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근대문화 유산>‘근대사의 자취’ 꼭 헐어야 하나

  • 문화일보
  • 입력 2003-02-2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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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문학의 선구자인 육당 최남선(1890∼1957)의 옛집 ‘소원(素園·서울 강북구 우이동)’이 1월25일 철거된 이틀뒤인 27일에는 연세대내 ‘연합신학대학원’이 새벽에 강제 철거됐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1886∼1965)이 직접 설계해 41년간 살았던 고택(서울 종로구 원서동) 역시 상당 부분 훼손된 가운데 대한민국예술원(회장 차범석)이 보존 촉구에 나서면서 간신히 완전철거 위기를 모면했다.

한국 근대사 주요인물과 역사의 자취가 배어있는 건축물 등 근대문화유산들이 부실한 문화재보호법과 지방자치단체의 개발우선정책으로 무분별하게 훼손되고 있다. 그 현장과 근본 보존대책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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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예술인의 산실 서울 종로구의 버려진 고택들〓자하문터널 근처 서울 종로구 부암동 325의 2번지 소설가 빙허 현진건의 고택(건평 300여평) 훼손 현장을 24일 소설가 오인문(서울문예인유적보존회대표)씨와 함께 찾았다. 최근 종로구청에서 세운 ‘빙허 현진건’고택 입석이 서있었지만 집주인은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담을 천조각 등으로 가려놓았다. 바로 뒤에 세종대왕 3남 안평대군이 풍류를 즐겼던 무계정사 유적과 대조적으로 텅빈 집에 거미줄만 쳐진 폐허였다.

기와지붕 사이에 새는 비를 막기 위해 쳐놓은 텐트마저 낡아 구멍이 뚫린채여서 대들보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이 집은 빙허가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하고 동아일보 사회부장직에서 쫓겨나, 양계·양돈을 하면서 ‘무영탑’‘흑치상지’등의 역사장편소설 창작에 매달렸던 곳. 당시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한 이 집의 복원에 대해 서울시측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서양음악의 선구자로 ‘봉선화’등 민족적 정서와 애수가 담긴 노래를 작곡한 홍난파(본명 홍영후·1897∼1941)의 종로구 홍파동 고택 역시 개인 소유로 방치돼 있다. 병약한 천재 홍난파가 결혼생활을 하며 작곡활동을 했던 이곳은, 집주인이 한때 집을 헐고 개축하려고 했으나 오인문씨로부터 홍난파의 집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개축을 포기했다고 한다.

종로구 계동 북촌 한옥보존마을에는 만해 한용운(1879∼1944)이 성북동 심우장으로 이사하기 전에 살았던 고택이 있다. 집의 규모가 줄어든데다 여러 가구가 세들어 살고 있어 옹색하기 그지없고 그나마 나무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한용운은 설악산 백담사에서 시작한 대표시 ‘님의 침묵’을 이 집에서 탈고했다. 더구나 이 집은 3·1독립운동 당시 천도교대표 등과 함께 기미독립선언문 강령을 작성한 현장이기도 하다. 구한말과 일제시대 문학 예술인들이 많이 거주한 종로구에는 ‘오감도’의 시인 이상의 낡은 한옥기와집이 서울대 건축학과 후배들에 의해 보존돼 ‘이상기념관’으로 거듭날 전망이다.

이밖에 월탄 박종화(평창동)·춘원 이광수(홍지동)의 고택과 근대 서예대가 소전 손재형(1903∼1981)의 고택(서울시 유형문화재23호·대원군 사랑채가 있음)이 전통한국요리 전문집 석파랑과 반으로 나뉜 채 보존돼 있다.

◈근대 개항장인 인천 중구의 조계지 훼손현장〓한국 최초로 서양식 근대 도시계획이 도입된 인천 또한 근대문화유산 보존대책이 시급한 곳. 특히 중구 16만평 부지에 일본·중국(청)을 비롯, 영국·프랑스·독일 등이 조계지로 사용한 근대건축물 79점이 훼손위기에 놓여 있다. 이곳은 새로 차이나타운을 건립하면서 많은 근대건축물들이 파괴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인천 중구 북성동·선린동의 중국 풍물상가 건립과정에서 중국인이 국내 최초로 세운 81년 역사의 화교교회인 중화기독교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화교학교내 구 청국영사관 회의청(중구 선린동·1910년 건축) 목조건물 지붕은 일본식으로 변형됐고 내부공간만 일부 남아있다. 이곳은 이미 사라진 구 청국 영사관의 황제와 총통 친필 현판이 걸려있으나 등록문화재로 지정도 안돼, 차이나타운 건설붐과 함께 훼손될 처지에 있다.

3년전부터 중구 해안동 일대에 있는 대규모 붉은 조적조 창고(1940년대 건축)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대형쇼핑몰이나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의 전신인 구 식산은행(중구 해안동·1919년 건축)은 2001년 8월 철거돼 현재 중구청 공용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형편. 청국과 일본 조차지를 경계 짓던 진입계단(1884년 건축)은 국내 최초의 언덕형 돌계단으로 인근 조경과 더불어 보존가치가 높은 역사적 문화유산인데도, 구청에서 아무 관련이 없는 공자상(중국 기증)을 최근 세워 역사현장을 심하게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인천〓정충신기자 csjung@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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