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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보훈의달 특집-베트남 전쟁의 교훈 게재 일자 : 2007년 06월 05일(火)
“6자회담 중요하나 ‘협정’이 모든 것 담보 못해”
월맹군에 억류 5년 옥고 이 대 용 前 주월공사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사진=임정현기자
6·25 전쟁 당시 중대장으로 북진과정에서 압록강변에 맨 처음 도달한 예비역 장군, 베트남 공산화 때 월맹군에게 억류돼 5년간 옥고를 치렀던 전직 외교관. 이처럼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쳐왔지만 이제 이대용 전 주월공사(예비역 준장)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역시 인터뷰 요청에 “나같은 옛날사람 보다는 비전이 있는 사람을 찾아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베트남 억류 중 그를 신문한 월맹군의 특별경찰은 2005년까지 주한 베트남 대사를 지냈다.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유명한 박영수 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국장 역시 억류중인 그에게 전향을 강요했던 북한 대사관 정보원이었다. 그에게 6·25와 베트남 공산화는 최근까지 진행형인 셈이다. 그래서 그가 베트남의 개혁·개방, 북한의 핵무장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6자 회담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지난 2일 문화일보 인터뷰실에서 만난 이 전 공사에게 지난달 이뤄진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철도 시험운행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남북간에 철로가 일시 개통됐다는 건 하나의 이벤트로서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시험운행을 한 것은 남북이 하나가 되고 경제가 통합되는 목표를 생각하면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6·25 전쟁 당시 압록강변에 가장 먼저 도달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전쟁 중 여러차례 총상을 입었는데 운이 좋아서인지 계속 살아남았습니다. 충북 음성에서 처음 총상을 입었고, 낙동강 전투에서는 부상을 당해 붕대를 감고 있었는데 몰래 탈출해 부대에 합류했습니다. 대규모 반격에 나서 북진을 하다가 우리 중대 하나만 압록강에 도달했습니다. 당시 우리 연대는 90리 후방에 와 있었습니다.남북통일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감개무량해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3일 후 완전히 포위당하고 말았습니다. 본대에서 철수 명령이 내려왔고 후퇴가 시작됐습니다. 대동강까지 남하한 후에야 아군과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주베트남 공사로 근무하시다 1975년 베트남 공산화 당시 공산당에 의해 불법억류돼 5년간 옥고를 치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헬기탈출 계획이 중단되면서 100여명의 한국인이 남았습니다. 이들을 이끌고 치외법권이 인정되는 영국대사관과 프랑스대사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공산당측의 압력으로 프랑스 대사관에서 쫓겨나게 됐고 저를 포함한 한국외교관 3명과 한국 민간인 11명이 사이공 치화형무소에 투옥됐습니다. 저는 1평도 안된 방에 갇혀 10개월동안 햇빛을 한번도 못 보기도 했고 목숨을 담보로 끊임없이 전향을 요구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78㎏이었던 몸무게가 42㎏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당시 전향을 강요하며 고문을 했던 베트남 공산당의 특별경찰이 2005년까지 주한 베트남 대사를 지냈다고 하던데 만나보셨습니까.

“2002년초 서울부시장을 역임한 홍순길 회장이 치화형무소에서 저를 신문한 즈엉 징 특이란 사람이 주한 베트남 대사로 오게 됐다고 전해주면서 ‘특 대사가 보통 3일만 신문을 하면 항복하는데 이대용 공사가 끝내 전향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적이지만 존경하게 됐다는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저는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특 대사를 죽여버리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베트남이 한국과 사이가 좋은데 내가 특 대사를 죽이면 국가에 큰 해를 입히겠다고 생각해 대사로 부임하더라도 만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입해 있는 서울남서로타리클럽 조찬주회에서 특 대사가 강연을 하게 됐습니다. 저는 주위에 설득도 있고 해서 2주간 고민하다가 예수님이 죄인을 용서하듯 그를 용서하자고 생각하고 나갔습니다.

행사장에 나가니 VIP룸에서 특 대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내 손을 잡더니 ‘옛날 이 공사께서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선견지명이 있으셨다’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우리가 개인적 감정은 없지 않으냐. 서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아니냐”며 화답했습니다. 이후 몇차례 만나 식사를 하며 우의를 다졌습니다.”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한 박영수 전 부국장도 베트남에서 이 공사를 신문했다고 하던데요.

“서울 불바다 발언 당시에는 그가 저를 신문하던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10여 년전 한국으로 귀순했던 황일원이모란 사람으로부터 저를 신문했던 북한사람이 박영수라는 고 알려줬습니다말을 들었습니다. 당시 박영수는 하노이 주재 북한대사관 정보원이었습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 회담에 이어 실무협상이 진행되고 있는데 북핵문제의 해결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기본적으로 6자회담에서 해결되는 게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국제적으로 보장을 한다고 해도 결국 북한의 의지가 없으면 안됩니다. 베트남의 경우에도 12개국이 담보하는 남북휴전협정을 맺었지만 결국 월맹의 남침으로 공산화됐습니다.

1973년 미국, 월남공화국(남월), 월남독립연맹(북월), 남월해방민족전선 등 4자가 휴전협정에 서명했고 미국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는 휴전을 담보하기 위해 국제휴전감시위원단을 파견하는 캐나다, 이란, 헝가리, 폴란드 4개국 외무장관에 영국, 소련, 프랑스, 중공 등 4개국 외무장관까지 서명에 참여시켜 결국 파리휴전협정은 12개국이 보증하는 값비싼 국제서명문서가 됐습니다.

더구나 키신저 국무장관은 북월공산당측이 남월을 공격할 경우 미군이 자동개입하는 방위공약을 남월과 맺고 북월이 파리휴전협정을 성실히 이행할 경우 40억달러의 경제개발 원조를 제공할 것을 약속하는 등 5개의 안전장치까지 마련했습니다만 휴지조각이 됐습니다.”

―6자회담 이후 우리정부는 북측과 활발한 접촉을 벌이고 있고 최근에는 남북 정상회담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현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회담하고 나면 북한이 핵도 포기하고 잘 풀릴줄 알았는데 그 이후 상황이 나빠진 것 아닙니까. 대화는 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남북이 둘이서 뭘 한다고 해도 세계화시대에 주변 강대국들이 도와주고 지원하지 않으면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6자 회담 자체가 모든 것을 담보해주진 않지만 일단 정부가 너무 앞서 나가지 말고 6자 회담과 공동보조를 맞춰야 합니다.”

―북한의 핵실험, 한국의 전시작전권 환수 등으로 안보 환경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주장이 보수진영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전작권은 환수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만약 지금 북한과 남한이 전쟁을 한다면 북한이 이긴다고 봅니다. 북한을 갔다온 사람들은 북한이 형편없는 국가이고 전쟁을 할 능력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트남이 공산화되기 직전 북월도 그랬습니다. 공산권 국가에서 쌀을 100만t 지원해줬지만 먹을 게 부족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더기를 입고 다녔고 맨발로 다녔지만 강성대군을 유지했습니다. 사실 경제력이 10배든, 20배든 막상 전쟁이 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특히 핵을 사용하면 속수무책입니다. 따라서 미국이든, 영국이든 핵을 가진 나라와 손 잡아서 그들의 핵우산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북한이 최근 쌀 차관 제공이 지연되고 있다는 이유로 남북장관급회담과 이산가족상봉 등에 부정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북 지원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해야겠지만 상호주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합니다. 쌀 등을 지원할 때는 지원품이 북한주민을 위해 사용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 장치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리가 지원한 쌀을 군량미로 쓰고 일부는 팔아서 핵개발에 사용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대북지원이 무기가 돼 우리를 겨냥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북지원이 북한의 개방,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반드시 연계돼야 합니다.”

―최근 베트남은 개혁·개방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체제가 공산주의라도 개혁·개방을 하면 북한 주민들도 어느정도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중국과 베트남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부자세습과 주체사상으로 유지되는 독특한 체제라는 점입니다. 즉 북한의 개혁·개방은 바로 북한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김정일이 개혁·개방 대신 핵을 개발했다고 봅니다.”

―여야 대선 후보 중에 안보관, 경제 비전, 국민 통합 측면에서 맘에 드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선 이번 대선에서는 후보들이 정책 대결을 하라고 주문하고 싶습니다. 2008년부터 한국이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보여달라는 겁니다. 우리 국민의 역량은 이미 고 박정희 대통령 때 입증됐습니다.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통합을 이루면 무서울 것이 없는 민족입니다. 어떤 후보를 지지하느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좌파성향의 현정권은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 이대용 전 주월공사는 누구?

이대용 전 주베트남 공사는 1925년 황해도 금천에서 태어나 경성사범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제6사단 7연대 제1중대장으로 6·25 전쟁을 맞은 그는 유엔군의 참전으로 대반격이 시작되자 자신의 중대를 이끌고 처음 압록강까지 진격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61년 연대장으로 승진한 그는 그는 1963년 주베트남 대사관 무관으로 파견되면서 베트남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1967년 베트남 대선에서 이 전 공사와 미국육군지휘참모대학에서 함께 수학한 웬 반 티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이듬해 주베트남 정무공사로 부임해 4년간 근무했다.

1973년 다시 주베트남대사관 경제공사로 부임한 그는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외교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베트남 공산당에 의해 불법 체포돼 사이공의 치화형무소에서 5년간 옥고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그는 베트남 특별경찰과 주사이공 북한대사관 정보원들에 의해 귀순을 강요받았으나 끝내 거부했다.

1980년 4월12일 석방된 이 전 공사는 화재보험협회 이사장과 생명보험협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1996년에는 한·베트남친선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육사총동창회장과 명예회장을 연이어 역임했다. 2002년에는 정래혁, 장경순, 김창규, 김성은 등 예비역 장성 7명과 함께 ‘자유수호국민운동’을 구성, 안보 관련 시위를 주도했으며 2004년에는 ‘자유수호’라는 월간지를 발간하기도 했다.

minp@munhwa.com
e-mail 박민 기자 / 정치부 / 부국장직대겸 정치부장 박민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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