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윤의 스포츠인생>“1000승 꼭 하고 싶었는데… 난 불운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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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3월27일, 삼성-MBC의 개막전으로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 종사자 중 두 사람만 빼고는 프로라는 게 뭔지 몰랐다. 그 둘은 일본 프로 물을 먹었던 백인천 MBC 감독과 김영덕 OB 감독이었다.

백인천은 경동고를 졸업한 후 농협을 거쳐 일본에 진출한 국내 야구계 해외파 1호지만 김영덕은 일본에서 출생한 재일동포로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다 국내로 돌아온 케이스. OB를 원년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영덕은 삼성과 한화를 거치며 93년까지 11년간 프로감독을 지냈다. 이후 LG 인스트럭터, 2군 감독을 지내다 98년 영영 그라운드를 떠났다.

말년에 배운 골프로 소일한다는 김영덕(71)씨를 지난 1일 용인시 수지읍 고기리 소재 한 골프연습장에서 만났다.

“골프는 8년 전 LG 2군감독을 그만둔 뒤 소일거리가 없어 시작했죠. 야구를 해서인지 2년 만에 싱글이 됐는데 일흔 고개를 넘어서자 이젠 싱글은 힘드네요. 그래도 80초반은 쳐요. 드라이브는 요즘도 잘 맞으면 260m 정도….”

김영덕은 감독을 할 때는 골프를 치지 않았다. “이기면 괜찮은데 지면 꼭 골프와 연관이 되어 말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아무래도 골프에 빠지면 야구에 관한 집중도가 떨어지죠.”

야구에 종사할 때는 다른 아무 것에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는 김영덕의 이런 자세는 그의 야구입문 배경과 관계가 깊다.

“경남 합천군 초개면 출신인 부모님이 해방 전 결혼하자마자 먹고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셨어요. 아버지(김호윤)는 탄광노동자, 어머니(안을남)는 밥장사를 하셨어요. 시모노세키 인근 우베탄광에서 일하다 나중에는 이곳저곳 떠돌게 됐는데 이 때문에 우리 6남매는 출생지가 다 달라요. 내가 차남인데 형은 야마구치현, 나는 교토, 바로 밑 동생은 가나가와현, 이런 식이죠. 태평양전쟁이 끝난 해, 내가 ‘소학교’ 4학년때 가나가와현 즈시(逗子)시에 정착했어요. 이때 전쟁 중 중지됐던 프로야구가 재개됐죠. 당시도 요미우리와 한신은 라이벌이었는데 요미우리의 ‘빨간 배트’ 가와카미 데쓰하루와 한신의 ‘파란배트’ 오시타 히로시의 대결이 볼 만했죠. 우리 또래에겐 그들은 영웅이었고 ‘야구 딱지’가 판매될 정도로 프로야구는 인기가 대단했죠. 자연히 글러브도 없이 고무공으로 하는 동네야구가 성행했고.”

친구들보다 덩치도 크고 야구에 소질도 있던 김영덕은 이즈시 가이세이중학에 입학하면서 정식으로 야구부원이 됐다.

“처음에는 수영부에 들었는데 철이 들면서 재일 조선인들은 아무리 공부를 잘해 명문학교를 나와도 취직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실력만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는 프로야구선수가 되자고 결심했어요. 아주 일찍이 인생의 목표를 정한 것이죠.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었던 아버지는 극력 반대했지만 꼭 성공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허락받았어요. 동일계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투수에 4번 타자를 했는데 고시엔대회는 한번도 나가보지 못했어요. 현에 70여개 팀이 있는데 바닷가에 있는 우리 학교는 운동장이 온통 모래밭이어서 훈련을 못했어요.

6교시 수업을 마치고 전철로 30분은 걸리는 곳으로 이동해 훈련해야 했고 감독도 역사 선생님이었으니 지역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거든요. 이런 여건에서도 고3때는 지역대회 4강까지 올랐어요. 나는 고2 때부터 ‘가나가와현 제1의 강속수 투수’로 불리며 신문지상에 오르내려 고3이 되자 6개 구단에서 스카우트제의를 받았었지요.”

오른손 정통파 투수였던 김영덕은 56년 난카이 호크스(현 소프트뱅크)에 입단한다.

“난카이에는 지금도 일본 최고의 감독이라고 칭송받는 즈루오카 감독이 계셨는데, 이 감독의 후원자 중의 한 분인 니시노 조스케(西野讓介)라는 사업가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후원금을 주며 난카이로 보낸 것이죠. 난카이에 입단할 때 계약금 60만엔, 연봉 48만엔을 받았는데 B급 정도 대우였던 것 같아요.”

촉망받았던 신인투수였지만 그는 프로야구에 입문한 후 3년간 2군에 머물었다. “무식하게 투수 코치가 시키는 대로 매일 전력으로 던졌어요. 오죽하면 내 별명이 ‘슈퍼맨’이었을까. 2년 차에 결국 팔꿈치와 어깨가 나갔어요. 그러다 3년차 시즌 막바지에 1군에 등록됐고 4년째부터 본격적인 1군 생활을 했지요.

창피하지만 63년 한국진출 할 때까지 1군 통산 기록이 7승뿐입니다. 그것도 59년 시즌에만 6승을 올렸어요. 부상도 있었지만 당시는 지금처럼 투수 로테이션이 있는 게 아니라 에이스가 거의 전 시즌을 끌고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어요. 그해 우리 팀 에이스였던 스기우라 다다시는 무려 371과 3분 1이닝을 던져 38승을 올렸죠. 이 정도니 어지간한 투수에겐 등판기회가 없었죠.”

63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이 우승해 일본신문에 대서특필되자 김영덕은 모국 진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백인천에게 부탁했는데 한국해운공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처음에는 한 2~3년만 한국에 있을 계획이었는데 동료 성기영이 지금 마누라를 소개해줘 결혼하는 바람에 정착하게 됐지요.”

부인 김해영(70)씨는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숙명여대를 다니다 가정 형편으로 중퇴하고 직장생활을 했는데 ‘미스 해운공사’로도 뽑힌 미인이었다.

“당시는 한국말을 알아듣기는 해도 말은 잘 못할 때였습니다. 만나 보니 총명한 여자라 2세를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대시, 한국에 온 그 해 결혼했죠. 마누라 하난 잘 얻었어요. 이 나이에 매일 골프나 치고 하는 것도 다 야무진 마누라 덕입니다.”

김영덕은 한 수 아래의 한국 실업야구에서 페펙트게임(64년 대 조흥은행), 0점대 방어율 (64년 0.32, 65년 0.91, 67년 0.49), 다승왕(11승1패 68년), 54이닝 연속무실점(67년) 등 독보적인 활약을 보였다.

“당시 국내 야구 수준은 일본보단 훨씬 낮았지요. 포크볼과 싱커는 한국에서 내가 처음 구사했어요. 내가 슬라이더도 처음 던진 것으로 어느 기록에는 나와 있다는데 나보다 1년 먼저 한국에 온 사회인야구 출신 신용균이 63년 아시아선수권에서 아마 슬라이더를 던졌을 거예요. 재일동포 선수들이 한국야구의 수준을 올려놓는 데 공이 커요.”

69년 한일은행에서 은퇴하고 2년간 감독을 지낸 김영덕은 김응용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서울 장충동 지점 대리, 본점 국제영업부 출납역 등 은행업무를 보기도 했다. 77년 장충고 감독을 거쳐 그 해 천안 북일고로 옮겨 5년간 고교야구 감독을 맡았던 그는 프로야구가 출범하자 당연히 1세대로 합류하게 된다.

“OB와의 인연은 교포출신으로 나중 대한야구협회를 이끌었던 최인철 회장 때문에 맺어졌어요. OB는 원년 우승전력은 아니었어요. ‘깜짝 우승’의 비결은 박철순이 잘 던진 것도 있었지만 30대 중반의 노장 윤동균과 김우열이 리더역할을 확실히 해 준 것이 원동력이었어요. 사실 그들은 다른 구단에서 나이 때문에 뽑질 않았는데 김성근 코치와 상의해 선발했었죠.”

하지만 이듬해 에이스 박철순이 허리부상을 당하면서 팀은 전기 꼴찌, 후기 5위에 그쳤고 그가 영입했던 김성근 코치와의 갈등까지 생겨 그만두게 됐다. 이후 삼성에서 3년(84~86시즌), 빙그레(현 한화)에서 6년(87~93시즌)을 지냈다. 삼성에서는 전후기 통합우승을 이뤄 두 번째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이후 그라운드를 떠날 때까지 모두 6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도 준우승에 그쳤다.

“난 불운한 감독이었어요. 빙그레 시절 한두 번만 더 우승했으면 내 야구인생이 달라졌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감독은 생애 1000승, 타자는 2000안타, 투수는 200승 기록은 가져야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난 가장 먼저 500승을 달성했지만 결국 717승으로 끝나고 말았죠.”

김영덕에 대해 ‘승부를 위해 선수를 혹사한 감독’이라고 비난하는 팬도 많다. 그러나 그가 에이스가 시즌 전체를 책임졌던 그런 시대에서 살았던 인물임을 알고 나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감독으로서 자신의 기본적인 지휘방침이 ‘애정’이었다고 말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코치와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인간적으로 대하려 노력했고요.”

글·사진 = 이동윤기자 dy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