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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세계속의한국지성 게재 일자 : 2001년 11월 22일(木)
(4)염규호 美애리조나주립대 언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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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규호(46·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언론학)교수는 40대다. 동료교수들 사이에서 ‘논문제조기’로 불릴 만큼 많은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염교수는 85년 미국에서 교수가 된 이후 15년 동안 8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널리즘과 언론법 관련 전문학자로 널리 알려진 그는 미국 지식사회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한 한국계 학자 중 한 사람이다. 염교수와 수차례에 걸친 e메일 인터뷰를 통해 구미 지식사회의 중심에 자리잡기까지의 마음가짐과 미국교육의 장점, 학자의 길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미국에서 성공적인 학자가 되기 위해서 해야할 일, 필요한 자세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만약 미국에서 성공적인 학자가 되고 싶다면 돈이나 명예에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됩니다. 또 자신의 연구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일류 학자에게 있어 ‘충분히 잘하고 있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학문적 명성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명성이나 돈을 위해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주제를 다루고 싶은 유혹도 이겨내야 합니다. 이는 지적 세일즈맨의 태도이지 신실한 학자의 태도가 아니지요. 모든 새로운 모험엔 위험요소가 있지만 보상도 있기 마련입니다. 학자의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간 선배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야심과 노력입니다.”

―미국 학계와 한국 학계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사실 나는 한국의 학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85년 이후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사실상 무제한의 학문적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공부할 수 있습니다.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칠 수 있으며 학자로서는 마음 내키는 대로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대학원생 시절에도 지도교수로부터 이러저런 주제에 대해 논문을 쓰라는 말을 한번도 들은 적이 없습니다. 또 위에서 바닥까지 위계화된, 자기파괴적 선후배 문화를 체험한 적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학연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는 졸업 후 무엇을 해냈는지 혹은 미래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만큼 중요하지 않지요. 또한 미국에서 성공하려는 사람에겐 무엇을 알고 있는지가 중요할뿐 누구를 알고 있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학문적 이동까지 높이 평가됩니다. 연구경력을 위해 이 학교에서 저 학교로 옮기는 것이 지식사회의 낙인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나는 지금도 몇 개 대학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있습니다. 나는 항상 이런 제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합니다. 사상의 자유로운 교류가 미국의 학문적 생활에서는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21세기에는 소통의 문제가 더 첨예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입니다. 21세기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할 것으로 보시는지요.

“21세기에 소통방식은 매우 다양하게 분화될 것이며 동일한 이해를 기반으로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나친 개인화와 개인의 취향에 맞춘 뉴스의 지나친 여과가 이 사회를 보다 개인주의적인 집단으로 만들 겁니다. 이는 기능적 민주주의의 혼란스러운 발전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공통점이나 균일성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우려하는 편입니다. 나아가 테크놀로지에 의존하는 커뮤니케이션이 21세기의 비전이 돼서도 안됩니다. 사회마다 다르긴 하지만 정보기술(IT)산업에 집중하는 나라들은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진실’을 찾을 때, 어떤 정보를 믿을 수 있는가 입니다.”

―최근 미국 테러사태에 대한 언론의 대응방식 등을 보면서 한국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전쟁보도에 관한 언론의 태도, 자세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테러와의 전쟁을 보도하는 미국 언론들의 보도 방식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부과된 자기검열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수익에 따라 움직이는 미국의 언론들(인쇄매체든 전자매체든)이 이번 테러문제를 다루는 데는 꽤 책임있는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ABC, CBS, NBC가 광고를 내보내지 않고 테러문제를 방송에서 다루는 상황은 언론학자이자 매체법학자인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필요하다면 뉴스보도를 제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할 수 있지요. 미국은 한국보다 뉴스가 훨씬 비중이 낮은 편입니다. 나는 한국 언론들, 특히 텔레비전이 미국이 주도하는 아프가니스탄 공격 보도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솔직히 말해 한국 언론이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보도하는 데 그렇게 무분별한 시간과 지면을 투자한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학자로서 어떤 일이 가장 행복합니까.

“도서관에서 자료조사하는 것과 집에서 연구논문을 쓰느라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은 나에게는 스릴 있는 경험입니다. 이는 20년전과 마찬가지로 나를 에너지로 가득차게 합니다. 물론 내 연구가 미국과 영국의 영향력 있는 법 저널에 실릴 때 느끼는 학문적 성취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미국, 영국 등 여러 나라의 판사, 변호사들로부터 내 연구를 판례에 이용하고 있다는 편지를 받을 때에도 학자로서 대단한 성취감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여름 영국의 미디어관련 변호사인 데이비드 후퍼씨가 소송에서 2000년도 국제비교법학술지에 실린 내 논문을 인용했다는 편지를 받았을 때 대단히 기뻤습니다. 또 80년대 말 뉴욕의 판사가 언론의 자유와 관련한 재판을 할 때 내 논문에 의존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의 기쁨이 있었습니다.”

―미국 지식사회의 가장 큰 덕목은 무엇이라고 보시는 지요.

“나는 그들의 구조화된 개방성, 새로운 사람들(그들이 어디 출신이건 간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경험해 보려는 의지를 좋아합니다. 또 항상 이것이 최선인가, 향상될 수는 없는가를 끊임없이 묻는 지속적인 시스템의 재정비도 좋아합니다. 십수년 동안 여러 전문가 집단과 일해온 내 경험으로 판단했을 때 미국인들은 교수 임명, 혹은 승진 문제로 동료들을 평가할 때 직업적 기준을 공평하게 유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한 미국 대학사회에서 교수를 고용하거나 해고할 때 생기는 부패는 매우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참고로 나는 85년부터 세군데 미국 대학에서 일했지만 한번도 인종차별을 겪지 않았습니다.”

―젊은 후학들에게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인생은 신나는 도전의 연속입니다. 이 도전은 자신이 스스로 설정할 수도 있고 외부에서 강제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그 도전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즐기십시오. 당신이 무엇을 해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해냈는지가 중요합니다. 물론 이는 부단한 노력, 순수함, 도전정신으로 해낸 것이어야 합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전받고 있다고 느끼면, 스스로에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는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은 주변사람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현명한 사람과 경쟁해야 합니다. 나는 한 미국인 신부가 말한 삶의 철칙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성공하는 것이 가장 큰 복수다’이를 매일 실천해야 합니다.”

/배문성 기자 msbae@munhwa.co.kr

■염규호는 누구인가

염규호교수는 미국 남일리노이대학에서 언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예일대학에서 법학석사학위를 받았다. 85년부터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그가 구미 학계에 발표한 저널리즘과 언론법과 관련한 중요 논문은 80여편에 이른다.

1991년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ICA)’에서 발표한 ‘언론과 대중매체 연구분야의 가장 뛰어난 7명의 학자’ 중 한명으로 선정된 바 있으며, ‘미국 저널리즘과 매스커뮤니케이션 학회(AEJMC)’ 선정 ‘가장 생산적인 매스커뮤니케이션 학자 40인’ 중 한명으로 꼽힌 바도 있다. 애리조나 대학의 우수연구상, 애리조나 크론카이트 저널리즘스쿨 우수연구상 등을 받았으며, 많은 논문들이 AEJMC, ICA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또 염교수의 언론법관련 논문은 미국과 영국 법정에서 활발하게 인용되고 있으며, 영국 상원에서는 대중 매체법 관련 자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는 90년대 초부터 ‘언론법과 정책’, 계간 ‘언론과 대중매체’, ‘대중매체와 모노그래프’ 등 13개의 주요 언론학술지에서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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