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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포럼 게재 일자 : 2002년 04월 08일(月)
‘색깔론’ 과 성숙한 국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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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경선 과정이 뜨겁다. 말도 많고 탈도 있지만 끝내는 성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주목도 받지 못한 한나라당의 내분 수습 과정과는 대조적이다. 무엇이 악몽이고 무엇이 시대정신인가?

이번 대선은 단순히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하는 데 있지 않고 우리 정치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이래야 한다는 도덕적 주장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이기도 한 것 같다. 그것이 노무현 돌풍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난 주말에 노무현돌풍은 질기디 질긴 색깔론까지 막아냈다.

장안의 화제 노무현 돌풍. 예측을 깨고 반전을 거듭하면서 기대와 긴장이 있는 최대의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예상하지 않았던 거센 돌풍을 정면으로 맞았기 때문일까? 공격도 격렬하다. 아니, 격렬하다 못해 통속적이다. 음모론에 이어 이번에는 색깔론이다. 느긋할 때에는 나오지 않았던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좋아할 곳은 평양뿐이다.” 노무현 후보를 공격하는 이인제 후보의 표현이다. 이른바 색깔론이 시끄럽고 요란하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굳건한 1위를 지켜왔던 이회창 전총재도 노무현 돌풍에 맥없이 넘어가고 있다. 이회창 대 노무현의 구도에서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를 이길 수 없다는 조사가 상식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자 이인제 후보에 이어 이회창 전총재가 노무현 후보를 ‘급진 좌파’로 규정해버린 것이다. “급진세력이 좌파적 정권을 연장하려 하고 있다.” 이회창 전 총재의 말이다.

이런 공격이 순수한 이념 논쟁에 기반한 것이라면 생산적인 것이겠지만, 상대를 ‘빨갱이’로 몰아 깎아 내리겠다는 발상이면 얼마나 치졸한 것인가? 그런데 이런 문제 제기가 정말 신념에서 나왔을까?

우리 사회에서 색깔론의 핵심은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노후보의 주장을 급진 좌경이라고 비판하는 이인제 후보는, 노후보측에 따르면 13대 국회 때 국가보안법 폐지와 대체 입법을 주장했었단다. DJ정부에서 국가보안법을 개정한다고 하니까, 그런 좌파적 발상은 안된다고 비판한 YS는? 그는 87년, 대선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쌍수를 들고 국가보안법 개정을 반대하는 JP는? 그는 DJP연대 때 국가보안법 개정에 동의했었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이쯤 되고 보면 색깔론의 색깔이 보이는 것 같다. 그것은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고뇌에서 나온 이념 논쟁이라기보다 도덕적 결함이 있는 기득권 세력이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막기 위해 국민을 기만하는 일종의 통치술이 아닌지.

그런데 정말 ‘색깔’은 위험하고 불길한 것인가? 정말 좌파는 악하고 우파는 선한 것인가? 좌파인 영국 노동당은 집권당이다. 그래서 영국이 경계의 대상이고 블레어 총리는 위험한 인물인가? 독일의 사회민주당은 좌파정당이니까 악한 정당인가?

사상 최고의 빈부 격차를 만들어낸 김대중 정부가 어떻게 블레어 정부보다 좌파적일 수 있는가? 우리의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클린턴정부는 좌파여서 악한 정권이었는가? 그리고 노무현 후보는 좌파여서 불안한가?

‘매일경제’가 최근 기업 최고경영자(CEO) 145명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CEO라면 존재론적으로 우리 사회의 보수의 핵일텐데 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노무현 후보가 비전 제시, 노사 관리 능력 등 여러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것은 재계가 소위 “좌파 노무현”을 불안하게도, 불길하게도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닌지. 보수성이 강한 대구, 경북에서도 노후보는 색깔론의 맞바람을 이겨내고 1위였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국민이 색깔론에 놀아나지 않을 만큼 성숙했다는 뜻이 아닐지. 남을 흠집내고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서 색깔론의 시대는 갔다. 이제 색깔론을 제시하는 후보는 선거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좌는 위험하고 불길하다는 냉전 시대적 색깔론은 21세기의 무기로서 너무 낡았고, ‘빨갱이’라는 최악에 기대어 마음대로 매카시적인 칼자루를 휘둘렀던 그 몽매한 악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우리 국민이 성숙해 있기 때문이다.

/글 이주향 수원대 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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