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폭행’ 경찰수사는 짜맞추기

전직 경찰총수의 수사 무마 청탁, 군말없이 이를 수용한 경찰 간부들, 금품 및 취직을 미끼로 내건 대기업의 전방위 로비, 수사기록까지 날조하는 ‘짜맞추기 수사’.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는 엉터리 그 자체였다. 경찰의 늑장 수사 및 외압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서범정 부장검사)은 13일 이같은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청탁 2분만에 수사 중단 = 장희곤 전 남대문경찰서장이 고교 선배이자 경찰청장 출신인 최기문 한화건설 고문의 청탁 전화를 받은 것은 사건 발생 나흘 뒤인 3월12일 낮 12시. 장 서장은 2분 뒤 강대원 당시 수사과장에게 전화, 당시 한화그룹 본사와 범행 현장에 출동했던 수사팀 철수를 지시했다. 피해자가 신고나 고소를 하지 않았다는 게 수사중단 지시 이유였다. 최 고문은 이어 서울청 광역수사대 내사 소식을 듣고 홍영기 당시 서울청장 등 서울청 간부들을 상대로 전방위 청탁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3월19일 김 회장이 최 고문에게 전화해 “내가 관련돼 있으니 잘 좀 해달라”며 로비를 직접 부탁한 사실도 드러났다.

◆로비에 흔들린 수사 = 한화측의 돈을 받고 로비스트가 된 조직폭력배 맘보파 두목 오모씨는 남대문서 강 수사과장과 술을 마시며 둘째 아들을 한화 계열사에 취직시켜주고, 사직 후 평생 한화에서 부장급 대우를 해주겠다는 제의를 전했다. 함께 있던 이진영 남대문서 강력2팀장에게는 특진을 제의했다. 강 과장은 수사를 마친 뒤 아들 이력서를 내겠다고 답변했다는 게 오씨 주장이다. 한화측은 5월11일 김 회장 구속영장 심사 때 피해자에게 9000만원을 공탁한 데 이어 18일 피해자 6명에게 7억원의 합의금을 주었다. 한화측은 경찰 청탁 명목 등으로 오씨 등에게 5억8000만원을 내놓았지만 경찰에 전달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한차례 수사를 중단했던 남대문서는 3월28일 서울청 첩보가 이첩되자 피해자 대신 한화 측과 접촉했다. 수사팀은 4월17일 진모 한화 경호과장을 소환, 김 회장은 사건과 무관하다는 내용의 조서를 작성, 내사종결 수순을 밟았다. 이미 한화측과 사건을 무마하기로 합의한 탓에 ‘짜맞추기 수사’를 시도한 것이다. 심지어 4월24일 언론에 보복폭행 사실이 보도되자 남대문서는 3월29일자 수사보고서를 만드는 등 6건의 ‘가짜 수사보고서’를 날짜를 소급해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택순 경찰청장 무혐의 = 이 청장 부부는 3월18일 유시왕 한화증권 고문 부자와 골프를 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청탁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 청장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물밑 수사 무마 작전이 진행되는 한달 반 동안 이 청장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검찰 조사 결과다. 경찰 수뇌부에 줄줄이 청탁 전화를 넣었던 최 고문이 유독 이 청장에게는 전화를 건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 검찰은 이날 최 고문(직권남용), 김모 한화 전략기획팀장(제3자 뇌물교부), 강 전 남대문서 수사과장(직무유기) 등을 불구속기소하고 홍 전 서울청장, 김학배 전 서울청 수사부장 등 2명은 입건유예하고 현직 경찰관 6명에 대해 징계통보했다.

한편 이 청장은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글을 통해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불미스러운 일들은 모두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저의 부덕한 탓”이라며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이날 ▲청탁사건 회피제도 도입 ▲직무고발 활성화 ▲고위간부에 대한 내부고발사건 경찰청 특수수사과 전담수사 ▲청탁행위에 대한 무관용 원칙 등을 담은 ‘부정청탁 근절 및 수사공정성 제고방안’등도 함께 발표했다.

정혜승·한동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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