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평기금 운용, 재계-정치권 대리전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운용되는 외국환평형기금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재계와 정치권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문화일보 9월26일자 13면 참조)

이런 가운데 일본 엔화에 대한 원화(원·엔) 환율이 100엔당 800원선 마저 위협받는 등 외환시장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29일 기자들과 만나 “최근 환율하락으로 중소기업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는 만큼 정부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윤 부회장은 외평기금 손실에 대한 정치권의 감사 논란과 관련, “정치권은 외평기금 운용에 따른 누적 손실액이 18조원이나 된다고 하지만 손실액에 비해 국가경제에 돌아오는 이익은 훨씬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일본 정부의 환율방어 노력을 언급하면서 “환율 방어로 인해 기업들이 얻는 계산할 수 없는 이익들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부회장의 이 같은 언급은 최근 국회에서 거론되고 있는 외평기금 손실에 관한 감사 요구가 외환시장에 불안감을 촉발시켜 환율을 더욱 끌어내릴 가능성이 크다며 감사 논의를 자제해줄 것을 촉구한 한국무역협회의 움직임과 뜻을 같이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지난 2004년 국정감사 당시 의원들이 외평기금 손실문제를 강도 높게 질타한 이후 한국은행이 부담을 느껴 시장개입을 주저하는 동안 투기세력들이 외환시장에 뛰어들어 환율이 3개월 만에 120원 가까이 급락한 바 있다.

재계와 무역업계의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정치권, 특히 야당 측의 입장은 여전히 단호하다. 외평기금에 대한 감사 필요성을 적극 주장하고 있는 심상정 의원(민주노동당·비례대표)은 “환율이 하락하게 된 원인은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불러온 달러 가치 하락에 있지 국회의 외평기금 논의때문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환율이 떨어질 때마다 과민반응을 보이며 단견으로 정부 개입을 요구해온 무역업계의 처신이 환율을 급락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고 주장했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는 지난 9월27일 외평기금 감사 청구안을 논의했으나 여야의 입장차가 맞서 외평기금 감사 청구안에 대한 표결이 불발됐었다. 이후 서울외환시장에선 특히 원·엔 환율이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지난 주말 100엔당 802.6원으로 마감하며 외환위기 이후 최저치를 경신한 데 이어 2일 오전에는 800.7원까지 하락하며 800선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외평기금 손실은 되도록 줄여야겠지만 이는 거시경제 차원에서 발생하는 비용으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외평기금 활동으로 환율을 안정시키고 수출을 촉진함으로써 0.1~0.4% 정도의 경제성장률이 높아졌다는 분석도 있다”고 말했다.

김병직기자 bj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