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웹 | 지면보기 PDF | 기사 상세 찾기 | 2019.2.20 수요일
전광판
Hot Click
문화일반
[문화] 세계속의한국지성 게재 일자 : 2001년 11월 01일(木)
(1)伊 시에나大 중세문헌학 교수이득수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문화일보는 창간 10주년 기념 기획으로 ‘세계 속의 한국지성’시리즈를 6회에 걸쳐 게재한다. 해외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한국인 학자들의 삶과 연구업적을 소개하고, 세계 수준의 학문서클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또 그런 학문의 세계는 어떤 것인지 알아본다. 한국지식사회의 경쟁력과 생산력이 세계적 수준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고 비판 받고 있는 지금, 세계수준의 지식을 갖추기 위해서 한국지식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도 들어본다.

이 시리즈는 ▲이득수(이탈리아 시에나대·중세문헌학)교수 ▲김성복(미국 뉴욕주립대·미국사)교수 ▲최정무(미국 UC어바인대·동아시아학)교수 ▲염규호(미국 애리조나주립대·언론학)교수 ▲신기욱(미국 스탠퍼드대·사회학)교수 ▲장하준(영국 케임브리지대·경제학)교수 순으로 게재된다.

^

‘세계 속의 한국지성’시리즈 첫번째로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중세문헌학계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는 이득수(63·이탈리아 시에나대)교수를 만났다. 이교수의 논문은 중세종교 관련 문헌학계에서 중요 참고문헌으로 다뤄질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그의 중세연구는 기독교 중심사회로만 알려진 중세사회가 게르만사회의 성립과 함께 시작된 이교도 문화도 다양하게 존재했던 사회라는 점을 밝히고 있어, 최근 그의 논문은 발표될 때마다 유럽 중세학회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지난 10월 19일 ‘한국서양고전학회 2001년 가을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이교수를 국제연수원(서울 용산구) 내에 있는 객실에서 만났다. “비행기에서는 못자는 체질”이라는 이교수는 잠을 자고 있었다. 소탈한 표정으로 기자를 맞이한 그는 학문과 인생, 가족에 대해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한국인으로서 왜 하필이면 라틴어를 사용해야하는 중세학, 그것도 문헌학을 택하셨는지요.

“처음 이탈리아에 갔을 때는 정확하게 뭘 공부하겠다는 목표가 없었습니다. 공부하면서 관찰해보니 라틴어를 모르고는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러나 라틴어를 해보니 학문을 깊이있게 하는 방법을 알겠더군요. 한 김에 중세까지 공부를 했는데, 내가 중세학에 깊이 빠져들게 된 것은 한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과 유럽 중세가 어떤 관련이 있다는 말씀이신지.

“내가 자랄 때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6·25 등으로 힘겨웠던 시절입니다. 내 또래들은 학생시절에 인생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가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 심리 속에서 중세의 종교문헌을 읽으니, 이것이 내가 찾던 학문이구나 싶었지요. 내가 동경해온 학문이 중세학이었다는 사실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계기도 있습니다. 페루자대학을 졸업할 무렵 중세문헌학에서는 당대 최고의 학자로 알려진 클라우디오 레오나르디 교수가 왔는데, 나를 잘 봤는지 지도교수가 되었습니다. 북이탈리아 사람인 그로부터 서양학계의 전위적인 분야를 배웠지요.”

―대단히 빨리 학문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었군요.

“예. 레오나르디 교수로부터 곧바로 중세문헌학의 새로운 분야, 미개척분야가 어딘지를 배우고, 곧바로 중세문헌학의 최일선에서 공부할 수 있었지요. 당시 석사과정에서 쓴 100쪽 정도의 첫 논문이 지금도 서양학계에서는 신학교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공부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이탈리아 대학에서는 시험을 대단히 중요한 과정으로 칩니다. 내가 다닐 때는 21개 시험에 합격해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받았던 이탈리아 정부 장학금은 과거 이탈리아 식민지였던 국가에 대해 보상하는 프로그램에서 나온 거였지요. 그러니 얼마나 기가 막힌 돈을 내가 받았겠습니까. 그래서 참 열심히 공부했지요. 결국 21개 시험 전부 만점을 받았습니다.”

―이탈리아 유학은 어떻게 가게 되었습니까.

“1967년 페루자대학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때까지 제 학력은 고졸이었습니다. 물론 한국외국어대학에 6개월 다니긴 했지요. 당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던 권투선수 김기수와 니노 벤베누티의 세계챔피언전에서 통역을 하기도 했지요. 통역비 한푼 못받았지만, 이듬해 비자 때문에 신원조회하러 경찰서에 갔는데 거기서 권투계 관계자들이 기억하고 도움을 줍디다. 그 도움이 통역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전후 부산에 살 때 교회성가대에서 노래를 했는데 그때 이탈리아가곡을 부르면서 이탈리아어를 혼자 배웠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어는 노래와 더불어 나의 탈출구였지요. 그러니까 독학으로 이탈리아어를 배워서 챔피언전 통역도 하고 유학도 가게 된 거지요.”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요.

“마흔되던 78년, 독일 훔볼트대학에서 강의할 때 한국여성을 만났습니다. 1남3녀를 뒀지요. 학자생활은 사실 고독합니다. 편견도 많지요. 얼마 없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나아가야 하는데 참 외롭습니다. 그래서 결혼은 한국인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지금은 내 가족만 해도 한국인이 6명이나 되니, 작은 코리안소사이어티가 만들어졌지요. 언젠가 움베르토 에코가 시에나대학에 강연하러 와서 나에게 ‘이탈리아에서 제일 짧은 성을 가진 사람(이교수는 성을 알파벳 ‘I’라고 쓴다)을 만나 기쁘다’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학문하는 자세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공부하는 방식은 ‘원전돌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보습득식이라기보다는 바로 원전과 마주치는 거지요. 연구할 때는 무조건 작품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보나열식 연구는 절대로 도움이 안됩니다. 오히려 인용이 드물더라도 원전을 읽고 내가 찾은 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원전을 통해서 자신과 대화하는 거지요. 원전은 죽은 것이지만 연구자가 질문을 던지면 대답해줍니다.”

―지금 한국에서는 경쟁력과 생산력이 없는 지식사회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학자(Scholar)는 어떤 사람입니까.

“우선 겸손할 것. 자신에게 정직할 것. 많은 학자들이 문화전통을 구성하는 일원으로 공동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역사에 남고 어떤 사람은 무명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나 무명으로 사라지는 인물 없이는 역사에 남을 학문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각자 제 소임대로 묵묵히 길을 걷는 거지요.”

―본인이 무명학자로 사라진다고 해도 괜찮습니까.

“역사를 보면 참 많은 훌륭한 학자들이 지나갔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그 사람 책을 찾아보세요.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피땀 나게 노력해서 하나의 논문을 쓰지요. 대부분이 파묻혀서 사라집니다. 설령 도서관 서가에 꽂힌다 해도 눈에 띄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내 논문이 그런 운명이 돼도 괜찮아요. 그런 결과에 상관없이 가는 겁니다.”

―이탈리아에 간 지 30년이 넘었지만 사투리가 아주 심합니다. 선생님은 어떤 말을 가장 잘 하는지요.

“나는 여러가지 말을 취급해요. 이탈리아어, 라틴어, 독일어 등…. 그러나 부산 사투리 외에는 잘하는 말이 없습니다. 학문 언어를 배우는 것은 중요하고 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이 늦어도 괜찮아요. 더듬거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일상회화가 부족해도 상관없어요. 근본적인 학문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언어의 진수에 도달해요. 거기서는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하지요.”

―계획을 말씀해주십시오.

“‘중세 유럽의식의 형성’이란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일부를 발표했는데 학계의 반응이 큽니다. 마치 큰 고기를 잡은 기분입니다. 이제 가만히 앉아서 글을 써야 되는데 이런 저런 일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나는 바닷가 사람이라서 그런지 학생 동료들과 부딪치면서 서로 통하는 것이 체질에 맞습니다. 바다에 바로 뛰어드는 스타일이지요. 그런 점에서 나는 전투자입니다.”

/정리〓배문성 기자 msbae@munhwa.co.kr


[ 관련기사 ]
▶ ■이득수교수는 …
[ 많이 본 기사 ]
▶ ‘창백했으나 당당했다’… 日서 새로 발견된 ‘안중근의 최후..
▶ “폭행으로 장 파열·췌장 절단…가해 학생은 해외여행”
▶ ‘성폭행범 제압 남성’ 상해죄로 14일간 철창신세
▶ “괴롭힌 사실 답변하라” 김보름 요구…노선영 “입장 변화..
▶ 김정남 암살 베트남 여성 父 “김정은, 내 딸 구해줬으면”
Copyrightⓒmunhwa.com '대한민국 오후를 여는 유일석간 문화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구독신청:02-3701-5555 / 모바일 웹 : m.munhwa.com ]
[AD]
topnew_title
topnews_photo 獨법원 “앞으로도 총기 부주의하게 관리할 것으로 예상” 독일 법원은 19일 장전해 둔 소총의 방아쇠를 개가 당기는 바람에 이에 맞아 부..
mark“국가가 내 정보 검열”… 인터넷차단, 빅브러더 논란
mark“週52시간제 시행땐 일자리 40만개·GDP 10.7兆 감소”
‘창백했으나 당당했다’… 日서 새로 발견된 ‘안중근..
트럼프 “급한 시간표는 없다…핵실험 없는 한 서두..
‘성폭행범 제압 남성’ 상해죄로 14일간 철창신세
line
special news 낙태 논란에 ‘극단선택 암시’ 류지혜 자택서 발견..
경찰이 신고받고 출동…“수면제 먹었다” 진술해 병원 이송레이싱 모델 류지혜(30) 씨가 극단적 선택을 암..

line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3→6개월 확대…11시간 연속..
“폭행으로 장 파열·췌장 절단…가해 학생은 해외여..
김경수 판결 ‘불복성 비판’ 강행한 與
photo_news
“괴롭힌 사실 답변하라” 김보름 요구…노선영..
photo_news
남규리 “빚투 모방 협박, 명예훼손으로 고소”
line
[김효정의 에로틱 시네마]
illust
엄마부터 아들·며느리까지 ‘외도’… 결혼·가부장제에 대한 조소
[인터넷 유머]
mark치매의 원인 mark불황시대 직장인의 생존법
topnew_title
number 김정남 암살 베트남 여성 父 “김정은, 내 딸..
5·18폄훼 이어 新공항 발언 놓고… 靑·한국당..
손석희 “화장실 찾으러 공터 갔다”…경찰 조..
‘아들 의사시키려’… 의대 교수 편입 문제 빼..
폭행당해 숨진 강연희 소방경, 위험직무순직..
hot_photo
음주운전·버스운전방해 혐의 박정..
hot_photo
연료부족 렌터카 터널서 멈추자..
hot_photo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기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사업안내 | 이용안내 | 구독안내 | 독자참여 | 회원서비스 | 고충처리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책임자:한형민) | Site Map
제호 : 문화일보 | 주소 : 서울시 중구 새문안로 22 |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01697 | 등록일자 : 2011년 7월 15일 | 발행·편집인 : 이병규 | 발행연월일 : 1997년 1월 1일
Copyright ⓒ 문화일보. All Rights Reserved. ☎ 02) 3701-5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