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빅토르 초이

1990년 7월 모스크바 올림픽 스타디움. 언더그라운드 록커 빅토르 초이(崔)가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을 열창한다. 음습한 색채의 카리스마적인 저음이 콘서트장을 뒤흔든다.

‘하얀 눈, 회색얼음/갈라터진 땅에 조각난 담요같이/도시는 거리에 목을 조르고 있다/ 도시 위에 구름이 흐르고 있다/하늘의 빛을 가리면서/도시 위에는 또 노란 매연/도시는 이천년이라는 시간을/태양이라는 이름의 별아래서 자라왔다.’ 10만의 관중은 눈물을 흘리며 열광한다. 한달 후 그는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로 요절하고 만다. 그의 나이 28세. 오는 15일이 그가 죽은 지 12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가 활동하던 1980년대 중후반은 매우 의미심장한 시기다. 고르비의 ‘페레스 트로이카’열풍이 러시아를 휩쓸던 때다. 그의 노래는 희망없는 사회상을 풍자한 한편의 시로, 철학서적과 같이 묵직하다. 젊은이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었고, 그 곳에서 변화와 희망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반(反) 페레스 트로이카들이 교통사고를 가장해 그를 죽였다는 의혹이 지금까지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어쨌든 그의 노래가 페레스 트로이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록 음악계의 정설이다.

빅토르 초이가 죽은 후 그의 영혼은 중국에서 조선족 록 가수 츠이 지엔(崔 健)에 의해 다시 살아난다. 1991년 MTV의 뮤직 어워드에서 ‘일무소유(日無所有)’로 ‘국제 시청자의 선택상’을 수상하며 록 스타로 부상한다. 츠이 지엔의 노래는 빅토르 초이와 ‘닮은 꼴’이다.

딱히 번안곡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의 노래속에는 빅토르 초이가 살아 숨쉬는 듯하다. 중국의 사회상을 은유적으로 풍자한 ‘해결’‘붉은 깃발 아래서’등도 비슷한 풍이다. 빅토르 초이와 같이 그도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록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카레이스키’ 빅토르 초이가 죽은지도 벌써 12년. 모스크바에서는 지금도 그를 추모하는 공연이 해마다 열리고 아르바트의 ‘빅토르 초이 벽’에는 추모객들이 줄을 잇는다. ‘묘소 지킴이’ 팬들도 날이 갈수록 늘어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지난해부터 빅토르 초이 인터넷 홈페이지가 만들어지고, 그를 사랑하는 팬 클럽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그의 은반도 인기가 꾸준하다. 이 한여름 밤, 숨을 몰아 절규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차 한잔은 어떨까.

/이상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