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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03년 08월 25일(月)
죽음으로 ‘오늘’ 연 시대 앞서간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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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코타 조각가 권진규 30주기展

현대 한국 조각을 대표하는 테라코타(점토를 구워 만드는 조각기법)의 작가 권진규(1922~1973). 50년대 일본 유학중 장래 유망한 조각가였던 그가 귀국후 국내미술가의 냉담한 반응과 작가로서의 고통과 갈등끝에 결국 자살로 51세의 생을 마감한 지도 30년이 흘렀다. 권진규 30주기전이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02-736-1020)에서 28일부터 9월15일까지 열린다.

◈한국적 리얼리즘의 조각가〓59년 귀국후 14년간의 작품활동을 통해 그는 색다른 소재 실험과 독창적인 이미지를 추구했다. 국내에서 추상조각이 활발하던 시절, 그는 흙을 빚어 굽는 테라코타와 종이에 옻칠한 건칠(乾漆) 소재의 사실적 인물과 동물상으로 특유의 ‘한국적 리얼리즘’을 펼쳤다.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조각가라는 평가는 그의 사후에 이뤄졌다. 74년 명동화랑에서 1주기 추모전을 시작으로, 15주기인 88년 호암갤러리에서 본격적인 권진규 회고전이 열렸고, 가나아트센터 개관기념전의 하나였던 25주기전에 이어, 이번에 가나아트센터가 개관 20주년기념으로 권진규 30주기전을 마련한다.

◈한 조각가의 자살〓서울 성북구 동선동 작업실에서 73년 5월3일 목을 맸던 권진규는 박혜일 서울대 원자핵물리학과 교수에게 유서를 남겼다. ‘감사합니다. 최후에 만난 우인들 중에서 가장 희망적인 분이었습니다. 인생은 공(空). 파멸(破滅). 오후6시 거사.’ 그는 자살전 경상도의 한 절에서 며칠 묵으며 스님과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살 당일 오전에는 마두상 자소상을 기증한 고려대박물관에 들러 작별인사하듯 작품을 살폈다.

생전에 서울과 도쿄에서 세번의 개인전을 열었으나 일본에서의 호평과 달리 그의 작품을 고답적, 시대착오적이라 폄훼하는 국내미술가의 냉대가 내성적인 작가를 더욱 외롭게 만든 것일까. 고혈압과 신장병같은 병마에 시달렸던 과묵한 작가의 선택은 영면이었다.

◈속리산의 불상작업과 일본인 스승〓권진규는 함북 함흥출신. 20세때 도쿄로 건너가 사설미술강습소에 다녔다. 이듬해 일제 비행기공창에 동원되자 고향으로 도망나왔다. 해방후 가족과 함께 월남, 서양화가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수업했고, 윤호중 등과 함께 6개월여 속리산 법주사 대불 입상 작업에 참여했다. 48년 26세때 다시 도일, 도쿄예술원을 거쳐 무사시노미술학교에서 세계적 조각가 부르델의 제자인 시미즈 다카시에게 조소를 배웠다. 일본 공모전에서 잇달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내던중 59년 37세때 귀국, 동선동 작업실을 마련했다.

권진규와 9촌간인 서양화가 권옥연씨는 “댁 어른들이 진규아저씨의 미술유학을 만류했지만 부산에서 일본으로 밀항하자 학비를 보냈다”며 60년전을 회상했다. 자살 당일 오전 고려대박물관에서 열린 현대미술실 개막행사에 같이 참석했던 권씨는 “진규아저씨에게 음식을 권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행사후 아틀리에로 바래다주려 했지만 꼭 만나야할 누구를 기다리는듯 사뭇 거절했다”고 고인과의 마지막 만남을 떠올렸다.

◈자소상부터 ‘지원의 얼굴’까지〓그는 대상의 이미지만 빌렸을뿐 작품속에 자신의 이상을 담았다. 인물상은 삭발한 머리모양, 훤히 드러낸 목선과 상반신의 장식을 과감히 생략하며 얼굴을 강조했다. 편치 않던 시절의 심상을 반영하듯 강한 눈매와 심상치 않은 표정은 섬뜩하리만큼 음울하다. 말, 고양이같은 동물상 역시 사실적 표현보다 권진규만의 이미지가 확연하다.

테라코타를 좋아한 이유는 전과정에서 작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테라코타 특유의 제작방식을 선호했기 때문. 또 주문제작 대신 자신의 얼굴이나 제자 등 모델을 직접 골라 작업했다. 중학 미술교과서에 실렸던 ‘지원의 얼굴’은 서양화가 장지원씨가 홍익대 미대시절 모델을 섰던 67년 작품이다.

◈30주기전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작가 사후 30년동안 여동생이 보관해온 미완성작품을 포함해 전시품은 120여점. 첫 공개작품은 테라코타 여인상을 비롯, 부조와 석고틀에서 재현한 ‘여인’, 미완성의 목조 불상조각, 건칠 고양이 두상 등 20여점. 71년 명동화랑 개인전때 포스터로 다룬 건칠작품 ‘말’, 절친했던 미술평론가 유준상씨와 함께 제목을 붙였다는 ‘만남’, 일본에 있는 불상조각도 나온다. 또한 일본 유학시절 함께 살았던 일본여성이 보관해온 작가의 50년대 스케치북 2점, 지인에게 우송했던 유언 및 동선동 작업실에 30년간 그대로 남아있는 유품도 공개한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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