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배우로서 첫발 내딛은 느낌”

그녀에게는 대단히 실례되는 얘기지만, 아직도 대중에게는 배우 성현아 보다는 여러 파문의 주인공으로서 성현아가 더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연예저널을 들쑤셔 놓았던 몇몇 사건들은 성현아에게 배우아닌 뉴스메이커라는 막을 씌워놓았다. 그리고 그런 세월속에 배우 성현아가 설 곳은 없어 보였다.

그녀가 다시금 스크린에 돌아왔다. 2002년 ‘보스상륙작전’으로 은막을 두드린 적은 있지만 이번에는 무게감이 다르다. 존재의 위선과 틈새를 예리하게 파고드는 지적인 감독 홍상수감독이 그의 파트너다.

7년만에 첫사랑(성현아)을 찾아가는 두 남자(유지태, 김태우)의 이야기를 그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다음달 5일 개봉)는 홍감독의 이름값뿐 아니라 성현아의 낙점으로도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홍감독은 이미 ‘강원도의 힘’의 백종학 등 새로운 배우를 발견하거나 ‘오 수정’의 이은주,‘생활의 발견’의 예지원 김상경처럼 기존 배우의 쓰임새를 훌쩍 뛰어넘는 탁월한 배우조련 감각으로 정평나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아직 배우로서 내 이미지는 형성돼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 성현아에게 이번 작품은 더할 수 없이 중요한 성숙의 계기로 보인다. 14일 서울 강남의 사진작가 박상훈 스튜디오에서 만난 성현아는 시종 가벼운 흥분감이 깃든 밝은 표정이었다. 사진촬영, 인터뷰가 이어지는 스케줄이었지만 “일하는 게 너무 좋다”며 홍보담당자에게 “인터뷰, 많이 잡아주세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대학선·후배인 김태우, 유지태 두 남자가 동시에 사랑했던 한 여자(선화·성현아)를 7년만에 다시 찾아가면서 시작되는 이틀간의 기록을 담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감독의 전작들처럼 기억, 자의식, 관계 등 지극히 개인적이고 미묘한 의미들을 묻는 영화.

감독의 주문에 따라 20kg 가까이 살을 불린 유지태,김태우의 호연에 이번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이 확실시되는 등 기대가 모이고 있다. 특히 일찌감치 홍감독에게 매료된 프랑스 평단과 저널들은 국내보다 더한 취재열기를 보이고 있으며, 키에슬로브스키,고다르,알렝 레네 등 거장의 영화를 제작 배급한 프랑스 제작·배급사 MK2가 제작투자 및 프랑스 배급을 받아 화제가 됐다.

TV탤런트 시절부터 성현아를 눈여겨 봐왔다는 홍감독은 “그저 예쁘고 섹시한 성현아가 아니라 그녀가 내뿜는 여성적 이미지와 신비로운 내면이 극중 선화와 매우 유사하다”며 흡족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작품의 의미가 적잖은 것 같다.

“모든 걸 털어내면서 새로운 걸 채워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찍은 영화다. 연기, 사고방식, 태도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감독, 배우와 함께 해 행운이었다. 배우로서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디고 첫 관문을 통과한 느낌이다.”

―홍상수 감독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 자체가 뉴스였다. 처음 제의받았을 때 어땠는가.

“‘오 수정’‘생활의 발견’때도 오디션을 봤다. ‘오 수정’때는 나름대로 성장을 하고 갔는데 그게 오히려 감독님의 기대와 어긋난 것 같았다. 감독하고 배우도 운대가 맞아야 하는 건데 이번 작품에서 드디어 연이 닿은 셈이다. 배우라면 누구나 일해보고 싶은 홍감독님이니까 시나리오도 안보고 무조건 오케이했다.”

―실제 같이 작업해보니 어땠는지.

“연출 스타일이 섬세하고 디테일을 중시해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다. 시나리오없이 배우에게 즉흥연기를 시킨다고 알려졌는데 화면으로 봤을 때나 즉흥적으로 보이지 사실은 아주 치밀하게 계산된 자연스러움이다. ‘그랬어’‘그랬다’같은 어미의 차이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한 신을 보통 10번은 찍으니 결과가 좋을 수 밖에 없다. 감독이 워낙 디테일을 강조하니까 그거 신경쓰다 신의 흐름을 놓쳐 NG를 많이 냈다.”

―홍감독이 워낙 주당이어서 배우들과 술도 많이 마시고, ‘생활의 발견’에서처럼 배우에게 술을 마시게 한다음 술자리 연기를 끌어낸다고도 하던데.

“술이 배우들끼리 빨리 친해지게 하고 배우에게서 원하는 연기를 빨리 끌어내는 수단이라는 것을 아시는 것뿐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작품하면서 배우들끼리의 융화, 연대감이 작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처음 깨달았다. 영화나 드라마는 모르는 사람들끼리 친한 척 하면서 찍는 것이다. 카메라엔 안보여도 배우들이 서로 눈 똑바로 쳐다보는 거 쉽지 않다. 촬영들어가기전 넉달동안 내리 만나서 술마시고 얘기했다. 친해지고 편해지면 연기가 자연스럽게 풀어진다. 그 다음은 배우들이 서로를 믿고 연기하면 된다.”

―선화라는 배역은 어떻게 이해했고 연기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두 남자의 기억속에 각기 다르게 기억된 하나의 여자이자 이제는 세월의 흐름속에 과거와 달라진, 모두 세가지의 여자다. 세가지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하나의 여자인 셈이다. 첫사랑 여자라는 게 그렇듯 다분히 남자들이 꿈꾸는 여자의 모습인 것 같았다. 연기의 어려움은, 아주 일상적인 상황인데 일상적이지 않은 말을 내뱉거나 보통 감추어야 하는 말들을 상대(주로 남자)앞에서 하는 엉뚱함이었다. 처음엔 이해가 안됐는데 나중엔 엉뚱한 대사와 행동이 은근히 신났다.”

―연기외에 이번 작품이 개인 성현아에게 갖는 의미가 있나.

“이번 작업하면서 나의 생활사, 사고방식이 달라졌다. 그전의 나는 좀 나태했다. 미스코리아로 데뷔해 10여년간 일의 재미도 못느꼈고, 일때문에 잠못자는 것도 짜증나고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일이 너무 좋고 피곤함마저 사랑한다. 10년 팽팽 놀다가 이제야 일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깨달은 셈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여러 파문의 주인공으로 성현아씨를 기억한다. 세상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든 과거를 돌이켜볼 때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나.

“내 과거는 감추어지지도, 쉽게 잊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과거를 생각하면 좀 바보같이, 안이하게 살았다 싶다. 내가 워낙 기분을 따라가는 스타일이어서 그렇다. 기분대로 일을 벌이기도 하고 엎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어떤 결과가 나와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변혁감독의 스릴러영화 ‘주홍글씨’에 출연한다. 홍감독님에 이어 변감독님까지, 내가 감독운이 있는 것 같다. TV보다는 영화가 얼굴이 작게 나와서 더 좋고(웃음), 그저 재미있게 하는 연기보다 자기세계가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양성희기자 cooly@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