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Z 나라’까지 환상의 세계일주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 프랑수아 플라스 글·그림/솔

현대 유럽 최고의 그림책 작가로 꼽히는 프랑수아 플라스(1957~)는 인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한 지적인 그림책부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어린시절 ‘모비딕’을 보며 존재하지 않는 세상으로의 탐험을 꿈꿨다는 그는 인류학, 인문학, 지리학, 민속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으로 무장한 채 탐험과 모험을 모티브로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삶과 세상을 그려왔다. 국내에 출간된 ‘마지막 거인’(디자인 하우스)은 오랫동안 삽화가로 활동하던 그를 일약 유럽의 대표작가로 만든 출세작. 그래서 ‘오르배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은 플라스라는 이름만으로 반가운 책이다. 6권중 1차로 3권이 먼저 나왔다.

책의 설정은 이렇다. 오르배섬의 지리학자들은 지도를 만드는 것으로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연의 모든 현상을 지도로 만든다. 오르배섬은 사라졌고 세계의 지형, 풍속과 신화, 전설등을 담은 지도책 몇권만 남아있다.

A자 모양의 아마조네스 나라부터 Z모양의 지조틀들의 나라까지 26개 나라의 지도. 바로 책에 담긴 26개의 환상적인 이야기들이다. 배경은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지만 대략 14~19세기이며, 26개 나라들은 아프리카에서 중남미까지, 북극에서 사막까지 전세계에 흩어진 곳들이다.

이야기들은 주인공의 탐험기이기도 하고, 여행기이기도 하고, 일상의 풍속기이기도 하고, 때로는 한 사람의 성장기로 풀리기도 한다. ‘아마조네스 나라’편에서 벙어리 악사 유포노스는 여행도중 아마조네스 나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로 들어가 아마조네스 여전사들을 만나 함께 아름다운 천상의 노래를 부르고 ‘쌍둥이 호수가 있는 바일라바이칼’에서는 한쪽 눈은 칠흑처럼 검고, 한쪽 눈은 유리처럼 맑은 주술사의 운명을 타고난 무당의 일대기가 펼쳐지기도 한다. 한 14세 소년은 우연히 거인족을 만나고 (거인들의 섬), 궁궐점성가는 태양새의 비밀을 찾아 떠나고(비취나라), 장님 소년은 북가락 하나로 마상시합 최후의 승리가가 되기도 한다(코라카르 나라). 하지만 이야기들은 전체적으로 과학과 문명이전에 신화, 전설, 마술과 주술이 살아있던 시대, 그 속에서 자연과 신과 함께 살아간 사람들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이 같은 자연스러운 삶을 깨버린 서구문명과 합리주의를 은근히 비판한다. 예를 들어 거인족 나라를 찾은 소년은 거인족 심장석을 욕심내다 마치 거인의 호통과도 같은 폭풍우를 맞고, 살아서는 갈 수 없는 쪽빛 섬을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과학자들은 실명하거나 미친다.

특히 플라스의 그림은 글의 묘한 원시적 분위기를 살려낸다. 즉 삽화는 대부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거나 멀리서 전체를 잡아낸 그림이다. 빌딩숲 때문에 지평선을 볼 수 없는 현대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넓고 넓은 원시성이 그대로 살아난다. 또 각각의 이야기뒤에 그나라의 풍속, 민속, 동식물 등에 대한 민속지를 붙여놓았다.

상상속의 세계를 마치 실제하는 세계인양 완벽하게 만들어낸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물론 이는 온전히 상상력이라기보다는 작가의 폭넓은 지식과 방대한 자료에서 피어오른 상상력이다. 공나리 옮김.

최현미기자 chm@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