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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기후변화 최전선을 가다 게재 일자 : 2007년 10월 10일(水)
화전·남벌…숨못쉬는 ‘지구의 허파’
9.인도네시아(상)-밀림이 사라진 보르네오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남부 빵깔란분 일대에서는 화전과 목재채취, 플랜테이션에 밀려 숲이 베어져나간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나무를 베어내거나 불태워 없애고 외국계 팜오일(야자유) 농장을 만들어 묘목을 심어놓은 모습. 빵깔란분 = 구정은기자
흔히 보르네오라 부르는 동남아시아의 거대한 섬에는 세 나라가 존재한다. 이 섬의 북부는 말레이시아 영토이고, 말레이시아로 둘러싸인 해안에 점처럼 박힌 소국 브루나이가 있다. 그 밖에 남부 대부분 지역은 인도네시아 땅이다. 이곳을 가리켜 칼리만탄이라고 부른다. 아마존과 함께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열대우림이 있는 곳이다. 밀림을 찾아 칼리만탄 남쪽 작은 도시 빵깔란분으로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야 했다. 지난달 말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자와(자바)섬 중부 스마랑에 내려 덜덜거리는 작은 비행기를 이용해 해협을 건넜다. 비행기 안에서 혹시나 칼리만탄의 밀림을 내려다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해보았지만, 빵깔란분 공항에 내리는 순간 기대는 사그라졌다.

◆ 검은 땅의 모자이크 = 빵깔란분의 웬만한 지역들은 밀림이 다 베어져 거대한 잡초들이 자라는 덩굴 숲이 되었거나, 팜오일(야자유)을 생산하기 위한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나마 푸른 빛깔이 살아있는 곳은 다행이고, 화전으로 불태워진 검은 땅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지난해 태운 땅과 새로 태운 땅, 숯처럼 검은 땅과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유난히 붉은 땅, 표백을 한 듯 흰 백토지대, 잡목과 덤불의 푸른 빛깔이 섞여 색색의 모자이크처럼 보였다. 주민들에게 밀림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밀림은 말레이시아 국경 근처 산지로 가야 한다”, “이젠 내륙에서 수백 ㎞를 가야만 밀림이 나온다”는 대답들만 돌아왔다.

칼리만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토탄(土炭) 지대다. 토탄은 나뭇잎들이 오랜 세월 동안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숯덩어리 흙을 말한다. 주민들은 이 가연성 토지에서 나무와 풀을 태워 없애고 화전 농사를 짓는다. 빵깔란분 주변 까랑안냐르 마을을 찾아갔다. 곳곳에서 시커멓게 그을린 땅 위에 덤불들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길가엔 ‘토지관리부 관할지역’이라는 표지판이 선명했지만 관청에서도 사실상 눈감아주기 때문에 화전은 근절되지 않고 있다.

◆ 토탄 지대에 솟아오르는 연기 = 이 지역에서는 비가 와도 땅속 1m 깊이에까지 불씨가 숨어있어 잡히지를 않는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토탄층 화전을 주지사령으로 금지시켰다지만 사실상 통제 불능 상태인 것으로 보였다. 교민 김준형(29)씨는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건기만 되면 길섶에 뻘건 불씨들이 깔려있는 걸 볼 수 있다”고 말했다.

1999년 이후 해마다 반복되는 연무사태는 화전과 자연 산불 때문에 일어난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때문에 산림의 자연 발화(發化)가 많아진데다 화전도 줄지 않아 화재가 빈발하고 규모도 커지는 것. 인도네시아 국제임업연구센터(CIFOR)에 따르면 칼리만탄의 토탄 지대는 지구 지질에 내장된 탄소량의 21%를 갖고 있다. 이 탄소덩어리의 두께는 최대 깊이 20m에 이른다. 숲을 베어내거나 태워 없애면 토탄 흙의 탄소가 대기 중으로 방출돼 지구온난화를 일으킨다. 보르네오의 밀림이 중요한 것은, 말 그대로 ‘지구의 허파’이기 때문이다. 허파가 상하면 숨을 쉴수 없듯 아마존과 보르네오의 열대우림이 파괴되면 지구 전체 탄소순환체계가 무너진다.

◆ 강우 패턴 달라지고 바닷물 역류 = 환경단체들은 칼리만탄의 밀림이 남벌과 화전으로 사라지면서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로 인한 기후변화의 영향을 이곳 사람들은 부메랑처럼 고스란히 돌려받고 있다. 강우 패턴이 바뀐 것이 가장 두드러진 변화다. 우기엔 매일 한차례씩 열대성 소나기(스콜)가 오고 건기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비가 내리는 것이 오랜 패턴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엔 비가 아예 오지 않는 초(超)건기가 왔고, 올해엔 하루에도 8시간씩 비가 내리는 우기가 찾아왔다.

빵깔란분 일대를 흐르는 아룻강 양옆에는 수상 가옥들이 늘어서 있다. 이곳 주민들은 수도도 전기도 없이 강물을 마시며 산다. 그런데 지난해엔 가뭄 때문에 바닷물이 역류해 들어왔다. 근래엔 악어 같은 파충류가 뭍으로 자주 올라온다고 한다. 강가에 자리 잡은 붕우르 마을에서 만난 구나완(59)씨는 무너져가는 판잣집에서 자식들이 불법 벌목을 해 가져오는 돈으로 살고 있다. 빗속에서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그는 “요샌 강에 고기가 줄고 크기가 작아졌다”며 아쉬워했다.

◆ 연례행사가 된 대(大)연무 = 한국계 임업회사 코린도 합판사업본부의 허광복 빵깔란분 본부장은 1980년대 초반부터 20여년간 이 일대의 변화를 지켜봐왔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실감한다고 했다. 허 본부장은 “작년엔 합판공장 용수를 구하러 강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며 “비 오는 시기와 양을 예측하기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열대우림의 나무들은 표토층에만 뿌리를 내리는데, 몇 년 새 바람이 강해져 나무가 쓰러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엘니뇨가 극심했던 1998년 칼리만탄에서는 엄청난 화재가 일어났다. 동남아 일대를 뒤엎는 연무(燃霧) 사태는 이후 연례행사처럼 굳어졌다. 지난해 가을에는 연무 때문에 한 달 가까이 몇m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고 비행기도 모두 끊어졌다고 한다.

주민들은 “몇 년 새 산불이 잦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삼림을 파괴하는 화재에다 토탄 지대에 묶여 있던 탄소들까지 새어나와 지구 대기에 이중의 부담을 지우고 있는 셈이다.

빵깔란분(인도네시아)=구정은기자 koje@munhwa.com

후원 : 한국언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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