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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03년 08월 01일(金)
(6) 대구 ① 자본,권력에 ‘옛 성곽의 도시’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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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를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떠돌다 보니, 남은 돈 엽전 일곱 푼이 아직도 많은 것이니, 그래도 너만은 주머니 속 깊이 간직하려 했건만,황혼에 술집 앞을 이르니 어이 할거나.” 어둠이 깔리는 경상감영공원에서 김 삿갓의 시 한수가 가슴에 와 닿았다. 천리를 지팡이 대신 카메라에 의지한 채 떠돌다… 낯선 도시에서 밤을 맞으니 어이 할거나. 지친 몸을 달래려 막걸리집이 많다는 향촌동 골목을 기웃거려 보았다. 격동의 세월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막걸리 주전자마냥 우그러진 세상의 한을 이곳에서 풀었을까. 그러나 이제 향촌동의 밤풍경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우중충한 무궁화 백화점처럼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북적이던 이들은 어디로 갔나. 그들은 이제 불야성 젊음의 거리, 동성로와 중앙로로 갔단다.

동성로는 대구광역시 패션과 유행의 1번지. 이 거리는 북쪽의 ‘대구역’ 앞에서 시작되어 패션쇼핑몰 ‘엑슨 밀라노’와 ‘대구백화점’으로 이어져 ‘중앙파출소’ 앞에서 끝난다. 누군가는 번쩍이는 쇼 윈도와 간판의 물결을 보고 착각할 수 있다. 거리명이 ‘동쪽의 별처럼 빛나는 길’(東星路·동성로)이라고. 그러나 ‘동쪽 성벽 길’(東城路·동성로)임에 주목하시라. 대구시 중심가엔 이처럼 성곽과 관련한 거리명이 많다. 예컨대 포정동 경상감영공원을 중심으로 북성로, 동성로, 남문로, 서성로 등은 뚜렷하게 성곽의 방위를 표시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시가 센강 가운데 시테 섬의 작은 마을 뤼테시아 파리지오룸(Lutetia Parisiorum)에서 출발했듯이, 오늘날의 대구시는 바로 이 읍성에서 기원한 것이다

대구 읍성은 원래 1591년(선조24년)에 완성된 토성이었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 중 왜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1736년(영조12년)에 다시 돌로 쌓여졌다. 이 때 규모는 이전의 토성보다 긴 총둘레 2124보(약 2.7㎞), 높이는 서쪽과 남쪽이 18척(약 5.6m), 동쪽과 북쪽이 17척(약 5.3m)이었고, 성에는 4개의 정문(공북문, 진동문, 영남제일관, 달서문), 2개의 소문(동소문, 서소문), 4개의 망루가 있었다(‘경상감영 4백년사’1998). 읍성은 경상감영이 1601년 상주에서 대구로 옮겨오면서 경상도의 행정, 사법, 군무를 담당하는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대구의 역사를 만든 성곽은 1907년 모두 해체되어 흩어져 버렸다. 이제 공원으로 변한 경상감영 안에는 ‘선화당’과 ‘징청각’만 달랑 남아 있다. 감영 바깥문인 ‘관풍루’는 헐려 1970년 달성공원에 복원되었고, 완전히 헐렸던 읍성 남문인 ‘영남제일관’은 1980년 엉뚱하게 먼 동쪽 금호강가 망우공원에서 부활했다. 역사적으로 엄청난 외상을 입고도 엉터리 땜질 처방만 한 대구시에서 나는 상처의 후유증을 발견한다.

달성공원에서 관풍루를 찾았을 때, 나는 놀라 뒤집어졌다. 관풍루는 돗자리 펴고 삼삼오오 바둑과 장기를 두는 ‘노인정’이 되어 있었다. 아예 캐비닛까지 갖다 놓았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문제는 관풍루가 잘못 복원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계단에는 대못까지 박아 놓고 우산을 걸어두었다는 것이다. 근대 사진자료에 따르면, 관풍루의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정면에서 볼 때 3칸 중에 오른쪽 칸 뒤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가운데 칸에 대각선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다. 게다가 이 앞에 세워진 “문화재로 지정된 유산이니 관풍루 기둥에 기대어 운동을 함으로써 자칫 붕괴의 위험이 있으니 운동을 삼가 달라”는 경고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엉터리로 문화재를 복원한 시당국이나 여기에 못질해 우산걸고 기둥에 배치기·등치기도 불사하는 ‘마초 시민들’의 문화의식에 경악할 뿐이다.

이처럼 엽기적 관·민 합작품을 나는 거리 곳곳에서 발견한다. 지하철 중앙로역 입구는 검게 그을린 채 사고현장의 참상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한데 모종교단체와 대구지하철공사가 함께 내건 현수막은 시치미를 뗀 채 비정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유니버시아드 대회, 대구 시민의 자랑, 질서·친절·청결로 세계인을 모십니다.” 순간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이 사이코 드라마를 어쩌란 말인가. 나는 이 도시의 정신분석을 위해 여러 지점의 혈을 짚어 보았다.

흥미롭게도 대구시는 삶의 터전으로서 옛 읍성 보다 경상감영의 정치적 역할과 가치에 상대적으로 더 집착한다. 달성공원에 있는 향토박물관이나 황금동 국립대구박물관에 가보시라. 전시 내용이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읍성 관련 도시 구조와 삶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다. 주로 찬란했던 경상감영의 옛 영화를 편집증적으로 기리고 있지 않은가. 혹 이것이 대구 2·28 학생의거와 같은 민주적 전통을 무색케한 현대사 속의 불행의 원인이 아닐는지. 대구는 아직도 경상감영의 맥을 이어 권력중심도시로서, 3명의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권위적 꿈에 사로잡혀 있는가.

역사에 가정법은 없다. 하지만 만일 읍성의 성벽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대구는 1796년(정조 20년)에 완성된 화성(수원성)과 같은 성곽도시를 문화유산으로 품게 되었을 것이다. 어디 그 뿐이랴. 60년 후 화성 축조로 이어진 조선후기 축성 기술의 변천사를 생생히 증언했을 것이다. 또한 오늘날 대구는 굳이 경상감영을 강조하지 않아도 과거와 현재가 한데 어우러진 도시문화를 한껏 자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구 읍성의 철거에 얽힌 이야기는 이 ‘달구벌 불행’의 뿌리를 암시한다.

성벽을 철거한 위인은 경북 관찰사서리 겸 대구군수였던 박중양(朴重陽)이었다. 그는 조정의 승인도 없이 1906년 일본 거류민단의 주장을 받아들여 철거 작업에 들어갔다. 마침내 1907년 성벽 전체는 헐리고 말았다. 종종 매국노들이 애국지사로 둔갑하듯, 박중양을 일컬어“대구를 근대도시의 공간구조로 발전시킨 선각자”라고 주장할지 모른다. 과연 그는 19세기 중엽 파리를 근대도시로 다시 디자인한 도시계획의 선구자 조르주 오스망(Georges Haussman) 남작과 같은 인물일까. 웃기는 이야기다.

기록에 의하면, 훗날 “박중양이 전라남도 관찰사로 전근 갈 때 일본인들은 석별의 기념으로 시계를 선물했을 만큼 그를 고맙게 생각했다”고 한다(‘달구벌의 맥’, 1990, 208쪽). 이 양반 덕택에 대박이 터졌기 때문이었다. “일본인들은 대구역 근처에 매입해둔 도원동 일대 수만평의 땅을 개발하기 위해 대구읍성의 철거를 요구했던 것이다”(‘경상감영 4백년사’, 1998, 429쪽). 오늘날 대구시 지도를 보아도 그 의도는 분명히 드러난다. 읍성을 허는 명분으로 삼았던 도시개발은 순전히 일제의 자본침투와 식민지 개발이라는 뚜렷한 야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싼값에 사들인 도원동 일대 저습지를 헐어낸 성벽의 흙과 석재로 매립해 땅값을 올리고, 자신들의 거주지역에 맞춰 경상감영을 칼로 베듯 십자로(현 서문로)를 뚫고 식민지배의 관청들을 세웠다.

‘대구 읍성 매판기(買辦記)’가 최근 완공된 대구역사에서 반복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생긴다. 분명 표지판이 있건만 대구역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 도시의 얼굴에 해당하는 중앙역 건물이 한 백화점에 붙은 매미처럼 지어졌기 때문이다(사진4). 원래 대구역은 1903년 경부선 철도개통을 위해 완공되었다. 한데 역 일부를 일본 거류민단에 임대해 그들의 경비조달을 도왔다니 매판의 역사는 끈질기다. 한 대기업에 제 얼굴을 내준 대구시의 모습에서 ‘박중양의 시계’가 떠오른다. 그 이유를 당국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기 바란다.

전 서울대 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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