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훈맹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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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술의 발달이 인간 생활을 풍요롭게 한다는 역설은 시각장애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프랑스 육군대위 바르비에르는 어두운 밤에도 작전명령서 등을 손가락으로 읽을 수 있는 전투용 점문자를 만들었다. 그는 옆으로 6점 아래로 2점 모두 12점으로 된 이 야간문자를 시각장애인들이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1821년 파리의 국립맹인학교에서 이 문자를 시범해 보였다. 세살 때 송곳에 눈을 찔려 양쪽 시력을 잃은 루이 브라유는 1819년 이 학교에 입학했다. 맹인학교 교사가 된 그는 바르비에르의 야간 문자를 개선, 6점으로 구성된 점자를 1824년에 발명했으나 그가 죽은 2년 후인 1854년에야 비로소 이 점자는 공식 시각장애인용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이름을 따서 점자를 ‘브라유’라 부른다. 헬렌 켈러는 “브라유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장애인들이 절망에서 벗어나 마음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세상으로 가는 계단을 놓았다”고 칭송했었다.

시각장애인들의 훈민정음이란 뜻의 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은 1913년 설립된 제생원 맹아부(서울맹학교)의 초대 교사인 송암 박두성 선생이 만들어 1926년 11월4일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여섯개의 점은 두줄로 123, 456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ㄱ은 4, ㄴ은 1~4, ㄷ은 2~4이고, 아는 1~2~6, 야는 3~4~5 식으로 표기한다. 접속부사는 약자가 따로 있고 전화번호 등 숫자를 쓸 때에는 앞에 수표를 찍는다. 점자는 여섯개의 점을 찍어서 만들기 때문에 오른쪽부터 123, 456순서로 찍고, 읽을 때는 볼록한 부분을 뒤집어서 읽어야 하므로 왼쪽부터 123, 456이 된다.

1995년부터 장애인 특례입학 전형이 도입되면서 각 대학에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늘어났지만 이들을 위한 시각장애인용 전문서적은 구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한다. 일반출판물 점역화 작업의 70%를 하고 있는 한국점자도서관의 경우 점자책 2만3545권 중 문학서적이 절반에 가까운 1만578권(44.9%)인데 비해 사회과학 서적은 1687권(7.1%)뿐이다. 전국 유일의 점자도서관이 있는 대구대도 점자책 6000여권 중 800여권만이 사회과학서적이다. 2007년 3월말 현재 200만 장애인 중 시각장애인은 약 10%인 21만명, 이중 대학생은 400여명이다. 이들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때다.

[[최영범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