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참사>“대구참사를 벌써 잊다니...”

“두렵고 힘겨운 길이지만 뜨거운 열기속에서 마지막까지 우리를 생각했을 형님, 누나, 어머니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습니다.”

200여명의 희생자를 낸 대구지하철 방화참사 실종자 가족 4명이 사고발생 한달도 되지 않아 잊혀가는 희생자들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되돌리기 위해 서울로 향했다.

이들은 실종자의 신원확인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들어버린 언론과 당국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한발짝 한발짝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번 참사에서 첫 발화 전동차 맞은편 1080호에 탑승했다가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실종자 신상효(40·울산시 신정동)씨의 동생 태형(35)씨와 신명희(여·41·대구시 동구 율하동)씨의 동생 진석(33)씨, 그리고 이순자(여·48·대구시 달서구 신당동)씨의 딸 전은영(23)씨와 이씨의 동생 은숙(31)씨 등 4명은 주말인 지난 8일 오후 3시30분 가족들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대구 중앙로역을 빠져나와 도보행진에 나섰다.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한 수많은 주검이 그대로 외면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이들의 최종목표는 서울대학교. 당초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사당으로 갈 생각을 했지만 가족들의 죽음이 정치성향으로 비칠까봐 ‘이 나라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여 있다’는 서울대로 바꿨다.

이번 도보행진의 리더격인 신태형씨는 “수백명이 희생된 안타까운 현실을 한달도 되지 않아 잊어버리는 국민들이지만 젊은 지성인들에게만이라도 경각심을 일깨워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당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은영씨는 “아픔이 있는 곳에서 같이 아파하고 슬픔이 있는 곳에서 같이 슬퍼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그런 곳이 진정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라고 믿고 싶다”며 “길을 걸으며 발이 부르터 떨어져 나갈지라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어머니의 죽음이 허망하게 사라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를 악물었다.

하루 30㎞씩 12일정도 강행군을 예상하고 있는 이들 실종자 가족들은 10일 오후 7시 대구에서 100㎞가량 떨어진 상주시 서문동 중앙네거리에 도착, 상주시민들을 상대로 대구지하철 참사 관련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들의 고독한 여정은 아직 보은~청주~진천~안성~용인~의왕~서울대까지 220㎞가 남아있다.


대구〓한강우기자 hang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