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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지역과 더불어 게재 일자 : 2007년 07월 19일(木)
“여기저기 ‘분배’ 방식으론 세계일류大 절대 못만들어”
취임 1년 서남표 KAIST 총장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사진=박상문기자
1950년 여름 북한 공산군 치하로 넘어간 서울. 14살짜리 소년 서남표(당시 서울대사대부중 2년)는 폭격으로 파헤쳐진 구덩이를 메우는 부역으로 피곤에 지쳐갔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이던 아버지(고 서두수)가 박사 학위 공부차 미국 컬럼비아대로 1949년 유학한 ‘죄’로 소년의 집안은 졸지에 ‘반동’으로 낙인 찍혔다.

6남매중 큰형은 전쟁 중에 실종됐고, 누나는 혹시 끌려갈까 봐 집에 숨어지냈다. 차남이었지만 집안의 가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소년의 가슴속엔 ‘꼭 살아남아 아버지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57년이 지난 7월16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실. 기아와 죽음의 위험속에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곡괭이를 잡던 그 소년이 백발의 노과학자로 돌아왔다. 취임 1주년을 맞으며 KAIST 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서남표(71) 총장이다.


1950년 여름 북한 공산군에 치하로 넘어간 서울. 15살짜리 소년 서남표(당시 서울사대부중 2년)는 폭격으로 파헤쳐진 구덩이를 메우는 부역으로 피곤에 지쳐갔다.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이던 아버지(고 서두수)가 박사 학위 공부차 미국 컬럼비아대로 1949년 도미한 ‘죄’로 소년의 집안은 졸지에 ‘반동 집안’으로 낙인찍혔다. 6남매중 큰 형은 전쟁 와중에 실종됐고, 누나는 혹시 끌려갈까 봐 집에 숨어지냈다. 차남이었지만 집안의 가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소년의 가슴속엔 ‘ 꼭 살아남아 아버지를 만나야 한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57년이 지난 7월 16일 대전 KAIST(한국과학기술원) 총장실. 기아와 죽음의 위험속에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곡괭이를 잡던 그 소년이 백발의 노과학자로 돌아왔다. 취임 1주년을 맞으며 KAIST 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서남표(72) 총장이다.

“1954년 아버지가 계시는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잿더미가 된 조국을 등지면서 가슴속으로 언젠가는 꼭 다시 돌아와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했었죠. 지난해 7월 52년 만에 KAIST 총장으로 귀향한 셈인데 결국 반세기전 다짐을 이제서야 실천하는 셈입니다.”

오전 오후 스케줄이 꽉 차있는 서 총장의 바쁜 일정상 점심시간을 틈타 도시락을 먹으면서 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적인 미국 과학계에서 ‘인종의 벽’을 극복하고 세계 최고의 이공계 대학이라는 매사추세츠 공대(MIT) 기계공학과 석좌교수와 수십억달러의 예산을 주무르는 미국 과학재단(NSF) 부총재까지 역임한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함이 엿보였다. 그의 ‘성공 스토리’가 궁금해 자연스레 50년에 걸친 미국 유학생활과 MIT 교수 생활로 대화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기계에 취미가 있었습니다. 조선소를 하던 고모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두들겨 부수고 만드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있었죠. ‘과학자로서의 길’을 열어준 것은 자녀의 적성을 파악하고 격려해준 부모님 덕택입니다. 중학생때 호기심에 깡통을 자른 뒤, 약품을 뿌려 불을 붙였다가 그것이 ‘펑’하고 터지는 바람에 얼굴에 상처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혼날 줄 알았는데 부모님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조심해라’라고만 말씀하시더군요.”

자연스레 최근 ‘사교육 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으로 화제가 옮아갔다.

“한국의 부모들은 초등학생 자녀들을 여러 학원에 보내기 바쁜데, 부모가 짜준 계획표대로 생활하다보면 아이들은 훗날 어려움이 닥쳤을 때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한국 학생은 남이 시킨 것을 받아들이는 데만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주입식 교육이 아이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결국 21세기 인재상인 ‘창의적인 인간’을 배출하지 못하는 사회를 낳는다는 것이다.

“아이가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교육하면 좋은지, 부모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하는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신나게 할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서 총장에게는 딸만 넷이 있다. 첫째 딸은 뉴욕타임스의 섹션 에디터로, 둘째는 하버드대 환경과학과 교수로, 셋째는 IBM재단의 사회공헌업무 담당자로, 넷째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적인 지위에 관계 없이 우리 네 딸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딸들을 키우면서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고 단지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자녀들은 자라면서 자연스레 부모를 역할 모델로 삼게 마련입니다.”

미국에서 인종 차별로 천대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오히려 ‘우대’를 받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뒤 이민간 교민들은 ‘적응’이 어려울 수 있지만 저는 고교때부터 미국식 교육을 받은 탓인지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물론 유학 초기 영어 시험에서 0점도 받아보고 했지만 헤밍웨이나 오 헨리의 책을 주며 가르쳐준 선생님들 덕분에 곧 극복할 수 있었지요. MIT 기계공학과 재학 시절 청소원, 교환원, 도서관 아르바이트 등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열정과 노력이 있으면 외국인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게 미국사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능력 본위의 미국 주류 사회와 세계 과학계에서 ‘닥터 냄 수(Nam Suh)’로서의 명성을 얻기까지에는 남다른 ‘그 무엇’이 있지 않았을까? 인터뷰 전 KAIST 안팎의 인사를 만나 서 총장의 캐릭터와 업무 스타일을 취재했다. 그 결과 ‘일에 대해 초인적인 열정’을 가진 사람, ‘합리적인 권위주의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업무에 관해서 그는 밤낮이 없다. 보통 30분 단위로 정부, 과학계, 학내외 인사 등을 만난다. 심지어 그가 현직 이사로 있는 미국의 각종 위원회와 국제전화회의를 위해 오전 2시부터 일정을 시작하는 일도 잦다. 하루 2~3시간만 자고 업무에 임하는 그의 헌신적 업무 자세와 체력은 KAIST 안팎에서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자신의 학문적 업적과 MIT 기계공학과 학과장 재직 당시 학과간 벽을 허물고 융합 학문 개념을 도입해 성공적인 개혁을 완수한 추진력, 미국 과학재단 부총재를 지내면서 쌓은 행정적 역량에 대한 자신감 등은 때로는 그를 권위주의자로 비춰지게도 한다. 하지만 개혁 정책이 별다른 무리 없이 학교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어 ‘연착륙’할 수 있는 배경에는 그가 보여주는 ‘헌신’과 ‘도덕성’, ‘정책의 합리성’이 큰 힘이 됐다.

서 총장은 취임 이래 KAIST를 5년내에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대학으로 도약시킨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다. ‘적당주의’와 ‘좋은 게 좋은 문화’는 더이상 KAIST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올해부터 일정 학점에 미달한 학생들에게는 국내 최고수준인 연간 1500만원의 등록금을 내도록 했다. 빈둥빈둥 놀아도 공짜로 재워주고 가르쳐주는 학교는 세계 최고는커녕 한국 최고도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능력과 무관하게 철밥통처럼 된 교수사회에도 ‘경쟁 원리’를 도입했다. 뉴 테뉴어(New Tenure) 제도를 도입, 유능한 교수는 임용 7년안에 ‘영년직 교수’로 재임용해 정년을 보장하고 ‘무능 교수’는 일찌감치 ‘딴 자리’를 알아보도록 퇴출하는 시스템을 시행했다. 최근에는 노조와 협의를 통해 관료화되기 십상인 행정직 교직원들도 능력 여하에 따라 58세 정년을 탄력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1년간 지켜보면서, KAIST 학생과 교수들이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돈이 없다는 게 문제지요. 1조원의 대학 발전기금을 마련해주는 데 한국 사회가 힘을 보태주고 올해 뽑힐 대통령도 KAIST에 돈 많이 준다고 하는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여기도 몇푼 저기도 몇푼 나눠준다는 사람이 되면 고만고만한 대학만 나오고 세계 최고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최근 사회적 화두로 대두되고 있는 이공계 위기현상과 KAIST 위상 하락에 대해 그는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다.

“결국 시장 원리에 의해 합리적으로 조정될 것으로 봅니다. 당장엔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가 전망이 좋아 보이지만 사회는 언제나 변화하기 마련입니다. 저도 과거 학계와 민간 기업을 포함해 직장을 네번 바꿨던 경험이 있는데 당장의 연봉이나 대우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습니다. 결과는 당장 월급을 적게 준 회사에서 쌓은 경험이 내 경력에 큰 보탬이 되곤 했었습니다.”

서 총장 앞에는 KAIST 개혁을 위해 돌파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규제가 너무 많습니다. 오늘 아침 학교 회의에서도 쓸데없는 규정 좀 없애자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일례로 정부가 KAIST 기본예산을 주는데 항목별로 용도를 달아 일일이 줍니다. 통제만 하지 말고 자율성을 부여해줘야 합니다. 과거처럼 부정한 짓을 하는 것도 아닌데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 서남표는 누구 ]

서남표 KAIST 총장은 생산제조기술 분야 중 플라스틱 제조공정, 금속 제조공정, 마모이론, 설계이론 등에서 탁월한 연구 업적을 이룩한 세계적인 석학이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학사, 카네기 멜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36년간 MIT 교수로 재직하면서 공대 혁신을 선도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초대 MIT 제조 및 생산연구소장, 기계공학과 학과장, 미 과학재단(NSF) 부총재 등을 역임했으며, 지난해 7월 KAIST 제13대 총장에 취임했다.

취임후 서 총장은 학문적 성과와 지도자로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와 호주 퀸즐랜드대에서 연이어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미 플라스틱공학회 ‘종신업적상’과 국제생산공학아카데미 ‘제너럴 피에르 니콜라우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 총장은 바쁜 일정에도 신입생들의 담임을 맡아 학생들과 소통하고, 과학고를 직접 찾아 교육 현장을 체험하며 한국 과학영재 교육의 해법에 대해 고민한다. 외부 특강으로 받은 수입 전액을 학교 발전기금으로 내놓는 모습에 KAIST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기부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발전 비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신감을 심어준 서 총장의 리더십이 KAIST를 세계 최고의 이공계 대학으로 도약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1936년 경북 경주 출생 ▲59년 미국 MIT 기계공학과 졸 ▲64년 카네기 멜론대 기계공학 박사 ▲64∼69년 사우스캐롤라이나대 교수 ▲70∼2006년 MIT 기계공학과 교수 ▲84∼88년 미국 국립과학재단 부총재(공학부문 총괄) ▲89∼2006년 MIT 석좌교수▲2006년 7월∼KAIST 총장

인터뷰 = 김창희 전국부기자
대전 = chkim@munhwa.com
e-mail 김창희 기자 / 전국부 / 차장 김창희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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