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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패권을 넘어 공존으로 게재 일자 : 2004년 01월 20일(火)
편향된 역사교육 막게 국가간 협의필요
中의 '동북공정'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시안(西安)은 고도로 워낙 유명해서 그곳의 역사박물관은 우리나라에서도 들러본 사람이 제법 있을 것이다. 한대(漢代) 진열실 입구에는 대형 지도가 걸려 있는데 별 설명 없이 영토를 표시하면서 한반도 중부까지 포함시켜 놓고 있었다. 8년전엔가 그 지도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중년의 중국인이 “허 평양까지도”하고 혼잣말을 한다. 섬뜩한 느낌이 들면서 관 주도의 역사교육이 우리나라에 대해 편향된 시각을 심어주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최근 중국에서는 경제 성장에 따라 이완되기 쉬운 국민 통합의 이념적 수단으로서 민족주의에 기대려는 경향이 늘고 있다. 역사학에서도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이라는 상고사 복원 계획은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다. 이 계획의 바탕에 깔려 있는 시각에 대해서 미국의 일부 학자들이 중국을 잠재적인 경쟁국으로 의식해서인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흥미를 끈다.

그러나 이웃나라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기 어렵다. 사실에 근거를 두고만 있다면 조국의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는 데 대해 선망의 감정은 있을지언정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진짜 우려되는 일은 역사학에서 민족 문제를 다루는 데에서 일어났다. 중국이 다수 민족의 국가라는 것, 그러면서도 절대 다수인 한족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현실에 문제의 뿌리가 있다.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켜 보려는 무리수를 낳은 것도 이 때문이다.

동아시아는 유난히 국가 간의 장벽이 높고 민족간의 배타성이 강한 지역이다. 그것은 단지 현대사의 경험 때문만이 아니고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의 거대한 압력에 대해 오랜 세월 이웃나라들이 대응 방법을 모색해 온 결과가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그만큼 중국의 압력에 대한 우려의 역사는 뿌리 깊은데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최근의 우호적인 교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에서 보여주는 민족주의적 경사는 우리로서는 충분히 경계할 만하다. 심지어 명분이나마 이상 사회를 지향했던 문화대혁명 기간에도 이면에서는 한족이 주도권을 확립하는 국가주의 정책이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러한 조심성은 당연한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동아시아세계의 공존이라든가 보편적 가치의 실현 따위를 내세우는 무능력한 이상주의의 덫에 빠지고 싶지도 않고, 아니면 중국의 민족 문제라는 내부 사정과 결합된 미묘한 문제이니까 신중해야 한다는 식으로 자신을 위축시키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직선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은 반사 효과를 일으켜 중국의 국수적 경향을 도리어 부채질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는 대외적인 접촉을 할 때 민간인이든 전문가 집단이든 심지어는 정부조차도 성숙한 자세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다. 정치적인 행위와 분간이 가지 않는 집단적 대응, 선정적이라고도 할 언론의 주도, 한풀이하듯 표출되는 애국심. 우리 국민들의 민족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이 목표라면 몰라도 중국 측의 개선을 목표로 한다면 이러한 식의 대응은 문제를 오히려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중국인 학자들도 사석에서 민족주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곤 한다. 한국인들이 만주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지 않느냐는 추궁에 나도 당황한 적이 있었다. 중국의 성장에 따른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반응을 촉발시킨 계기들이 상당 부분 우리의 서투른 교류 자세와 대응 방식에도 있다는 점을 알고 냉정하게 현실을 판단해야 한다.

왜곡의 시도가 아직은 주류 역사학자들에게까지 크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원래부터 만주 지역에서 국수적 경향을 보였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것이 여기에다 영토 문제에 대한 관심이 큰 역사지리 연구자들, 그리고 민족학인지 역사학인지 애매한 토대를 갖고 있는 연구자들이 가담하는 모양이다. 중국에서의 민족학이란 원래 소수민족의 관리라는 필요성에서 출발한 것인데 이러한 시각이 발전하여 심지어 학문적 근거도 의심스러운, 한족을 중심으로 주변 민족들까지 망라한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낼 정도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이비 학문의 시각이 정부의 입장을 상당히 반영하고 있어서 역사교육에 채택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라고 다를 게 별로 없어 보이지만). 이러한 단계에 이른다면 정부의 공식적인 대응이 불가피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국제 협약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교육에서 국가 간의 협조는 이미 선례가 있다. 2차대전 이후 유럽에서 독일과 이웃 나라들은 역사교과서 협의를 가지고 최소한의 합의라도 도출하려고 노력하였던 일이 있는데 이제는 동아시아에서도 이러한 접근 방식에 대해 거론하기 시작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국민에 대한 역사교육에 있어서 이웃나라에 대한 배려는 평화적인 선린 관계를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우리는 이번 일을 학문적인 교류를 넓히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국가의 정책이 역사학 연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려운 전통이 있다. 사회주의 체제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양식 있는 연구자라면 사실의 왜곡은 피할 것이고 잘못된 정책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 할 것이다. 이와 비교하면 우리나라에서의 연구는 그래도 자유로운 풍토에서 이루어져 왔던 것이 아닌가. 이러한 장점을 살리는 길을 피해서 거국적으로 일치된 대응을 과시하기보다는 학술적인 교류를 통해 서로간의 이해를 심화시키면서 상호의 공존에 어떠한 길이 도움이 되는지 모색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의 왜곡에 대해서는 학문적인 교류의 장 위에서 학문적인 엄밀성을 가지고 대처함으로써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다만 문제는 언어의 장벽 등 이런 저런 이유로 그러한 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한계 속에서라도 우리의 견해를 소개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보았는지. 이러한 점에서 연구자들의 개별적인 노력과 함께 제대로 된 정부의 지원은 필요하다. 근래 적잖은 중국의 연구자들이 우리나라에 다녀갔지만 적지 않은 경우 구색 갖추기 식으로 장식처럼 이용한데 불과한 느낌이다. 이러한 접촉은 그들에게 혹 우리나라의 풍토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앞으로 제대로 된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될 때 역사 바로잡기라는 차원을 넘어서 동아시아세계의 형성과 교류에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와는 달리 우리나라도 당당한 일원으로서 소리를 낼 수 있게 말이다. 어차피 동아시아세계는 중국에도 우리에게도 눈앞에 도래한 현실이다.


정하현/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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