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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07년 07월 06일(金)
세계에 띄우는 ‘슬럼 경고장’
슬럼, 지구를 뒤덮다 /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불과 50여년 전만 하더라도 오늘날의 서울과 같은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1950년대의 판자촌은 이제 거대한 아파트촌으로 탈바꿈했고, 서울 도심의 빌딩숲은 뉴욕 같은 세계적 도시들에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타워팰리스가 있다면 쪽방도 있다.유엔이 집계한 ‘국가별 슬럼 인구 순위’에서 한국은 세계 12위에 올라 있다. 페루보다도 한 계단 높은 순위다. 우리나라 도시 인구 중 슬럼 인구는 37%로 추산된다. 이들이 전부 어디에 있냐고? 만약 당신이 이 같은 의문을 가진다면 당신은 슬럼 인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는 세계화가 그려낸 21세기 세계 도시의 자화상이다. 21세기의 도시화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 각국에서 농촌은 이미 몰락했거나 그 직전에 있고, 농민들을 도시로 밀어내는 힘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 하지만 시장이 제공하는 주택 물량은 수요의 20%도 채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무허가 판잣집과 노숙 등에 의존한다. 서울에 쪽방이 있다면 홍콩엔 ‘새장’이 있다.(‘새장’이란 침대 하나짜리 독신용 거주지를 일컫는 홍콩 특유의 용어다. 거주자가 물건을 도둑맞지 않기 위해 침대에 철사줄로 보호막을 설치한 모습을 빗대 표현한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현대도시의 문제점을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조망한다. 파국의 핵심인 슬럼의 문제를 파고들어가다 보면 제3세계 농촌의 몰락, 고실업 및 비정규직의 증가, 중산층의 탈정치화와 개인주의화 등 다양한 문제들과 맞닥뜨린다. 한마디로, 슬럼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낳은 사생아인 것이다.

유엔의 통계에 따르면, 2001년 전세계의 슬럼 주민 수는 9억명을 뛰어넘었고, 2005년에는 10억명을 넘어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전 세계 도시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인구다. 세계 각국에서 슬럼의 형태는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무엇이라고 불리든 간에 슬럼은 인구과밀과 주택의 열악함, 주택 보유의 불안정성, 수도나 전기를 비롯한 공공설비의 부재라는 공통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왜 슬럼이 지구를 뒤덮게 됐을까. 저자는 전 지구적 도시 빈곤의 가장 큰 원인으로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 주도로 1970년대 후반에 시작된 제3세계 구조조정을 꼽는다.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를 넓혀나갔던 것처럼 20세기 후반 금융자본은 제3세계를 다시 한번 자본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게다가 식민지 해방 이후 집권한 제3세계 엘리트의 부패와 무능 또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정치적 독립을 획득한 옛 식민지 국가에서 집권세력들은 밖으로 민족해방과 사회정의를 내세우면서 안으로는 계급적 특권을 확보하기에 급급했다. 이들에게 IMF 융자는 자신들의 비자금을 확보할 기회였을 뿐이다.

저자는 “빈민과 공공부문 중간계급을 짓밟았던 구조조정은 민간 사업자, 외국 수입업자, 마약상, 군 장성, 정치가들에게는 대박을 터뜨릴 기회였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슬럼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통계상 중국 베이징(北京) 주민들은 화장실 하나를 6000명 이상이 공유하고 있다. 인도 뭄바이에선 주민의 절반인 500만명이 화장실이 없이 살고 있다. 슬럼가 빈민들은 그야말로 똥통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민 수천 명이 화장실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막힌 상황에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날아다니는 화장실’, 일명 ‘스커드 미사일’(배설물을 비닐봉지에 담아 던지는 데서 유래한 이름)에 의존한다.

인구 밀집에 길도 좁은 슬럼의 여건상 화재가 끊이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슬럼에서 화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조직적 방화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필리핀에서 지주들은 등유를 뿌린 쥐나 고양이에게 불을 붙여 골치 아픈 슬럼에 풀어놓는다. 공식적인 철거 허가를 기다리기보다는 이른바 ‘뜨거운 철거’가 더 빠르고 쉽기 때문이다.

대도시 슬럼가 옆에는 화학공장이나 정유공장 같은 유해 산업이 자리잡기 일쑤다. 이 때문에 재난 역시 끊이지 않는다. 1984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선 송유관이 폭발해 500여명이 사망했고, 멕시코시티의 산후아나코에선 국영 멕시코정유회사(PEMEX) 공장 폭발 사고로 2000여명이 죽었다. 이 같은 예는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철거는 슬럼의 또 다른 얼굴이다. 슬럼 주민들은 올림픽과 미인대회, 외국 국가원수의 방문, 국제회의 개최 등을 가장 두려워한다. 도미니크공화국의 호아킨 발라게르 전 대통령은 교황 방문을 기념해 40개 판자촌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우리나라 역시 슬럼 철거의 역사에서 ‘당당하게’ 세계 최고 기록을 갖고 있다. 1988년 올림픽이 열렸던 서울과 인천에서 자신이 살던 거주지에서 쫓겨난 사람은 72만명에 달했다.

그럼, 도시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한 것일까. 저자는 “경제적 지구화에 전 지구적 공중보건 인프라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파국이 닥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같은 파국은 조건부 파국이다. 그 조건을 어떻게 바꿔 나가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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