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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이동윤의 스포츠인생 게재 일자 : 2007년 04월 07일(土)
“2002 한·일 월드컵이 교포-日사회 융합 길 터줘”
전국체전 50년 ‘개근’ 김영재 在日대한체육회 상임고문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전국체육대회에는 ‘단골손님’이 많다. 특히 체력적인 부담이 적은 궁도나 사격 트랩이나 클레이에서는 30년 넘게 출전하는 원로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반세기동안 해마다 빠지지 않고 개근한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영재(金英宰·73) 재일본대한체육회 상임고문. 그는 축구선수로 16년간 체전에 출전했고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임원으로 34년 동안 체전 현장을 누벼왔다. 가깝긴 하지만 그래도 해외에서 5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주일 일정의 체전에 참가하기란 그것이 ‘인생의 목표’가 아닌 바에야 범상한 일은 아니다. 사업관계로 마침 서울에 온 김영재씨를 지난 30일 숙소인 서울 중구 을지로의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만났다.

김영재씨는 중구 다동에서 출생한 서울 토박이다. 덕수초교를 거쳐 배재중을 다녔다. 초등학교 때 축구를 시작해 중3 때까지 선수로 활약했다. 순수한 서울내기인 그가 재일동포가 된 것은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미처 피란을 가지 못해 석 달간 적치하의 서울에서 숨어 지내다 1·4후퇴 때 부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거처할 곳을 구하지 못해 길바닥에 피란보따리를 쌓아두고 있다가 아버지의 결심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의 선고장(先考丈) 김성흠씨는 국내 최초의 음반회사인 ‘오케이레코드’를 운영했던 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회사경영은 외삼촌(이철)이 하셨고 아버지는 기술자였지요. 연희전문학교 출신인 아버지는 일본 나라(奈良)현의 ‘OK레코드사’에서 레코드기술을 배워 와 국내 최초로 레코드판을 만드셨던 분이죠.”

일본 오사카에 정착한 그의 가족은 아이들까지 일을 해야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었다. “나도 ‘벤또(도시락)’공장에 가서 일을 했어요. 일본학교에도 다녔는데 일본 애들 하고 만날 싸웠지요. 어렸지만 민족감정이 많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에서 함께 일하는 일본 아이가 ‘한국학생만 다니는 학교가 있다’고 알려주데요.” 학교재단 백두학원에서 운영하는 건국학교였다. “아버지랑 그 학교를 찾아갔지요. 그런데 누군가 아버지를 보고 ‘선생님이 여기 어쩐 일이십니까’하며 놀라면서 인사를 하데요. 바로 가수 고운봉씨였죠. 오케이레코드에서 음반을 내 아버지와 잘 아는 고씨가 음악선생으로 있었죠. 그 덕에 바로 입학허락을 받았어요.”

건국학원은 알아주던 스포츠 명문교이기도 했다. 차별 받는 울분을 스포츠로 풀려했는지 몰라도 건국고교는 축구와 필드하키에서는 대학팀까지 누르고 일본 정상에 오를 정도로 막강한 실력을 보였다. “축구부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정말 좋았죠. 원래는 고3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축구선수로 오래 뛸 욕심에 1학년부터 시작했지요.”

165㎝의 단신으로 왼손, 왼발잡이였던 그는 레프트풀백을 봤다. 고1때 한국의 전국체전에 참가하게 됐다고 도쿄(東京)로 합숙을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재일동포가 전국체전에 첫 참가한 것은 서울에서 열린 1955년 제36회 대회부터였어요. 이를 위해 54년 도쿄에서 합숙을 했는데 축구팀은 17명이었지요. 한국에 가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는데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사실 그 때 다리를 심하게 삐어 퉁퉁 부어올라 잘 걷지도 못할 지경이었는데 혹시 명단에서 뺄까봐 자전거 튜브로 꽁꽁 싸매고 버텼지요.”

65년 한·일국교정상화가 되기 전까지 귀화하지 않은 재일교포는 여권도 나오지 않아 모국에 올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체전에 출전할 수 있었을까. “당시 재일동포는 아무리 운동을 잘 해도 일본대표가 될 수 없었지요. 선배 3명이 주일한국무역대표부에 이런 사정을 호소, 이승만 대통령을 면담할 수 있었다 합디다. 이 대통령은 사정을 듣고 ‘우리 동포인데 당연히 전국체전에 참가해야지. 그러나 우리나라는 막 전쟁이 끝나 너희들에게 지원을 해줄 형편이 못되니, 대신 물건이라도 들여와 팔아서 경비를 충당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답니다. 당시 주일대표부에는 서거한 최규하 전 대통령(초대 재일대한체육회 회장), 유태하 대사(당시 참사관) 등이 계셨지요. 전국체전에 초청은 받았지만 재일동포들의 법적지위 때문에 한국에 올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일본 출입국관리소를 찾아갔죠. 담당 국장이 배포가 있었던 사람이었는지 ‘인도적인 차원에서 허락한다’고 했고 선수들은 주일한국무역대표부가 발행한 두 쪽짜리 임시여권을 받았어요.”

당시 재일동포선수단은 축구를 제외하고는 출전 종목 모두가 우승 할 정도로 실력이 한 수위였다. “16년간 축구선수로 뛰었는데 최고 성적은 준우승 한번이 고작이었어요. 횟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스물두세살 때 참가한 대전체전에서였는데…. 그것도 국내 최강이었던 ‘병참단’이 해외파견으로 빠진 덕분이었죠. 긴키대를 졸업하고 1년 후까지 현역으로 출전했습니다.”

재일동포선수단이 출전하자 국내에서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다. “당시는 여의도에 비행장이 있을 때인데 수 천명의 여성 환영객들이 나왔어요. 숙소는 무교동의 서린여관(서린호텔 전신)이었고 화신백화점 앞에서 서울운동장까지 시가행진도 했어요. 일본에서 생필품을 가져와 팔아 경비로 사용했는데 화장품, 스타킹, 가죽장갑, 뭐 이런 것들이었어요. 이문이 10배는 됐어요. 아무튼 1인당 큰 가방으로 몇 개씩을 들고 왔으니 체전이 열리면 서울 물가가 요동을 칠 정도였죠. 남대문시장이나 미도파에서 우리 물건을 사갔지요. 아마 재일동포선수단이 ‘보따리장사’의 효시가 아닌가 싶습니다.”

전국체전을 다니다 평생의 직업인 여행사를 차리게 됐다. “전국체전 선수가 되면 모국에 갈 수 있다고 동포사회에서 소문이 나서 40, 50대들도 100만~200만엔의 기부금을 내고 선수단에 끼었어요. 내가 여권서류를 대신 써주고 ‘늙은 사람이 무슨 선수냐’고 의아해하는 일본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한국 고유의 궁도종목은 나이든 사람이 한다’고 핑계를 대주곤 했죠. 65년 국교가 정상화되자 이런 일로 친해진 일본관리가 ‘여행업’을 하면 복수여권이 나온다고 일러주기에 여행사를 차리게 됐죠.”

중3 때부터 일본에서 살았지만 일본사회에 융합되지는 못했던 그에게 2002한·일월드컵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한·일공동개최가 결정된 후 열린 98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그는 관광상품으로 ‘코리아재팬 공동응원단’을 구성해 양국에서 1500명을 모집하는 큰 호응을 얻었다.

“응원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는데 갈아 탈 비행기가 왔는데도 일본인들이 갈 생각을 안 해요. 그러면서 간절한 표정으로 ‘우리, 이렇게 헤어져야 합니까’하더라고요. 일순 뒤통수를 얻어 맞은 것 같았어요. ‘2002월드컵 한·일공동응원단’ 구성 계획이 즉석에서 수립됐죠. 사실 한국은 16강 이상 진출이 어렵다고 예상하고 예선 3경기 티켓만 예매해 두었는데 4강까지 올라가는 바람에 티켓 구하는 데 애를 먹었죠. 대한축구협회에서 공동응원단의 취지를 공감하고 최우선적으로 티켓을 배분해 주어 무사히 치렀지만…. 기세로 봐서 한국이 결승에 가는 줄 알고 어렵게 티켓을 구해놓고, 호텔은 도저히 안 돼서 텐트를 마련해 놓기도 했죠. 이렇게 경기예측을 잘못하는 바람에 사 놓은 표를 일부는 되팔았지만 대부분 해당국 응원단에 무상으로 주는 바람에 돈을 벌지는 못했어요. 아무튼 한·일월드컵을 통해 양 국민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큰 자산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볼까요. 예전에는 일본에서 한·일전이 열리면 일본경찰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양국응원단을 철저히 갈라놓았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나는 아주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봅니다.”

재일대한체육회 회장을 거쳐 지금은 고문직을 맡고 있는 김영재씨는 올 가을 광주체전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광주체전은 개인적으로 네번째죠. 언제더라, 광주체전에서 정문이 쓰러지는 바람에 사상자가 발생한 적이 있는데….”

체육부기자 dylee@munhwa.com

웃지 못할 에피소드 - 체전용 실탄 너무 실어 비행기 못 뜨기도

재일동포 선수단의 전국체전 참가는 전후 황폐화되었던 한국스포츠에도 큰 도움이 됐다. 물자가 귀했던 시절 육상용 투창, 농구골대, 정구라켓, 스키, 사격용 총기, 사이클 등 국내에서 구할 수 없었던 기구나 용품을 재일본대한체육회가 조달했다.

이에 따른 에피소드도 많은데 대표적인 것 한 가지. 57년 전국체전을 앞두고 대한체육회가 사격용 실탄을 재일체육회에 부탁했다. 그런데 얼마나 실었던지 캐세이퍼시픽의 쌍발프로펠라 전세기인 D-4가 이륙하지 못했다. 항공사 직원이 실탄을 일부 내려야겠다고 하자 사격 임원인 권정협(고인)씨가 못내린다고 총을 꺼내 위협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결국 일본세관 직원들이 ‘우리가 책임지고 다른 비행기로 보내주겠다’고 달래 이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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