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서 수행하라 깨달음은 멀지 않으니…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인의 지혜’(소걀 린포체 지음·오진탁 옮김·민음사·1999)라는 책이 있다. 티베트인의 생사관을 통해 티베트 불교의 전모와 정수를 설득력있게 펼쳐 보이는 책이다. 티베트 불교는 그전에 이미 여러 종류가 출간된 ‘티베트 사자(死者)의 서’류의 책을 통해 낯선 것이 아니었지만, 이 책으로 인해 티베트 불교가 새롭게 인식된 감이 없지 않다.

“자신의 전생을 알고자 한다면 현재의 상태를 면밀히 관찰하라. 죽음 이후의 삶을 알고자 한다면 자신이 현재에 행하는 행위를 면밀히 관찰하라.” 현재의 삶, 죽음의 과정, 현재의 삶과 다음 삶 사이의 중음도(中陰道), 그리고 환생 등으로 나눠지는 티베트 불교의 존재관은 아직도 우리에게 생소한 것이지만, 현재의 상태로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알아볼 수 있다는 파드마삼바바의 경구는 한 종교의 관념을 넘어 바로 ‘지금 여기’의 삶을 위한 금언으로 받아들이기에 손색이 없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불교 관련 책이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나온 2권의 책,‘달라이 라마, 삶을 이야기하다’(진형종 옮김), ‘달라이 라마, 죽음을 이야기하다’(이종복 옮김)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티베트인의 지혜’ 이후 티베트 불교의 정수를 가장 잘 드러낸 책이라 할 만하다. 달라이 라마의 통역자로 10년 동안 일한 바 있는 책의 편저자는 서른 권이 넘는 저서를 내며 미국 버지니아대에 티베트 불교학 교과과정을 개설한 티베트 불교학의 권위자.

‘달라이 라마, 삶을 이야기하다’는 1972년 달라이 라마가 인도 북부의 티베트 임시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16일간 진행한 강의를, ‘달라이 라마, 죽음을 이야기하다’는 17세기에 생존했던 제1대 판첸 라마가 총 17연으로 구성한 시 ‘중음도의 위험한 곤경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기원문,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영웅’에 대해 달라이 라마가 설명한 것을 편저자가 각각 정리한 것이다.

‘달라이 라마, 삶을 이야기하다’는 티베트식‘깨달음’의 길을 제시한 청사진이라 할 만하다. 범부인 우리에게 ‘깨침’ 혹은 ‘깨달음’은 생사를 걸고 백척간두에서 한걸음 내딛는 그 치열함으로 멀기만 한 것이나, 달라이 라마가 설명하는 수행은 평화로우면서도 부드럽다.

출가 수행자뿐만 아니라 재가자, 혹은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하는 도덕(평화, 연민의 마음), 집중 명상(고요하게 머무르기), 지혜(특수한 통찰력)의 훈련을 통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이 수행을 통한 깨달음이 간화선에서 이야기하는 확철대오 못지않게 개인과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인간을 괴롭히는 이런저런 욕망에서 자유롭고, 이웃과 내 주변의 온갖 것을 이롭게 하며, 생로병사의 고통에서마저 벗어나는 경지를 일상의 수행을 통해 범부가 성취할 수 있다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달라이 라마, 죽음을 이야기하다’에서는 죽음 자체보다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집중한 책으로, 현대인에게 고통과 두려움의 대명사가 된 죽음을 삶의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쉽게 설명한다.

사는 동안의 수행을 통해 최악의 고통과 두려움을 의미하는 죽음을, 존재의 한 과정이자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비한 수행의 핵심이 ‘가장 좋은 삶’이고, 가장 좋은 삶이 깨달음에 있다는 점에서 달라이 라마가 이야기하는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닌, 동전의 양면으로 읽힌다.

1935년 티베트 북동부의 빈민가에 태어나 두살의 나이에 제14대 달라이 라마로 지목된 텐진 가초가 세계적인 석학이 감복하며 옮겨 적을 정도의 강연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또 한번 놀랍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