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은 몸으로 쓰는 詩 세상과 소통 꾀한다

춤은 인간의 발을 지상에 붙들어 매놓는 온갖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원초적 욕구의 표현이다. 물밑으로 끊임없이 빠르게 발차기를 하면서도 수면 위로 보이는 모습은 더 없이 가볍고 우아한 백조를 연상케하는 퀵스텝 댄서의 공중을 나는 듯한 가벼운 도약. 이를 바라볼 때 사람들은 무한한 자유를 호흡하고 벅찬 해방감을 느낀다. 평소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동료가 어느 날 파티에서 멋지게 춤을 추면 갑자지 그 사람이 아주 달리 보일 것이다.

잠시 동안만이라도 꽉 짜여진 현실의 틀을 벗어나 자유분방한 일탈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춤을 춘다. 춤을 추는 순간, 스스로에게서 평소 발견할 수 없었던 강렬한 생명력을 느낀다. 이 에너지는 생계에 찌든 몸과 마음에 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다.

춤의 예찬론자들은 딱딱한 학교나 직장 생활 등에도 매일 댄스시간이 있다면 사람들이 더욱 즐겁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잖아도 춤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이 예전과 같지 않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살사, 메렝게, 바차타 등과 같은 커플댄스가 새로운 사교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 이들 라틴댄스가 인기를 끄는 것은 이국적인 음색으로 연주되는 경쾌한 음악과 빠른 스텝, 육감적인 춤동작이 일상의 스트레스를 단번에 날려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이들 춤은 젊은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격식에서 자유롭다. 특별히 옷을 차려 입지 않아도 되고 왈츠나 파소도블레처럼 스텝이나 동작에 관한 규칙이 까다롭지도 확고하지도 않다. 따라서 배우기도 쉽고 잘 못춰도 웃음거리가 되지 않는다.

반면 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시간이 없거나 여건이 허락치 않아 춤을 출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춤을 경멸하는 사람들 얘기다. 이들은 아직도 춤하면 춤바람부터 먼저 떠올린다. 춤을 사회규범에서 벗어나는 천박한 끼, 부도덕한 행위로까지 간주한다. 춤에 중독되어 패가망신하거나 품위 손상을 두려워한다. 일전에 한 여성장관이 취미로 춤을 춘다는 사실이 대단한 뉴스거리로 다뤄진 데서도 우리사회의 춤에 관한 보수 심리를 읽을 수 있다. 일부 종교에서는 육체의 욕망을 표현하는 춤은 철저히 금기시된다. 인간을 육체와 정신으로 나누고 정신적 활동을 우위에 두고 있는 것이다.

책이 말을 걸고자 하는 사람은 춤을 경멸하는 사람들이다. 저자 이용숙씨는 독문학과 음악학을 전공한 음악 칼럼니스트다. 따라서 그의 책은 세세한 춤동작이나 요령을 가르치는 댄스교본이 아니다. 대신 그는 몸의 움직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춤이라는 대중예술의 한 장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책은 춤 중에서도 탱고에서 살사에 이르기까지 남녀가 짝을 이뤄 추는 다양한 커플댄스의 역사적 사회적 탄생 배경을 얘기한다. 예컨대 왈츠에 대한 평가와 수용은 각 시대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차이를 보여왔다. 왈츠는 한 때 교회와 귀족의 권위에 대한 저항의 방식이었는가 하면 민중의 저항을 달래는 우민화 정책의 하나로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오늘날에 와서는 자본주의와 특권계급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 빈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외침이다. 육체로 쓰는 가장 아름다운 시, 탱고에는 아르헨티나 대도시 뒷골목의 가난한 유럽 이민들의 좌절과 애환,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회한 등 비장미가 흐른다. 저자는 탱고가 여성이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이끌려 가는 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상대를 리드해야 하는 순간과 상대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순간, 나아갈 방향과 기다리는 법, 힘을 줘야 할 때와 힘을 빼야 할 때 등 파트너와 호흡을 맞춰 움직이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집시(히타노)들의 플라멩코는 내면을 향하는 춤이다. 정형화된 줄거리나 상황 묘사가 아니라, 원초적 에너지가 넘쳐나는 집시들의 즉흥적인 감정의 표현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서글픈 음악, 바차타의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움직임은 보는 이의 감성의 밑바닥을 건드린다.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카니발에 등장하는 삼바는 팬터지를 체험하게 한다. 춤을 통해 평소 빈민가 유색인과 지배계급 백인이 하나가 되고 이날 하룻밤만은 세탁부, 가정주부가 삼바의 여왕이 된다.

윤성혜기자 shyoon@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