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해외골퍼와 수준差… 사진 따라하며 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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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19일 부산 해운대CC에서 열린 제49회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선수권대회. 1라운드가 끝난 후 김종덕(45·나노소울)프로가 미리 준비해 둔 꽃다발을 함께 라운드한 대선배에게 전달했다. 30여명의 후배 프로들이 뜨거운 박수로 맞은 주인공은 KPGA회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고문직함을 갖고 있는 한장상(66·사진)씨였다.

올해로 KPGA선수권 출전 49년째. 우리보다 골프역사가 훨씬 오래된 일본에 스기하라 데루오(69)라는 원로가 있다. 일본프로골프투어에서 28승을 올린 그는 ‘일본 투어의 마스터스’라고 불리는 던롭피닉스토너먼트에 애착을 갖고 연속 출전하고 있는데 올해기록이 33년 연속 출전이니 한장상 고문의 기록의 의미는 상당하다 할 수 있다. ‘한국골프의 전설’ 한장상 고문을 지난 12일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소재 ‘장현그린골프클럽’에서 만났다. 요즘 그는 이곳에서 3명의 주니어를 가르치고 있다.

서울 을지로6가에서 태어난 한 고문은 원래 1938년생으로 올해 예순여덟이다. 행정 혼란기 때라 호적에 두 살 아래 동생이름으로 올라 40년생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일본프로골프투어에 진출하면서 여권을 만드는데 고생했다고.

국내 프로골퍼 초창기 멤버들이 다 그렇듯 한 고문도 고교시절 캐디로 출발했다.

“성동고를 다닐 때 화양리에 사는 친구가 있어 그 집에 자주 놀러갔는데 부근에 능동컨트리클럽(현재 어린이대공원)이 있었어. 공 치는 것을 구경하다보니 아주 재미있더라고. 주말에 아르바이트 겸해서 캐디로 들어갔지. 17세 때니까 1955년이네…. 어느 날 손님이 아이언7번을 줘서 공을 치기 시작했는데 아주 빠져들었어.

그날로 학교도 가지 않고 골프장에서 살았는데 56년 가을 서울CC(군자리골프장)에 자주 왔던 유솜(USOM·미국대외원조처) 요원들이 골프장의 전 캐디와 직원들이 참가하는 대회를 열어줬어. 1등상이 아이언 풀 세트, 2등에게는 우드 한 세트였는데 내가 일등을 했어. 채가 생긴 후 본격적으로 연습을 했는데 고(故) 연덕춘(1941년 일본오픈 우승자로 한국프로골퍼 1호) 선배가 오다가다 한마디씩 가르쳐줬고 나머지는 전부 독학이야. 56년인가 서울CC에 양성자코스(지금의 세미프로)가 생겨 8명인가 10명이 들어갔어.”

당시만 해도 프로대회라고는 서울CC의 월례대회 밖에 없었고 우승상품도 쌀 한 가마였다. 58년 드디어 한국프로골프협회가 창설되고 그 해 KPGA선수권대회가 생겼다.

한장상의 1회 대회 성적은 4라운드 합계 300타 정도. 3회 대회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고 그 덕에 아시아서킷에 출전하게 됐다. 아시아서킷이라는 ‘큰 물’은 그를 한국골프의 전설’로 만든 일대 계기였다.

“아시아서킷에 나가보니 스탠스, 스윙, 그립 등 모든 것이 우리랑 하는 것과 다르더라고. 우리가 연덕춘 선배에게 배운 것은 모두 40년대 방식이었지. 함께 라운드 한 호주와 일본, 대만선수의 폼을 눈으로 익히고 잡지의 사진을 찢어와 그대로 따라했어. 6개월간 모든 것을 바꿨는데 그 때부터 언더파를 칠 수 있었어. 61년은 스윙을 고치느라 우승을 못했고 62년부터 독주하기 시작했지.”

68년부터 71년까지 KPGA선수권을 4연패하는 등 통산 7승, 역시 국내 메이저타이틀인 한국오픈도 7번 제패하는 등 국내대회 19승, 일본대회에서 3승을 올렸고 시니어부에서도 3승을 올렸다.

현대식 스윙을 익혔다지만 한장상을 ‘전설’로 만든 것은 피나는 훈련이었다. 167㎝, 67㎏인 작은 체격이어서 애초부터 거리로 승부할 수는 없었다. ‘골프는 그립이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그는 손아귀 힘, 즉 악력을 염두에 두고 훈련했다. 항상 악력기를 달고 다닌 끝에 ‘아이언 샷의 귀재’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금도 그는 “공을 낮게 차면서 스핀을 먹여 그린에 세우는 사람이 없다”고 자신할 정도로 한양CC에서 7번 아이언 하나만을 사용해 2언더파를 쳤다는 ‘전설’도 있다.

중·고교시절 복싱도장을 다녀 작지만 단단한 체격이었던 한장상은 한참 열심히 훈련할 때 하루 몇 개의 공을 치는지 세어봤다. 지금과 같은 자동티업기가 없는 시절이라 일일이 손으로 공을 땅바닥에 놓고 쳤는데 새벽에 시작, 깜깜해 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3620개를 친 것이 최고기록이다.

초창기 몇 명되지 않았던 프로들은 기업가나 정치인들의 골프 파트너로 각광 받았다. 정상의 프로였던 한장상도 그런 기회가 많았는데 이병철 고(故) 삼성그룹 회장,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인연을 맺었다.

“이병철 회장님에게는 죽어서도 잊지 못할 은혜를 입었어. 이 회장님은 61년경 서울CC에서 처음 뵈었지. 64년 봄 그룹 비서실에서 전화를 걸어와 ‘회장님이 같이 라운드하고 싶다’고 해. 이후 한달에 한두 번 함께 라운드 했어. 골프가 끝나면 사례비로 당시 돈 3만원을 받았는데 레슨비가 8000원이었으니 꽤 큰 돈이었지.

이 회장님과 10번쯤 골프를 같이 했을 때 집에 가서 저녁이나 하자고 해. 장충동 100번지가 댁이었는데, 안방에 겸상이 준비되어 있더구만. 주위에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어 내가 거북해 하자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며 이것저것 권하시기도 하고. 식사 후 디저트를 하면서 삼성그룹이 64년부터 건설 중이던 안양CC 이야기를 꺼내더니 ‘안양으로 와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데. 서울CC와의 의리도 있고 해서 즉답은 못했고 나중 박명출 선배와 상의해 안양으로 옮겼어.”

이 회장은 그에게 골프숍과 연습장 운영권을 주고 월급도 총지배인보다 더 책정해 주며 자식처럼 귀여워했다. 회장과 1주일에 2∼3번 라운드하고 이명희씨 등 가족들에게 골프를 가르치는 것이 한장상의 일이었다.

이 회장과의 인연은 성질을 참지 못해 끊어지고 말았다. 지배인과 총무과장이 별로 하는 일 없이 회장의 총애를 받는 한장상에게 자주 시비를 걸었고 지배인과 말다툼 끝에 “프로가 뭔데…”하는 말에 격분, 주먹을 날리고 말았다.

“69년 KPGA선수권에서 우승한 후 골프장에 오신 회장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는데 아는 체를 하지 않아. 일주일 후 사표를 냈지.

그 일 이후 연습에 몰두, 70, 71년 아시아서킷에서 2연승했고 일본 상금랭킹 7위까지 올랐어. 몇 년 후 이맹희씨와 만날 일이 있어 삼성그룹에 갔는데 맹희씨가 ‘온 김에 아버님께 인사나 드리라’하데. 회장님을 만나 뵈자 ‘자네와는 평생 같이 가야했는데 운명이 그렇지 않은가보다’고 하시더니 비서실장을 시켜 봉투를 주시더구만.

일본투어 한 해 경비의 두 배는 되는 큰 돈이었어. 그 덕에 경제적인 걱정 없이 골프에 몰입, 72년 일본선수권을 제패할 수 있었지. 회장님은 골프를 너무나 사랑하셨고 베스트 스코어가 73인가 수준급이셨지.”

한장상은 62년 박정희 대통령이 최고회의 의장시절 골프의 기초를 가르쳤다.

“알고 지내던 김종오 육군참모총장이 부탁했는데 나중에 대통령이 되신 후 65년 서울CC에서 7∼8회 라운드 한 것으로 기억나. 박 대통령은 골프에 그리 흥미가 없는 듯 싶었고 그저 운동 삼아 하셨던 것 같아. 특이한 것은 퍼팅은 무조건 한번만 하셨고 이동 중에는 골프채를 어깨총 자세를 하고 다니셨지. 골프를 치다가도 ‘박 실장(박종규 경호실장) 무슨 일 없나’ 하며 나라 걱정을 많이 하시던 게 지금도 생생하네.”

한장상은 현역시절 후배들이 ‘공포의 빨간 바지’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본인은 잘 모르고 있었다.

“빨간바지는 몇 번 입긴 했지…, 70년대 약 8년간 당시 일본 미즈노와 계약했었는데 그쪽에서 매일 코디를 다 해줬지. 후배들에겐 최고 멋쟁이로 보였을 거야. 아 참 요즘 혼마하면 최고 브랜드지만 72년 일본선수권에서 우승한 후 나 때문에 지명도가 높아졌어.

혼마 사장이 요코하마에 사는 세미프로출신인데 선수권에서 우승하자 클럽을 만들었다며 보여 주며 모델을 부탁하데. 우승상금이 250만엔이었는데 모델료를 100만엔이나 받았지. 그 인연으로 70년대 후배들이 나를 따라 혼마 회사에 놀러 가면 각종 용품을 한 보따리씩 얻어왔었어.”

일본선수권 우승으로 한국인 최초로 ‘꿈의 무대’인 마스터스에 출전(72년)하기도 했던 한장상은 요즘 언더파 한번 하는 것이 소원이 됐다.

“요즘은 미들홀에서 조차 투 온이 안 되니… 눈은 아직도 200m까지 잘 보이지만 당체 거리가 나야지.”

KPGA선수권 개근은 그리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40년이 넘으면서 50년 연속출전에 대한 도전의지가 생겼다는 그는 “내년까지 딱 50년을 채우고 시니어대회에서도 골드시니어부라도 만들어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체육부장 dy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