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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게재 일자 : 2002년 03월 13일(水)
친일파 홍사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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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홍사익(洪思翊)입니다.” 홍사익은 일본 식민지 시절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일본제국 육군 중장까지 올라간 군인으로 전후 A급 전범으로 처형됐다. 그는 일본제국 장성이면서도 끝내 창씨개명을 거부한채 홍사익이라는 이름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군대내에서 자기 소개시 늘 조선인임을 먼저 밝혔다. 군수뇌부조차 그의 이런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고한다.

최근 국회내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의 친일반민족행위자 708명 명단 발표와 관련해 다시 그의 이름이 거론됐다. 발표시의 명단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그에 관한 내용은 자문위원들이 내놓은 ‘제언’ 4번째에 담겨 있었다. 그에 따르면 “광복회에서 심의한 692명에도 정운복(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에대한 사죄단 단장), 이익흥(경찰서장), 홍사익(장성) 등 친일 반민족 행적이 역력한 인사가 누락돼 있다. 다음 기회에는 발표하기를 바란다”고 돼 있다.

조선조 말기인 1887년 경기도 안성의 빈한한 농가에서 출생한 홍사익은 16세때 무관학교에 입학했으나 대한제국 황제의 명에 의해 유학생으로 일본 육군중앙유년학교에 들어간다. 그러나 학업에 정진하던 도중인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에 병합되고만다. 1900년 6월19일 발표된 대한제국 황제의 군인유칙을 가슴에 품고 있던 홍사익과, 같은 처지의 동료들에겐 청천벽력의 사태였다. 이들은 비밀리에 회동해 앞으로의 처신에 대해 논의했다. 전원탈주후 귀국하자는 등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으나 대부분은 홍사익의 주장대로 공부를 계속한다는데 합의한다. 여기서 첫번째 의문이 홍사익은 왜 조국을 잃어버린 무인(武人)의 입장에서 학업의 계속을 주장했을까이다.

두번째는 육사생도 시절을 전후해 동료들의 탈주와 광복군 참여 권고를 거부한 점이다. 그는 일부 동료들, 즉 나중에 독립군으로 이름을 떨친 이청천(李靑天)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장교로 잔류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월급을 쪼개 동료 망명자나 독립군 가족을 돌보는데 헌신한다.

고난보다 영화를 택한 자의 쥐꼬리만한 양심때문이었을까. 일본제국 군대의 장교로 복무하면서도 그는 매년 연초를 맞이할때마다 이(李)왕가 참배를 잊지않았다. 끝까지 대한제국 황제의 군인유칙을 버리지 않았다는 그의 행위는 이처럼 모순돼 보인다. 홍사익은 후에 이 왕가를 제외하고 조선인으로는 유일하게 육군대학을 나와 장성으로까지 진급한다. 그리고 중장때인 1944년 필리핀 전시포로사령관에 부임한후 패전과 함께 A급 전범으로 분류된다.

3번째 의문은 그가 오랜 기간의 재판 과정에서 단 한마디의 변명도 없이 침묵으로만 일관했다는 점이다. 그의 마음 속에는 일본인들 스스로 행한 포로에대한 잔학행위 일체를 그에게 덮어씌우고 자신을 대신 교수대로 보내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나 분노가 일지 않았을까. 아니면 맥아더 장군의 초조감에대해 한마디의 멸시 표현이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사실 맥아더는 필리핀에서 초기 일본군의 파죽지세에 밀려 자신의 부하들을 버리고 혼자 도망쳤다는 점때문에 포로학대 문제를 들어 반드시 희생양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홍사익은 왜 말이 없었을까.

홍사익은 1946년 9월26일 처형장으로 이송돼 교수대에 올라갔다. 그가 최후로 참관인들에게 부탁한 것은 구약성서 시편 51편의 낭송이었다고 한다. “…내가 죄악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홍사익의 긴 침묵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그리고 후세인들의 그에 대한 친일파 분류 작업을 그 자신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홍사익의 충성의 대상은 과연 일본천황이었을까. 아니면 누구였을까. 최근의 친일파 논쟁을 보며 느끼는 단상(斷想)은 인간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라는 점이다.

/글 이신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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