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지배가 싫다면 몸과 기계를 결합하라”

‘기계의 지능이 인간보다 뛰어나고, 머지않아 기계가 인간을 지배할 날이 올 것’이라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더 이상 소설이나 영화의 주제가 아니다. 철학이나 과학기술계에서도 이를 둘러싼 토론이 자주 벌어진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논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기계지능이 발달한다해도, 인간의 상상력과 감정, 창조적인 역량까지 흉내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래 기계의 지능이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주장은 보다 정교하고 근거가 풍부하다.

수천, 수만년에 걸쳐 미미하게 진화하는 인간의 지능과 다르게 기계는 매 18개월마다 자신의 능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 단시간에 세포수를 끝없이 증식시킬 수 있으며, 네트워크화하기 쉽고, 수백가지 차원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다, 인간이 인식가능한 차원을 넘어 무수히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감지할 수 있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무런 오류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기억력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다. 요컨대 기계의 발전상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기계가 따라잡지 못할 인간 고유의 기능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고, 따라서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오리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 레딩대학교 인공두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인공지능과 제어, 그리고 로봇학을 연구하고 있는 이 책의 저자 케빈 워릭도 기계가 우월하다는 편을 든다. 워릭에 따르면 인간이 그대로 있을 경우, 기계가 인간을 뛰어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기계에게 인간이 일방적으로 지배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생각해 낸 것이 인간과 기계의 공존, 즉 ‘사이보그’다. 갈수록 확장되어 가는 기계의 힘이 인간 존재를 억누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계와 인간을 결합시켜 인간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1998년과 2002년, 스스로 기계장치이식, 즉 사이보그가 되는 수술을 감행한 이유다.

지금까지 ‘사이보그’는 공상과학 영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였지만, 실은 인간과 기계의 결합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다가와 있다. 흔히 쓰는 안경이나 보청기만 해도 인간의 지각을 확장시키는 기계로, 인간과 기계의 결합일 수 있고, 청각 장애인이 인공 와우각을 머리에 이식, 청각신경을 자극해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은 보다 고도화된 기술과 인간의 결합이다. 하지만 책의 주제는 이런 소박한 개념을 뛰어 넘는다.‘인간이 영적인 존재’ 운운하는 것을 아예 부인하고 인간과 기계를 동일시, 기계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실 인공두뇌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인간과 기계를 구별하는 것이 우스운일인지도 모른다. 우울증에 걸려 세상을 비관하고, 곧 죽을 것처럼 좌절하던 사람이 항우울제 몇알로 완전히 바뀐다거나, 신경계에 간단한 전기 자극을 가하는 것만으로 극치의 오르가즘을 끝없이 누리는 것을 지켜본 이들에게 ‘인간이 영적인 존재’ 운운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뇌 작동 메커니즘이 기계와 다르지 않다는 저자에게, 남아 있는 것은 기술적인 문제뿐이다. 기계와 인간을 접목시켜, 기술적 능력을 타고난 생명체를 고안하자는 것이다. 그래, 부분적으로는 기계이면서, 부분적으로는 인간인 사이보그로 인간의 역량과 기능을 한단계 높이자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이후 사이보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일기식으로 서술한 이 과학 논픽션에서는 자신이 인류 최초로 사이보그가 된 계기며 실험 과정도 자세히 기록한다.

지난 98년의 첫번째 실험에서 그는 왼쪽 팔 근육에 동전크기의 실리콘 컴퓨터 칩을 삽입, 그가 이동하는 경로를 컴퓨터에 전송한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대로 컴퓨터에 읽히고 기록된다. 첫 실험이 몸과 컴퓨터의 단순결합이라면 4년 뒤 두번째 실험은 신경과 컴퓨터의 결합이었다. 100개의 실리콘 전극이 달린 미니 배열을 왼쪽 팔 신경에 삽입, 사람의 신경 신호를 컴퓨터에 전송한 것이다. 이 실험에서 그는 컴퓨터에 손을 대지않고 컴퓨터를 조작하고, 간단한 명령어로 전등을 켜고 로봇을 조작하는데 성공한다. 나중에는 그의 아내까지도 실리콘 전극을 삽입, 서로 손을 대거나 말을 하지 않은 채, 의사소통을 하는데도 성공한다.

‘2050년, 미래의 사이보그’란 제목으로 된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그는 사이보그가 지배하는 미래의 지구를 그린다. “사이보그는 강력한 팔다리와 같이 직접적인 신체 조건의 개선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정신적 연계방식을 통해 이뤄진 것이었다. 그들의 두뇌는 무선장치를 이용해 직접 중앙 컴퓨터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 그들은 생각만으로 네트워크에 접속되고, 지적능력과 기억을 불러올 수 있다.”

TV나 영화 내용을 다운로드하면 되니, 이를 지켜볼 필요가 없고, 음식이나 활동에 대한 선택도 인간 스스로 할 필요가 없다. 두뇌의 교신을 통해서 성적 쾌락이 가능하니 섹스가 필요없고, 이식을 통해 심장 박동수나 혈압등이 모니터되니 수명연장 또한 어렵지 않다.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뿐 아니라 생각까지 낱낱이 감시되므로 최악의 빅 브라더가 불가피하나, 저자는 자신한다.

인간의 사이보그화가 주는 이점이 워낙 크므로 대다수 인간이 프라이버시 따위 인간성 축소는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소수의 인간은 초라한 지능과 생활상을 갖는 희귀 동물이 될 것이고, 인간들이 과거에 자신보다 지능이 낮은 동물들을 심하게 다루었듯이 대부분의 사이보그들은 인간들을 마구 대할 것이다. 많은 사이보그들은 잔인하다.

어떤가…. 우리의 생각에 관계없이, 저자를 필두로 한 과학자들은 인간의 삶을 근본에서 바꿔버릴 일들을 이미 착착 진행 중이다. 정은영 옮김.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