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기자의 만화창고>종말說 나돌던 해 태어난 초능력소녀

어릴적, ‘1999년’이라는 해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1999년 지구와 행성이 부딪쳐 대폭발이 일어날 것이라는 둥, 세계역사를 뒤바꿀 독재자가 나타날 것이라는 둥 각종 추측과 유언비어 속에서 ‘그때가 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친구들과 의논하곤 했던 기억. 무시무시할 것 같았던 그해를 무사히 보내고 멀쩡하게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 아직도 내게는 1999년에 태어난 꼬마들을 볼때마다 ‘저 애에겐 뭔가 특별한 능력이 있을거야’라고 상상하는 버릇이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중학교때 읽은 신일숙의 만화 ‘1999년생’(팀매니아에서 2권으로 완결) 때문이다.

작품의 배경은 2016년의 미래, 세기말부터 시작된 외계인들의 침공으로 지구는 계속 전쟁중이다. 지구의 혼란기이던 1999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다른 인간들보다 뛰어난 ESP(Extra Sensory Perception·초능력)가 있다는 것이 발견되고 지구방위대는 이들의 능력을 외계인들과의 전쟁에 이용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최고의 ESP 능력을 지닌 17세의 소녀 크리스는 이 ‘1999년생’ 군단의 전투조에 자원해 또래 남자들로 구성된 팀의 조장이 된다. 아버지의 외도때문에 이성에 대해 심한 결벽증이 있는 크리스는 남자 조원들과 함께 지내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뛰어난 교관 로페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의 지도아래 차츰 최고의 전사로 커나간다.

순정만화 팬들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이 ‘1999년생’은 지난 1988년 최초의 순정만화 잡지였던 ‘르네상스’에 연재됐던 ‘고전’이다. 15년의 시간이 흘러 다시 읽는 이 작품은 지금은 대가가 된 작가 신일숙의 다소 미숙했던 그림과 과장된 대사 등으로 조금 촌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수많은 여학생들의 맘을 설레게 했던 매력적인 로페스 교관의 캐릭터와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탄탄한 이야기 구성은 여전히 감탄할 만하다. 특히 마지막의 허를 찌르는 반전은 결말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헉’하고 잠시 숨을 멈췄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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