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 수출 40년>LG전자 ‘프리미엄 家電’으로 세계 정복

“우리가 영원히 PX에서 외국 물건만 사 쓰고 라디오 하나 몬 맹글어서 되것나. 누구라도 해야 할 거 아닌가. 우리가 한번 해보는 기라. 먼저 하는 사람이 고생도 되것지만 고생하다 보면 나쇼날이다 도시바다 하는 거맹키로 안되것나.”

1958년 봄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자는 형제들과 장남 구자경(현 명예회장) 상무 등을 불러놓고 전자공업에 착수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굳이 모르는 분야를 손댈 필요 있느냐, 미군 부대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외제 라디오를 당해낼 수 있겠는가, 큰 성공을 거둔 플라스틱 사업에서 여전히 할 일이 많다 등 사내 반론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창업자의 결심은 확고했고 그의 의지에 따라 1958년 10월 1일 LG전자의 전신 금성사는 탄생했다. LG전자의 설립과 함께 우리 전자산업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현 ‘정보기술(IT)코리아’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LG전자라는 시원과 조우하지 않을 수 없다.

LG전자가 가장 먼저 손댄 사업은 진공관 라디오. 1958년 11월 국내 최초의 국산 진공관 라디오 ‘A501’을 생산해냈다. 하지만 사업 초창기 시련은 피할 수 없었다. 소비자들의 전반적인 소득 수준은 전자제품을 살 만한 정도가 아니었고 PX에선 외제품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그룹의 모태였던 락희화학(현 LG화학)에서 벌어들인 돈을 LG전자에 고스란히 털어넣는 식이었다. LG전자에 돈을 쓰느니 은행에 넣어두고 이자를 받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구 창업자는 딱 1년만 더 해보고 그때 가서도 안되면 문을 닫기로 하자며 직원들의 반발을 무마시키고 조직 정비에 애썼다. 바로 이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5·16 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밀수품 단속 정책을 강하게 추진, 외제 라디오를 시장에서 몰아내는 한편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전개했다. 라디오는 불티나게 팔렸고 존폐 위기에 몰렸던 LG전자는 기사회생, 이후 거침없이 쾌속 항진을 한다. 1965년부터 거의 해마다 냉장고, 흑백TV, 에어컨, 세탁기 등을 자체 개발, 판매에 들어갔다. 물론 모두 국내 최초의 일이다.

1960년대초부터 이뤄진 수출의 시작도 참 보잘 것 없었다.

1962년 구자두(현 LG벤처투자 회장) 당시 관리부장은 정부의 통상 사절단을 수행, 동남아시아 지역을 돌았다.

수출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영문 카탈로그조차 준비하지 못했다. 구 부장은 라디오를 취급하는 회사를 찾아 한글 카탈로그를 보여준 뒤 LG전자 라디오 모델에 대해 설명했다. 그의 열정이 통했는지 홍콩의 한 회사로부터 라디오 200대를 사겠다는 주문을 받아냈다.

이와 비슷한 시기 LG전자는 미국 뉴욕주재 한 회사에 라디오 62대를 납품, 594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국내 최초의 전자제품 수출 기록이다. 1962년 LG전자의 총 수출액은 4000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3년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수출이 주효해 LG전자 총 수출액은 전년대비 2135.2% 늘어난 9만1000달러에 이른다. 이후 LG전자 수출은 매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다. 1968년 141만7000달러를 기록, 수출 100만달러를 넘어서더니 불과 5년만인 1973년 1559만7000달러의 수출을 달성하면서 수출 1000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한참 수출에 맛을 들인 LG전자는 1970년대 연평균 63.8%의 수출 신장률을 기록하는 위업을 달성한다. 이런 추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 LG전자는 이론의 여지없이 TV를 포함한 가전 분야에서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가정용 에어컨, 전자레인지, 일반형 청소기, 광스토리지 등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PDP 모듈, 시스템 에어컨, 드럼 세탁기, 양문형 냉장고 등에서도 1위에 근접해 있다. 한 제품이라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수만 해도 65개국에 이른다. LG전자는 2007년까지 이를 80개국으로 늘릴 계획이다. LG전자는 특히 가전 분야 영업이익률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난 2005년 상반기 실적을 바탕으로 LG전자와 경쟁업체를 비교하면 이는 명확히 드러난다. LG전자는 올 상반기 3조2898억원 매출에 영업이익 3317억원을 기록, 10.1%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

라이벌 관계인 삼성전자는 가전 분야에서 1조7900억원 매출, 200억원 영업이익으로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영업이익률(0.89%)을 냈을 뿐이다. 세계적인 가전업체인 일본 마쓰시타와 스웨덴 일렉트로룩스는 같은 기간 각각 5.8%, 5.0%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일본 산요전기의 경우 70억엔의 적자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성 높은 프리미엄 제품에 집중, 실적면에서 경쟁업체들을 완벽하게 따돌린 것이다.

LG전자 디지털 어플라이언스 윤태봉 부장은 “LG전자의 경우 제품 차별화, 경쟁업체보다 한단계 높은 서비스, 철저한 현지화 마케팅 등이 삼위일체를 이루면서 해외에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프리미엄 제품 판매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생방송을 멈춰 보는 ‘타임머신’ 기능을 디지털TV에 구현한 것은 LG전자가 처음. 또 냉동실이 아래에 달린 LG전자 3도어 냉장고는 서구인들의 생활 습관을 고려한 제품으로 북미시장에서 단연 주목을 받았다.

아무리 제품이 우수하더라도 서비스가 따라주지 못하면 소비자 마음을 사기란 어렵다. 여기에서도 LG전자는 강점을 지닌다. 이 회사 디지털 어플라이언스 송승걸 부장은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사막 지역의 경우 낙타로 제품을 배달해준 적도 있다”며 “LG전자를 제외한 그 어떤 나라 그 어떤 회사도 이렇게까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세계 각국에서 국민 브랜드로 뿌리내리기 위해 교육 사업, 문화 지원 사업, 스포츠 마케팅 등 다양한 현지화 마케팅을 펼쳐왔고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유회경기자 yoolog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