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기자의 만화창고>어려운 집안 좌절않은 ‘천재무용수’

한 친구가 있었다. 4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이미 나의 오랜 꿈이던 체르니 50번을 능숙하게 연주하던 친구였다. 그 친구의 피아노 소리는 누구와도 달랐다.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나는 어린시절 그 친구의 피아노 연주를 통해 배웠다.

하지만 친구의 집안은 점점 어려워졌고 중고등학교를 지나며 그 친구는 혼자 피아노를 쳐야 했다. 대학교수의 레슨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리고 대학원서를 쓰던 무렵, 그 친구는 내게 담담히 말했었다. ‘피아노가 좋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만화 ‘스바루’(소다 마사히토 글·그림, 학산문화사에서 8권까지 발행)를 읽을때마다 그 친구가 떠오른다. 무용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천재소녀 스바루. 하지만 어려운 집안형편으로 발레레슨 같은 건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소녀. 뇌종양으로 죽어가고 있는 남동생 카즈마를 보살피던 스바루는 하루종일 병상에 누워있어야 하는 동생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자신이 겪은 사건들을 몸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스바루의 춤에 대한 천재성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과정은 순탄치 않다. 결국 동네 나이트클럽의 댄스선생에게 춤을 배우게 된 스바루. 그러나 한계를 모르고 자라나는 그의 뛰어난 재능은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스바루는 결국 발레의 본고장인 뉴욕으로 진출, 세계적인 발레리나 프리실라를 만나 최정상의 발레리나로 도약한다는 이야기다.

연극을 향한 한 소녀의 꿈을 다룬 ‘유리가면’은 말할 것도 없고 ‘피아노의 숲’ ‘노다메 칸타빌레’ ‘오디션’ 등 예체능의 천재를 그린 만화들은 무수히 많다. 주인공들은 다들 스바루처럼 암담한 현실을 딛고 온갖 고난끝에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선다.

사실은 정말 ‘만화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종류의 스토리에 열광하는 이유는 어린 마음에도 감히 천재라 믿었던 한 친구의 피아노 연주가 지금까지도 내 맘을 쿵쿵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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