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의 귀환, 교회적 모범 실천 의미”

경북 칠곡의 왜관 수도원 선지훈 신부가 독일의 한 수도원에서 소장하고 있던 조선시대의 대표적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의 화첩의 한국반환을 성사시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겸재의 그림 21점으로 이뤄진 이 화첩은 1925년 한국을 방문한 독일 수도원 원장이 귀국할 때 수집해간 것으로, 국보 혹은 보물급 문화재로 평가되고 있다.

선 신부는 “오는 2009년 독일 베네딕토 오틸리엔 수도원의 한국진출 100주년을 앞두고 오틸리엔 수도원측에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겸재의 화첩을 돌려달라고 청원해 지난해 10월쯤 이를 돌려받았다”며 “화첩은 현재 지방의 모 국립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있으며 공개시기는 추후에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선 신부는 화첩을 반환받고도 1년여가 넘도록 공개하지 않은 것에 대해 “수도자들이 보도의 한복판에 선다는 것도 그렇고, 화첩을 연구하고 도판을 확보한 뒤에 공개하자는 것이 수도원의 정책과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선 신부는 그러나 반환 당시 독일의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조촐한 행사를 치렀고, 국내에 들여올 때는 문화재청에 신고도 했다고 덧붙였다.

선 신부는 1990년 독일 뮌헨 유학시절부터 겸재의 화첩이 독일 수도원에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이때부터 관심을 갖고 꾸준히 한국 반환여부를 청원해왔다. 선 신부는 “서양사에서 수도원이란 곳은 예술품이 생산되고, 보관되고 관리돼왔던 공간이었다”며 “이렇게 예술의 한복판에 있었던 수도원이 보유한 문화재를 원소유 국가에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교회적인 모범’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여러 경로를 통해 설득했고, 이에 독일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단안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선 신부는 특히 “이같은 ‘교회적인 모범’의 실현이 이번 화첩 반환의 가장 큰 의미”라고 강조했다.

선 신부는 “독일 수도원의 장로회에서 반환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감개가 무량했다”며 “독일에서 반환받은 겸재의 화첩을 직접 가져왔는데, 공항에서 왜관까지 그림을 가져오면서 간이 콩알만해졌다”며 웃었다.

왜관 수도원측은 일단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과 약속한 대로 작품의 모사본을 제작해 돌려주고 도록발간사업 등을 추진하는 것과 동시에 지자체와 협조해 박물관 건립 등을 통해 화첩을 보관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독일 수도원측은 화첩을 반환하면서 왜관 수도원측에 그림손상을 막기 위해 특수보관시설을 갖출 것과 한국정부에 소유권을 넘기지 말 것 등의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