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가 본 만화가의 세계

“마감 때만 되면 심하게 요의가 느껴지는데, 막상 화장실에 가면 오줌이 나오지 않는 거야. 정말 미칠 지경이지.”

신문에 시사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다. 이 책을 읽어보니 대부분의 만화가들이 같은 증상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신문이든, 잡지든, 단행본이든 제작 마감 시간이 있으니 거기 맞추려면 그야말로 ‘피똥을 쌀’ 지경이 되는 것이다.

17명의 저자가 공동 집필한 이 책은 국내 유명만화가와 주변 관계자들이 만화가의 세계를 글로 쓴 에세이 모음이다.

책을 읽으며 감탄하게 되는 것은 기획, 편집이 참 꼼꼼하다는 것이다. 첫 장은 20년째 유명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일해 온 작가지망생의 희로애락을 담고, 다음 장에서 순정, 학습, 소년, 성인, 신문, 인터넷만화 등으로 장르를 나누어 대표적 만화가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3장에선 만화의 지평을 넓혀 시사만평가, 스토리작가와 더불어 만화기자, 평론가의 세계까지 들여다봤다. 4장에선 만화가의 화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엿보고, 마지막 장에서 만화가의 해외진출 및 만화의 미래 등을 논했다.

부록으로 전국 만화 관련 대학 및 교육기관, 국내 만화 관련 공모전 등을 안내한 데서 드러나듯 이 책은 실용서를 지향한다. 동시에 독자의 정서에 호소하는 에세이 문학의 특징을 갖고 있다. 이게 출판시장에서 장점이 될지, 단점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필자들의 일상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에세이 하나 하나가 흥미진진하게 읽힌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쉽고 편안하게만 여기는 만화 창작에 모든 것을 건 만화가들의 열정이 경이롭다. 만화에 대한 경외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20년 가까이 문하생으로 지내며 코피 터지는 시간을 견딜 수 있었을까.

나예리, 강경효, 박수인, 양여진씨 등 필자들은 지명도가 높은 만화가들임에도 잠을 줄여가며 그림을 그려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토로한다.

신문 연재를 통해 몸값이 높아진 장차현실씨 같은 만화가도 혹시나 일을 그만두라고 할까봐 전전긍긍한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그럼에도 이들 만화가들은 자기만의 만화 세계를 만들어가는 즐거움에 모든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만화가들은 정규교육 과정의 중퇴자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 교육의 현실이 만화 그리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이제는 고교·대학교에 만화창작학과가 많이 생겨 사정이 달라졌다. 같은 제목을 가진 책이 10년 후쯤에 나온다면 완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임에 틀림없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