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자가 매일 밤 꾼 세속적 꿈들

개신교 목사이면서 노자·장자는 물론 불교와 수피즘 등 동양사상에 조예가 깊어 많은 저서와 번역서를 낸 이현주 목사가 이번에는 자신의 ‘꿈’에 대한 명상 기록을 모은 보기 드문 책을 냈다. 지난해 환갑이었던 이 목사는 “한 해를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다가, 그동안 말도 많이 했고 글도 많이 썼으니 근신하는 뜻에서” 1년간 묵언(默言)을 하기로 했었다.

묵언을 하면 그런 걸까? 이 목사는 거의 매일 꿈을 꿨고 그것을 기억할 수 있었으며 그래서 “간밤의 꿈을 기억나는 대로 적다보면 그 꿈을 통해 내가 배워야 할 내용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는데, 거의 1년 내내 그것을 기록해 두었다. 꿈의 기록 중 3분의 1 정도를 추려 이번에 책을 낸 것이다.

꿈의 상당부분은 억눌러 놓은 어두운 욕망들이 고개를 내미는 ‘무의식의 발현’이라는 게 이제는 정설이다. 꿈에서 자신의 치사한 모습을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 우리가 매일 꿈을 꾸면서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같은 내면과 맞닥뜨리기를 회피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이 목사가 매일의 꿈을 기억하고 거기에 대해 명상하며 그 기록을 펴낸 것은 한 순간의 자기 성찰도 놓치지 않으려는 구도자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이 목사는 그것을 ‘제 중심에 계신 선생님’의 선물이라고 돌리지만, 어쨌든 독자들에겐 ‘열려 있는’ 구도자의 길을 평생 걸어온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목사의 꿈이라고 별반 다를 건 없다. 보통 남자들처럼 군대시절 사병으로 돌아가 장교로부터 농락을 당하는 꿈도 꾼다. 자신의 명함에 어느 살롱의 ‘이 달의 신사’로 뽑혔다는 걸 집어넣어 아내와 다투는 꿈, TV 스타들을 만나 노닥거리는 꿈, 밥에 똥을 비벼 먹는 꿈, 글래머 여성에게 유혹을 받는 꿈…등등.

현대 정신분석가들이 이 책을 대한다면 그 분석은 이 목사의 ‘해몽’과는 차이가 날 것이다. 이 목사가 거기서 건져 올리는 것은 사뭇 다르다. 예를 들어 어느 식당에서 가시가 많지만 맛있는 생선을 먹는 꿈이다. 이 생선은 가시가 몸안에 뿌리를 두고 몸밖을 향해서 나있기 때문에 뒤집어서 안에 있는 가시부분을 당겨 가시를 발라내야 했다.

이 목사의 해몽에서, 가시는 벗어야 할 ‘에고(ego)’로 변한다. “내가 나를 보호하고 키우기로 작정하는 한, 가시는 소중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 내가 더 이상 나를 보호하거나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한다면, 남은 길은 그동안 나를 지켜주던 가시를 하나씩 제거하는 일이다.”

글을 쓰면서 이 목사는 흉몽이나 길몽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흉몽은 없고 나쁜 꿈을 꾸었다는 생각만 있으며 “이 어지러운 세상이, 저를 포함하여해 인류 전체를 더 높은 의식(意識)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한바탕 길몽”이란 생각을 가지게 된다. 엄주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