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청진기 대신 메가폰 잡았어요”

50대 현직 의사가 영화 감독에 도전해 화제를 낳고 있다.

20대 남녀 3쌍의 사랑방정식을 다룬 영화 ‘풀리쉬 게임’의 정성현(52·사진·본명 황부근) 감독은 의정부에서 19년째 안과를 운영중인 안과전문의.

5월초 개봉예정인 ‘풀리쉬 게임’은 ‘거짓말’의 김태연과 ‘와일드 카드’‘욕망’의 이동규가 각각 주인공을 맡았다. 제작비 5억원의 저예산영화지만 호주 시드니와 네팔 히말라야의 해외로케까지 감행, 알차게 진행됐다.

고려대 의대 70학번인 정 감독은 초등학교때 처음 영화를 본 후로 줄곧 영화에 꽂힌 시네필. 대학시절 ‘영상연구회’라는 영화서클에서 활동하며 누벨바그, 아방가르드 영화에 심취했던 ‘프랑스 문화원 세대’다. 의사직에 청춘을 바치면서 감독의 꿈을 가슴 깊이 묻었던 그는 90년대 초반부터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를 준비해왔다.

“시사회장에서 완성본을 보고 나니 힘들었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면서 감회가 새롭더군요. 예산이 여유가 있어서 자유롭게 연출할 수 있었으면 좀 더 좋았을텐데 하는 억울하고 아쉬운 생각도 들고요.” 충무로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그로서는 시나리오, 캐스팅, 촬영, 편집, 상영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그는 ‘풀리쉬 게임’을 만들며 금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적잖았지만 행복한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안하고 후회하거나 하면서 힘든 것, 두 가지 가운데 저는 후자를 택한거죠. 시간을 되돌려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예요. 뒤늦게 영화에 뛰어든 것이 분명 힘들었지만 도전할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겠죠. 만약 계속 꿈으로만 남겨뒀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는 원초적 질문과 권태에 시달렸을 거예요.”

감각적 이미지로 젊은이들의 다양한 사랑관을 포착한 영화의 제목은 ‘사랑은 게임, 그것도 바보같은 게임’이라는 의미다. “사랑은 철저하게 게임이에요. 연인뿐만 아니라 오래 살아온 부부도 마찬가지죠. 사랑을 믿지 않거나, 외면하거나 그 누구도 게임의 틀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 필연적인 우연이 개입되기 마련이며,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결국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가지 영화 소재 가운데 저예산으로 가능한 주제를 데뷔작으로 골라 잡았다는 그는 “함께하는 스태프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는 확신, 그리고 펀딩과 연출의 분리라는 두가지 조건만 갖춰진다면 또 다시 칼을 뽑고 싶다”며 차기작에의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수진기자 lul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