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선조의 삶 속으로

  • 문화일보
  • 입력 2008-02-2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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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물은 쉼 없이 흐르고/ 삼각산은 끝간 데 없이 높아라./ 강산이 변해도/ 간사한 무리는 없어지질 않네./ 한 사람이 중상모략을 하면/ 여러 입들이 차례로 전해/ 치우친 말을 믿게끔 하니/ 정직한 이는 어디에 발붙일까./ (중략)/ 옛 성인 훌륭한 말씀에/ 향원(鄕愿)은 덕(德)의 적(賊)이라 했지.”

다산 정약용(1762~1836)이 간사한 신하가 득세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시다. 마지막 구절의 ‘향원’이란 겉으로는 그럴 듯해 뭇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나 속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다. 옛 성인, 즉 공자는 이런 사람을 가리켜 ‘덕의 적’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다산의 시 선집을 비롯, 최치원·이황·이덕무의 시와 산문 선집을 묶은 ‘우리 고전 100선’(돌베개) 2차분 4권이 최근 출간됐다. 지난 2006년 11월 1차분 첫 6권이 나온 ‘우리 고전 100선’은 박희병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중심으로, 학계 전문가들이 우리 고전의 ‘국민 독본’을 만들고자 시작한 시리즈.

1차분에서 유금·김시습·이규보·홍대용·장유·신흠 등 모두 6명의 작가를 소개한 데 이어 이번에 2차분이 출간됨으로써 전 10권 세트(사진)가 꾸며졌다. 제7권에 해당하는 고운 최치원(857~?) 선집에서 특히 눈에 띄는 글은, 널리 알려진 ‘역적 황소에게 보낸 격문’. 이른바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이다. 당나라 희종 때 농민 반란을 주도, 장안에 정권을 세웠으나 결국 실패한 ‘황소의 난’은 당나라를 붕괴시킨 결정적 사건의 하나로 꼽힌다. 당시 최치원은 토벌사령관 격인 제도도통 검교태위를 대신해 이 글을 지었다. 격문 중 “천하의 모든 사람이 너를 죽이고 싶어 할 뿐만 아니라 땅의 귀신들도 너를 죽이고자 의논하였을 터”라는 대목을 읽던 황소가 혼비백산, 자기도 모르게 침상에서 떨어졌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명문으로 유명하다.

최치원 선집을 편역한 김수영씨는 이 글에 대해 “힘찬 필치와 설득력 있는 논거로 도저하게 주장을 전개함으로써 상대를 꾸짖는 동시에 회유하는 솜씨가 대단하다”고 평했다. 이 같은 격문뿐만이 아니라 고운의 시는 역설적으로 그 애잔함에서 백미를 다툰다.

“가을바람에 괴로이 시를 읊건만/ 세상엔 날 알아주는 벗이 없어라./ 창 밖에는 깊은 밤 비 내리는데/ 등불 앞 내 마음은 만리 먼 곳에.”

이 시는 당나라에서 신라로 돌아온 후 쓸쓸히 지냈던 시인이 중국의 벗들을 그리워하며 쓴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당나라에 있을 때 이방인으로서 소외감을 느꼈던 최치원은 정작 고국에 돌아와서도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8권은 퇴계 이황(1501~1570)의 시와 산문을 가려 뽑았다. ‘도산에 사는 즐거움’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는 성리학적 논변을 펼치는 퇴계, 고향에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움과 반가움을 느끼는 퇴계, 꽃이 져서 상심한 퇴계 등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글들이 수록됐다. 9권은 조선 후기 문인이며 지식인인 이덕무(1741~1793)의 시와 산문 선집으로, 연암그룹의 핵심 멤버였던 이덕무의 활동상과 조선 후기의 지적 흐름을 읽어볼 수 있다. 10권의 부제는 ‘다산의 풍경’. 정약용의 시 선집으로 사회현실을 시로 노래한 다산의 내면 풍경을 엿볼 수 있다.

시리즈의 총괄기획을 맡은 박 교수는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문화다양성은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하지만 문화적 다양성 없이 우리가 온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는가” 하고 반문했다. 따라서 “동아시아인, 그리고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은 인권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며 “우리 고전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관심의 확대가 절실히 요망된다”고 강조했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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