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최전선을 가다>볼라섬 주민 “인샬라” 외치며 제방쌓기 온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볼라섬의 툴라투리 마을의 강변에 설치된 제방위에 주민들이 서있다. 8년전 지어진 이 제방은 길이가 1㎞에 불과, 마을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였다. 볼라섬 = 신보영기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달걀 인공부화 사업으로 재기한 퍼즈를 라호만(왼쪽 두번째)이 집마당에서 증손자들과 함께 서있다. 볼라섬 = 신보영기자

기후변화는 가장 가난한 나라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큰 타격을 입힌다. 지난 7월말 찾은 방글라데시 볼라섬은 이 슬픈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었다. 한때 ‘기아’로 악명높았던 방글라데시에서도 가장 소득이 낮은 이 지역 주민들은 그래도 무슬림 특유의 ‘인샬라(신의 뜻대로)’를 되뇌이며 힘든 삶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집이 아무리 물살에 쓸려나가도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다시 판잣집을 세우는 질긴 생명력을 볼라섬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 유일한 해법은 제방 쌓기 = 볼라섬의 하키몬테니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수십명의 주민들이 기자를 에워쌌다. 가파르게 깎여나간 강변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어부들의 눈길도 모두 기자에게 쏠렸다. 외국인을 찾아보기 힘든 이 곳에서 낯선 외국여성이 신기한지 벌거벗은 아이들이 기자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침수피해가 심한 강변에는 가로, 세로 각각 30㎝ 크기의 네모난 돌이 드문드문 박혀있었다.

이처럼 제방을 쌓는 것이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 섬의 기후변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취한 조치다. 그나마도 길이가 0.5㎞에 불과,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지 의심스러웠다. 마을 주민 밧뚤(32)은 “제방을 만든 것도 넉달 밖에 안됐다”며 “마을을 지켜내려면 10㎞ 강변에 둑을 쌓아야 하는데, 언제 될지도 모르겠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침식작용 때문에 3번이나 학교를 옮겼다는 중학교 교사 무하마드 하미프(42)는 “마을 앞쪽과 뒤쪽에 1㎞씩만 제방을 쌓아도 마을을 살릴 수 있다”면서 “2년이나 요청했는데, 겨우 이 정도 해줬다”고 말했다.

하미프는 이어 “옆마을은 마을 대표가 환경부 장관 출신이어서 둑을 길게 만들어줬는데, 우리 대표는 힘이 없어서…”라며 말을 흐렸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강물의 퇴적작용으로 생긴 새로운 땅에 건설한 일종의 난민촌에도 돈 많고 힘 있는 자들이 먼저 자리를 얻는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이 때문에 땅을 잃은 주민과 새로 땅을 얻은 주민들간 소송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제방도 없이 방치돼 있는 나실마지 마을의 민뚜는 “아무리 지역정부에 제방을 쌓아달라, 새로운 땅을 불하해달라고 부탁해도 아무런 답이 없다”면서 “3~4년째 무조건 ‘기다리라’는 답변만 들었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이 뭐 어떻게 할 방법이 따로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 사라지는 섬…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 그나마 시민단체들의 덕분에 볼라섬 주민들은 조금씩이라도 삶의 희망을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가 설립한 ‘그라민 은행’으로부터 소액대출을 받는 것. 지난 5월 사이클론에 장남 살렘(14)을 잃은 모피 줄리스탄도 그라민은행 등 시민단체 2곳으로부터 2만타카(약 27만원)를 대출받았다. 뙤약볕에 앙상한 상체를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는 줄리스탄은 여전히 충격에 휩싸여있는지 기자의 질문에도 눈만 커다랗게 뜬 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하키몬테니 마을에서 1㎞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퍼즈를 라호만(80)은 달걀 인공부화로 위기를 극복한 경우였다.

밤에 떠나는 다카행 선박을 타기 위해 항구로 향하던 도중, 물을 얻어마시려고 잠깐 들른 민가에서 만난 라호만은 40명 대가족의 가장. 하얀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라호만은 집앞에서 따온 코코넛을 권하면서 “신기한 것을 보여주겠다”면서 닭장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판자로 얽어놓은 간이창고 안에는 짙은 어둠 속에 나무상자 3~4개가 놓여있었고, 안에는 담요로 싼 달걀들이 조심스럽게 놓여있었다.

바로 28년전 사이클론으로 집을 잃었던 라호만이 환경단체 코스트(Coast) 등에서 빌린 8000타카로 구입한 닭 50마리로 시작한 ‘인공부화’ 사업이었다.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조악한 수준이었지만, 라호만 가족은 인공부화로 매월 1만5000타카의 부수입을 얻었다. 하루종일 허리를 구부리고 벽돌을 부숴야 받을 수 있는 임금 100타카의 150배에 달하는 액수다.

라호만의 집에 세들어 있는 코스트 지역 지부의 사이드로 하만은 “주민들의 삶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지만, 주민의 의지와 환경단체의 기술이 합쳐지면 얼마든지 재난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볼라섬, 남의 죗값까지 안고 사라질까 = 그러나 볼라섬의 비극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시민단체들이 소액대출은 물론, 나무심기와 제방쌓기 캠페인을 벌이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기후변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섬의 소멸 시기를 늦출 수는 있어도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에는 온실가스를 쏟아내는 선진국들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 당장 제방을 쌓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난관에 빠져있다. 볼라섬에 1㎞ 길이의 제방을 쌓는데 소요되는 비용만 100만타카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70달러 안팎에 총인구의 45%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방글라데시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다.

볼라섬에서 활동하고 있는 ‘코스트’의 아티쿠 자만(34) 사무국장은 “집을 잃은 난민들을 돕는 기본적인 원조를 위해서는 최소한 1억타카가 필요한데, 돈을 모을 방법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6월말 방글라데시 영자지 ‘데일리 스타’는 ‘지구온난화와 방글라데시’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지리적 위치와 과도한 인구 때문에 21세기말 해수면이 90㎝ 상승하면 방글라데시 영토의 5분의1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문은 이어 “문제의 원인은 선진국들이 제공했는데, 값은 방글라데시가 치르게 생겼다”고 덧붙였다. 정말 방글라데시는 ‘남의 죗값’까지 함께 치러야 하는 것일까. 무심코 들른 이방인 기자에게 ‘저녁을 먹고 가라’며 붙잡던 라호만처럼 볼라섬의 ‘곤두(친구라는 뜻의 벵골어)’들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매일 뿜어대는 매연 때문에 삶의 터전이 가라앉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볼라섬(방글라데시)=신보영기자 boyoung2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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