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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04년 06월 02일(水)
‘국적 지워라’ 대중문화 새바람
‘모호함의 매력’ 혈통주의 넘어 새 트렌드로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무국적성·탈국적성이 문화트렌드로 뜬다. 최근 대중문화계의 주된 흐름은 적극적으로 ‘국적지워내기’다. 이는 이국적 정서로 다른 문화상품과 차별화를 노리는 전략이기도 하고 해외수출 등 판로모색을 위해 적극적으로 시도되기도 한다. 혹은 그 자체가 문화잡종화, 다문화의 포스트모던한 시대적 흐름의 산물인 경우도 있다.

대중문화의 탈국적성·무국적성 트렌드가 두드러진 것은 역시 TV를 누비는 혼혈연예인들. 데뷔초기부터 혼혈의혹을 받아온 이유진이 눈물의 기자회견을 한 것이 불과 1년여다. 이후 TV에는 혼혈임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혼혈이 가지는 매력을 최대한 내세운 연예인들이 늘고 있다(특히 백인혼혈은 세련되고 서구적인 외모, 세계화시대에 어울리는 국제감각을 갖춘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CF모델로 시작해 오락프로 패널, 탤런트로 진출한 ‘파충류소녀’ 김디에나, CF와 영어방송 진행을 거쳐 가수데뷔를 준비중인 제니퍼 영 위즈너가 대표적. 가수로는 윤미래, 소냐가 활동중이며 이유진도 고백후 인기전선에 이상이 없다. 주로 백인혼혈에 집중되지만, 이들에 대한 대중의 관대한 시선은 우리사회가 순수혈통주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

한국연예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일본배우 유민(후에키 유코)이후 외국배우의 국내활동도 늘어나고 있다. 이미 국내 CF계에는 소리소문없이 일본인 모델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던킨 도너츠’의 오타니 료헤이,‘KTF Na’의 휘황(재일교포3세)을 비롯 지난해 60여명의 일본인 모델들이 40여편의 CF에 출연했고 서태지의 ‘로보트’ 등 뮤직비디오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한류열풍’을 노려 기획단계부터 아예 아시아권을 겨냥한 탈국적 문화상품 개발도 눈에 띈다. HOT 보아 신화 등을 탄생시킨 SM엔터테인먼트의 ‘신병기’인 남성 5인조 그룹 ‘동방신기’가 대표적. 중국풍 사자조어인 ‘동방신기’라는 팀 이름부터 멤버들의 이름까지 유노윤호(瑜鹵允浩) 시아준수(細亞俊秀) 믹키유천(秘奇有天) 등 중국풍이다. 자켓만 봐서는 한국팀인지 일본인지 중국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모던록 밴드 ‘도로시’는 아예 멤버 구성 자체가 ‘다국적’이다. 한국인 여성보컬에 미국 호주 캐나다 국적의 연주자 3명이 결합했다. 이들은 타이틀곡 ‘소풍’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2번 녹음했다.

이같은 탈국적성 기획의 최고상품은 역시 3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여친소)’다. 홍콩제작자 빌 콩이 제작비 전액을 대고 아시아 전역에서 개봉하는 ‘여친소’는 ‘엽기적인 그녀’로 한류의 핵이 됐고 왕조현 등 서늘한 아름다움을 지닌 홍콩배우의 계보를 잇는 전지현을 캐스팅하는 순간부터 한국적을 포기하고 탈국적으로 달려간 영화.

영화는 서울에서 촬영됐지만 서울이라기보다는 국적불명의 도시처럼 찍혔고 보디가드풍의 검은 제복을 입고 총알을 날려대는 여경 전지현 역시 한국의 여경은 아니다. 영화는 OST로 팝, 가요, J팝을 잇따라 선택했는데 클라이맥스에는 일본 록그룹 X재팬의 ‘티어스’가 흐른다. 멜로 액션 코믹이 결합된 이 영화에서 액션부문이 홍콩누와르적 장치를 택했듯이 멜로부문의 과도한 감상성, 신파성 역시 한국적 정서는 아니다.

이같은 탈국적성은 비단 국내에 한정되지 않는다. 90년대 미국에 이어 제2의 대중문화 강국으로 떠오른 일본의 경우 대중문화상품에서 일본색을 지워버리고 국적불명 전략을 택한 것이 성장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또 실제 일본스타들은 아무로 나미에 등 상당수가 혼혈이기도 하다). 미국의 외교잡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2002년 특집기사에서 일본이 미국과 동등할 만큼의 (대중)문화 초강국으로 부상한 성장배경의 하나로 “일본색이나 특정 메시지, 이데올로기가 없는 국적불명성”을 꼽은 바 있다.

탈국적성은 미국패권주의로 무장한 할리우드에서도 포착되고 있다. 이탈리아계인지 히스패닉인지 흑인피가 섞였는지 알 수 없는 외모로 미국내 다인종·잡종문화를 상징하는 빈 디젤이 해리슨 포드같은 ‘아메리칸 히어로’자리를 물려받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 전형적 금발미인대신 제니퍼 로페즈, 페넬로페 크르주 같은 라틴계나 에콰도르 출신 팝스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각광받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말 뉴욕타임스는 인종적으로 모호한 ‘EA(Ethnically Ambiguous) 세대’가 급부상했으며, 글로벌 다인종시대 국적불명이나 인종적 모호함은 젊은이들에게 세련됨, 성적 매력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근 국내에는 ‘다국적’을 컨셉트로 한 TV프로그램까지 생겼다. 주한 외국인 30만명시대를 겨냥 20여명의 외국인 패널이 출연해, 국가간·문화간 차이를 토론하는 SBS ‘외국인대설전’이 그것이다. 이 프로의 한결같은 결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이상 국가간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개인차가 존재할 뿐이다.’

양성희기자 cooly@munhw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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