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셈법에 묻힌 ‘썰렁한 대선’

대선같지 않은 대선이 치러지고 있다. 이번 대선과 내년 4.9 18대 총선이 뒤엉켜 진행중인 데다 장기간 1인 독주체제가 지속된 게 최대 이유로 지목된다. 11일 대선을 8일 앞둔 시점에서 승패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도가 현저히 떨어지면서 사상 최저인 60%중반 전후의 투표율이 예상된다. 역대 대선에서 일주일여를 남겨놓고 발생한 긴급 돌발상황도 이번에는 예상키 어렵다. 역대 대선을 강타했던 1992년 ‘초원복집사건’, 1997년 ‘긴박한 외환위기 대응’, 2002년 ‘후보단일화 막판 철회’와 같은 극적 변수가 이번에는 없어 보인다.특히 내년 총선 바람이 시간을 거슬러 올 대선을 집어삼키고 있는 양상이다.

여의도 정치의 고공전과 전국 현장에서의 백병전 모두 대선·총선 논리가 뒤엉켜 진행중이다. 어느 후보도 예외없이 총선대비 전략을 함께 구사하고 있다. “압도적으로 이기게 해달라. 동서를 가로질러 과반 지지를 얻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호소 역시 총선대비용이다. 작은 정부, 금산분리 완화, 기업투자를 위한 규제철폐및 제도개선 등의 공약실천을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고 총선 과반의석 확보를 위해 이 후보는 “제대로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안정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설득중이다. 대선·총선 동시 압승전략이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의 대선무대 등장 자체가 총선용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이회창 후보가 ‘참보수정당’을 표방하며 “진정한 보수의 길을 찾고 정치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신당창당을 공언한 건 충청권을 기반으로 한 총선 정치세력화 포석이다.

문 후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간 단일화 무산 뒤에는 내년초 정계개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문 후보의 정치행보가 깔려 있다. 문 후보측은 “신당이 (대선패배로) 불임정당임이 확인되면 창조한국당이 건강한 미래세력의 주축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당의 ‘BBK 수사검사 탄핵소추안’ 제출은 대선 쟁점화를 넘어 총선까지 내다본 전략적 승부수의 성격이 강하다. 오충일 신당 대표는 “대선 이후에도 승패와 관계없이 BBK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다”며 총선용 쟁점화를 시사했다. 신당은 ‘삼성특검‘, ‘BBK특검’ 카드를 통해 반부패전선을 형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이같은 대선후보들의 총선행보는 20년전 ‘87년 대선∼88년 총선’에서의 다당제 출현구도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더블스코어로 뒤지고 현 대선후보들이 87년 상황을 그리며 다당제의 주인공을 꿈꾸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선·총선이 맞물린 상황이 다당제를 만들 풍토를 조정하지만 당시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은 확고한 지역기반과 지지층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진단했다.

현장에서는 이날부터 시작되는 총선예비후보등록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사퇴가 잇따르자 예산낭비, 자치행정 공백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유권자 3767만여명이 참여하는 이번 대선 투표율은 60% 중반대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02년 대선 투표율은 70.8%였고, 당시 대선최저투표율을 기록한 바 있다.

김상협·윤석만기자 jupit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