 때에는 단순한 자국의 이익추구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과거 미국 공화당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퇴임 연설 속에서 ‘군부산업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국가안보에 대한 요구 때문에 자유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강력한 이익집단이 만들어지게 된 것을 경고하였음을 상기하여야 한다.

만일에 미국이 안보를 위해서 안보를 강조한다면, 그것이 내 나라에 미칠 파장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에서, 특히 남한에서 위에 적은 세번째 부류의 정치경험이 타격을 받고, 민주주의를 소홀히 한 채 통일을 바라는 정치경험의 입지가 생겨나고, 북한에서 강경 세력이 입지를 굳히게 될 상황을 나는 염려한다.

이러한 내 의심을 전제로 해서 미국이 알기를 바라는 것은 한반도에 남북공존이 정착되면 내 나라만이 아니라, 세계경제를 회복시킬 획기적인 경제모형이 창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합작으로 북한이 돈을 벌게 되면 북한의 동포들은 자신의 권리로 가난과 굶주림을 극복할 수가 있다.

나는 이 상생의 모형을 경기가 침체해가는 오늘의 미국과 세계가 배워야 한다고 본다. 미국은 제1차 대전 후 패전국에 가혹한 배상을 요구한 결과, 자국도 경제공황을 겪었다. 이러한 경험을 살려 미국은 제2차 대전 후, 패전국에 대해 마셜플랜을 실행해 서로가 사는 길을 택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것을 붕괴된 동구권과 저소득 국가에는 소홀히 하고 있다.

이상에서 나는 미국이 알아야 할 것을 열거했지만, 나의 마음속 깊이에는 미국이 아니라 내 동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떠한 고통과 고난을 겪더라도 주권자인 국민이 민주주의와 안보와 평화를 함께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안보를 내세워 민주주의를 말살했던 정치경험부류들이 반성하기는커녕, 이 기회에 정치적 이득을 겨냥해 나서는 것을 나는 크게 염려한다. 우리가 간신히 새벽을 연, 새 날에는 한 가지 색만이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빛 아래에서 안보와 평화의 두 가지 색이 다 빛을 발하는 날이어야 한다.

<이문영 경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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