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찍어 환율방어’ 위험하다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의 22일 회동에서 ‘돈을 찍어서라도 달러를 사들여 환율 급락을 막겠다’는 방침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환율방어를 위한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은 국회의 동의를 얻은 국고채로 달러를 매입하는 수순을 밟고 있으나 이미 그 한도가 거의 찼기 때문에 발권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방침을 숙의한 것 같다. 그러나 돈을 더 찍어 환율을 방어하는 방법은 물가안정을 위협할 수도 있어 그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달러화 약세로 인한 자국통화 강세는 세계적인 추세인데 이것을 막기 위해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은 또다른 정책선택의 오류라고 볼 수 있다. 통화 발행의 최종 책임을 쥔 한국은행도 이같은 조심스러운 입장이기 때문에 발권력에 의한 환율 방어라는 비상수단은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믿는다.

미국의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달러 약세가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부시 대통령은 ‘강한 달러’가 미국의 변함없는 목표라고 말한다. 세계 외환시장은 누구 말을 믿나. 아마 부시 대통령의 말은 급격한 달러 약세 때문에 세계 외환시장이 동요하고 달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데 대한 정치적 발언일 뿐, 달러 약세는 피할 수 없는 대세라고 믿는 것 아닐까. 특히 사상 최대의 수출 호황으로 달러가 쌓이고 있는 한국으로선 달러 저(低) 원고(高) 현상이 자연스러운 시장 추세다. 이런 자연스러운 추세에 시장이 당황하는 것은 수출을 유일한 성장 동력으로 여긴 나머지, 마치 1달러대 원화 환율을 1140원선에 묶어 놓을 수 있을 것처럼 그동안 외환당국이 시장에 왜곡된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향곡선을 그릴 수도 있는 환율시세가 급락(急落)이라는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외환시장에 개입하더라도 급락속도를 조절하는 선에 그쳐야지 또다시 1060원선에 묶어놓을 수 있을 것 같은 왜곡된 신호를 보내면 안된다. 중소 수출업체들이 왜 그동안 품질경쟁력을 기르지 못하고 오늘의 환율 하락에 적응하지 못하는지 그 원인을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