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다문화시대 한국사회 포용력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날까지 한세기 가까이 세계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미국이 일본이나 중국에 추월 당할 것이라는 미래학자 등의 예측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1960년대 중반 전통적인 굴뚝산업이 한계에 봉착하고 베트남 전쟁으로 확산된 반전운동과 히피문화 등을 보면서 이런 유의 예언은 봇물을 이뤘다.

가깝게는 예일대의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가 1987년 유명한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미국은 조만간 쇠퇴하고 일본이 일어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1989년 일본 기업이 엔고(高) 바람을 등에 업고 뉴욕의 록펠러 센터를 사들이자 ‘일본 추월론’은 기정 사실화되는 듯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예측들은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얼마전 과거 전문가들이 세상의 변화를 잘못 전망한 ‘빗나간 예측’ 사례의 첫번째로 폴 케네디의 예언을 꼽았다. 일본은 1990년대 들어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깊은 경제침체에 빠졌고 미국은 정보기술(IT) 혁명을 통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이처럼 번영을 계속하는 첫번째 요인으로 용광로식 문명통합을 꼽고 있다. 미국은 1492년 콜럼버스가 유럽 사람으로는 처음 도착한 뒤 전세계에서 온 이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다민족 국가다. 지난 100여년 동안 한국에서 건너가 미국사람이 된 숫자만 줄잡아 200만명이 넘는다. 흑인 차별의 뿌리가 남아 있고 황인종 및 중남미계(히스패닉)에 대한 차별이 여전하다고 하지만 다양한 인종과 문화의 유입은 오늘날 미국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다. 1990년대 이후 미국 경제 재도약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는 IT혁명도 중국이나 한국, 인도에서 건너간 기술 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뉴욕이 단순히 미국의 중심도시가 아니라 ‘세계의 수도’로 불리는 것처럼 이제 미국은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그 자체가 세계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계 조승희씨가 일으킨 버지니아공대 참사 직후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 사회의 관대함과 포용성에 놀랐지만 사실은 특정 인종과 민족에 대한 차별을 전제하고서는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는 나라가 바로 미국인 것이다.

동양에서는 중국이 고대부터 문명의 용광로 역할을 했다. 서쪽으로는 유럽과 아랍계, 동으로는 한국과 일본까지 교류하면서 영토만큼이나 광대한 문명제국을 구축했다. 구 소련은 사회주의 체제와 함께 연방이 붕괴하면서 산산조각이 났지만 36개의 소수 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별다른 분리 독립운동에 직면하지 않은 것도 이런 문명적 포용력이 뒷받침돼 있기 때문이다.

10년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겪은 이래 우리앞에 놓여 있는 최대의 화두는 국제화, 세계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타결된 데 이어 유럽연합(EU)과 협상이 진행중이고 중국과도 협상이 거론되고 있다. 국제화와 세계화는 이제 더이상 선택이 아닌 대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장벽을 걷어내고 다른 문명과 교류, 교통하지 않는 나라는 더이상 발전할 수 없는 시대다.

세계화의 물결과 함께 우리 나라도 본격적으로 다문화 국가로 진입하고 있다. 시골에서는 초등학교 입학생의 절반 가까이가 동남아 등에서 시집 온 엄마를 두고 있을 정도다. 서울의 길거리나 웬만한 식당에만 가도 피부와 눈빛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와 마주치게 된다. 급격하게 진행되는 다문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다른 문화와 관습에 얼마나 관대할 수 있을까? 또 한국사회라는 용광로는 얼마나 많은 문화와 문명을 녹이고 통합할 수 있을까?

[[이상호 / 사회부장]] soo-lj@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