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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04년 12월 14일(火)
나혜석을 찾다가 나 자신을 알았다
함정임 소설 '춘하추동' 액자형식으로 삶 재구성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이미지와 서사를 독특하고 낯선 방식으로 결합시켜온 작가 함정임(40)씨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여성작가인 나혜석의 삶을 재구성한 소설 ‘춘하추동’(민음사)을 내놨다.

누구 누구 삶의 재구성이라는 말을 들으면 독자들은 흔히 평전이나 전기를 떠올리지만, 함정임씨의 ‘춘하추동’은 이같은 오랜 관습을 깬다. 그 대신 소설은 ‘R’이라는 이니셜로 나오는 나혜석의 삶을 글로 쓰려는 작가 가은을 내세워 가은이 풀어내는 현실의 이야기와 그가 쫓아가는 R의 삶을 두겹으로 풀어낸다.

“R의 일대기를 소설로 쓴 것이 아니다. 작가의 평전식 소설이 아니라 등단 이래 지금껏 내가 지향해온 소설기법으로 쓰인 독립적인 메타(또는 액자) 소설이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구자나 평전 전문 작가가 아닌 소설가의 입장에서 R를 소화하려 했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유부남인 M을 연인으로 둔 서른두살의 가은은 어느날 다큐멘터리 감독의 권유로 나혜석의 삶을 글로 쓰기 위해 그의 생애를 추적한다.

이상하게 글이 풀리지 않자 그는 도쿄로, 파리의 셀렉트호텔로, 수덕사로, 수원으로 돌아다니며 먼 시간을 넘어 나혜석의 이루지 못한 사랑, 시대에 저항하며 썼던 소설들, 김우영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양로원을 전전하다 1948년 행려병자로 파란 많은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삶의 편린들을 맞춰간다. 이러는 사이 스페인으로 떠났던 M의 아내가 돌아오고, 가은 역시 M을 잊어버리지도 온전히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머물지 못하고 길을 떠나고, 또 떠난다.

소설은 이렇게 가은과 나혜석의 두 이야기를 교차해 풀어내는데, 두 이야기는 어느새 둘이 아닌 하나가 돼 걸어간다. 그 하나란 바로 예술적 열정, 거침없는 사랑, 시대적·상황적 제약 속에서 여성으로서, 예술가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려는 용기, 때로는 무모해보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정이 뭉뚱그려진 여자 예술가의 초상이다.

결국 가은이 나혜석의 삶을 추적하면서 발견해냈던 것들은 바로 자신의 문제였고, 그에 대한 해답이었던 것. 그래서 가은은 나혜석의 삶을 쫓으면서 완성한 것은 나혜석의 초상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초상임을 알게 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나혜석은 쓸쓸하고 참혹하게 삶을 마무리했지만 가은은 ‘R’의 삶을 추적하는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한걸음 내딛게된다. ‘춘하추동, 오고 오고,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네’라며.

그리고 이처럼 나혜석과 가은의 삶이 하나가 된 지점에서 독자들은 또 한사람의 여성 예술가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바로 작가 함정임이다.

최현미기자 chm@


e-mail 최현미 기자 / 문화부 / 부장 최현미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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