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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02년 04월 25일(木)
고스트바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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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가 다루는 영역은 그야말로 끝이 없다. 스포츠 만화하면 야구·축구는 기본이요 골프·유도·사이클·철인3종경기를 다룬 작품까지 있으며 요리 만화하면 초밥·라면·카레라이스에서부터 프랑스요리·베트남요리로 그 종류가 한없이 뻗어나간다.

철저한 사전 조사와 취재, 그리고 거기에 풍부한 상상력을 가미한 일본 만화는 일본인들의 오락이자 교양서가 되고 때로는 수천만부씩 팔려나가 사람들의 생각과 삶을 바꿔놓기도 한다.

일본에서만 1200만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꺼져가는 일본의 바둑계를 부흥시키고 있는 한 편의 만화 ‘고스트 바둑왕’(원제 ‘히카루의 바둑’. 홋타 유미 글·오바타 다케시 그림·서울문화사에서 14권까지 발행).

지난 99년부터 일본 만화잡지 ‘주간 소년 점프’에 소개된 이 만화의 인기로 90년대 들어 급격하게 줄어들었던 일본의 바둑 인구는 최근 몇년간 눈에 띄게 증가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플레이 스테이션’을 버리고 바둑판 앞에 앉기 시작했고 ‘바둑반’이 학교의 인기동아리로 떠올랐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기원과 바둑용품점이 때아닌 호황을 맞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과연 무슨 내용이기에. ‘고스트 바둑왕’의 줄거리는 매우 단순하다. 바둑에 아무 관심이 없는 초등학교 6학년 히카루는 우연히 낡은 바둑판에 깃들여 있던 일본 중세의 바둑기사 사이의 영혼을 만나 바둑을 접하게 된다. 처음엔 규칙도 모른 채 사이의 지시에 따라 그저 바둑돌을 올려놓기만 하던 히카루는 일본 최고 바둑 명인의 아들이자 바둑 신동인 동갑내기 아키라를 만나 대국을 갖게 되면서 바둑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자신만의 실력을 쌓아나간다.

우연히 재능을 발견한 한 아이가 영웅으로 성장한다는 스포츠 만화의 전형적인 스토리를 따르고 있으며 등장 인물들의 바둑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열의 등이 재미를 안겨주는 작품이다. 일본의 인기 미녀 기사 우메자와 유카리의 감수를 받아 공들여 그린 대국 장면은 바둑을 조금 ‘아는’ 사람들도 감탄하도록 치밀하게 구성됐다. 초보자들을 위해 중간중간 바둑의 용어나 법칙 등을 상세히 설명해 주는 ‘서비스 코너’도 마련돼 있다.

그나저나 조훈현·이창호 등 세계 최고의 기사들을 양성한 우리 나라에선 왜 이런 만화가 나오지 못하는 걸까. 하긴 만화를 그저 ‘백수들의 여가활용’ 정도로 생각하는 척박한 만화문화와 ‘대박’이래야 기껏 1만부 팔리는 침체된 만화 시장에서 그 어떤 만화가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바둑판을 연구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들이 가진 문화에 대한 충분한 애정과 투자만이 사회 전체의 풍요로운 삶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고스트 바둑왕’은 잘 보여주고 있다.

/ 글 이영희 misquick@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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