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속의 한국지성>(2)김성복 美뉴욕주립대 사학과 교수

미국 뉴욕주립대(올바니) 사학과 김성복(69)교수는 미국에서 미국사를 강의하는 유일한 한인 교수다. 미국 역사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논문을 잇따라 발표하며 미구사를 새로 쓰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독립전쟁의 잔혹한 이면을 조명한 그의 논문들은 역사의 비극에 무심했던 미국 혁명사가들에세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부총장직을 역임하며 교육개혁에도 헌신, 획기적인 교육과정 개편과 학사관리 정책을 추진해 전 대학구성원의 지지를 받았으며, 서울대 ·연세대 등의 교육개혁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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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있는 김교수와 여러 차례에 걸친 e메일교환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의 의미와 대학의 역할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활달한 성격의 김교수는 시종 정열적인 태도로 한국 대학의 문제, 인문학의 위기와 교양교육의 개편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언해 줬다.

―미국사를 공부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한국에 갈 때마다 뼈저리게 느끼는 건 사람들이 미국을 너무 모른다는 점입니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국시를 자유민주주의라 하지만, 한국에 자유민주주의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미국 혁명에 대한 연구나 책은 거의 없지요. 우방이든 적이든 미국에 대한 공부는 장려해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국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고 있으니까요. 저는 미국의 건국이념과 역사로부터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교훈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서 미국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역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미국 헌법 수정 1조에는 사상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인들의 의식에 굳게 자리잡고 있는 자유와 평등의 정신은 미국의 정체성을 정의합니다. 덕분에 다민족·다종교·다문화로 얼룩진 미국 사회가 평화롭고 질서있게 유지될 수 있다고 봅니다. 종교적 갈등이 판을 치는 오늘날의 세계를 보면 미국은 완벽하진 않더라도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사상적 억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한 역사는 재음미할 필요가 있죠.”

―한국엔 인문학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학생들이 인문학을 외면하는 것은 교수들의 잘못입니다. 철학이, 역사학이 왜 의미있는 것인지 설득하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만 하고 있으니 배척받게 되죠. 미국 대학교육의 강점은 기초학문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역사학, 물리학, 수학, 문학, 외국학 등이 학문의 중추이며 교육의 초석이라 인정하고 학생 모두에게 필수교양으로 가르칩니다. 한국의 대학은 교양교육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문학의 위기도 극복될 수 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한국의 대학 교수사회에선 교양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가 없다고 봅니다. 교양강좌가 어떤 목적에 의해 어떻게 구성돼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골프치고 승마하는 게 교양이라고 합니다. 서울대에선 법용어를 교양강좌로 개설했더군요. 고시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으니까 강좌도 인기가 있는가 본데 저는 창피한 일이라고 봅니다. 인문학·사회과학·기초과학 연구자들이 모여 지성인으로서, 지도자로서 꼭 갖춰야 할 교양이 무엇인지 치열히 토론해 합의점을 찾고 교육과정을 과감히 뜯어고쳐야 합니다.”

―미국 대학의 교양강좌는 어떻게 구성돼 있나요.

“예를 들어 뉴욕주립대엔 역사학 6개 강좌(미국사·유럽사·세계사 각2강좌)가 필수교양입니다. 하버드대, 보스턴대, 컬럼비아대, 프린스턴대도 다 그렇습니다. 한국에선 역사학을 케케묵은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가 봅니다. 역사감각이 지성인의 필수적인 자질이라는 걸 모르는 거죠. 저는 교양교육을 대수롭지 않게 보는 풍조 때문에 학생들, 나아가 한국사회 전체가 봉변을 당하게 될 것이라 봅니다.”

―서울대·연세대 등 한국 대학의 개혁사업에 참여하시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한국 교육의 큰 병폐는 정치바람이 교육을 덮친다는 것입니다. 큰손으로 교육을 주무르는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매년 경질되고 대학총장은 패거리가 횡포를 부리는 선거에 의해 선출되니 교육개혁이나 정책이 착실하게 추진될 수 없지요. 교육이 잘 되지 않으니 학생들이 외국으로 떠날 수밖에요. 한국엔 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 지도자가 없어서 문제입니다.”

―급변하는 시대에 대학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대학사회는 시대의 흐름에 민감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 노예가 될 수는 없지요. 대학은 바깥 사회와 호흡을 같이하되 그것이 그릇된 방향으로 가면 경고해야 합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연세대가 기여입학제를 실시하겠다고 해서 논란이 많습니다.

“모든 사립대학들이 기여입학제를 허용했으면 합니다. 기부금을 낸 사람을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 도덕적 과오라는 여론은 저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가지 옳은 일을 위해 다른 더 많은 옳은 일을 못한다면 문제가 있죠. 기부금을 학교시설과 인적자원의 확보, 서비스의 확충, 그리고 가난한 학생의 장학금 지급을 위해 쓴다면 유한적인 기여입학제는 환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재정이 열악한 사립대학들은 등록금을 올리느냐 기부금을 받느냐 하는 양자택일의 곤경에 빠져 있죠. 수업료가 올라가면 가난한 사람은 더 공부하기 힘들게 됩니다. 저는 공립대학도 장학금 확보를 위해 제한적인 기여입학제를 실시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디에선가 한국의 해방후 역사를 쓰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밝히셨던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대학 때 한국사 강좌를 들었는데 D학점을 받았어요. 좋은 한국사 책을 써서 그 D학점을 보상하려고요(웃음). 그리고 한국의 근대화에 군장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 기독교인과 지식인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내고 싶습니다. 제도적 민주화와 의식의 민주화가 병행하지 않았다는 뚜렷한 이력도 살펴보고 싶습니다.”

/정희정 기자 nivose@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