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초대석>“지나친 온정주의 벗고 법·원칙 바로 세워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신창섭기자

막상 자리에 앉혀놓고 보면 원래 제자리를 찾은 양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다. 2일 오후 인터뷰를 위해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에서 만난 김경한 장관이 그랬다. 김 장관 자신도 장관 취임 소감을 묻는 질문에 “법무부를 떠난 지 6년 만에 돌아왔는데 오랜기간 근무했던 곳이기 때문인지 마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사 생활 30년중 14년을 법무부에 근무한 전무후무한 기록를 갖고 있다. 그런 공력이 발휘돼서일까. 정부 부처별 업무보고에서 법무부는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이례적으로 칭찬을 받았고 종합평가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새정부의 최우선 목표인 경제살리기에 꼭 필요한 ‘법치주의 확립’과 ‘기업하기 좋은 법제 정비’ 등을 주요 과제로 선정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법무장관 후보로 뒤늦게 거론됐는데 대통령과 인연이 있었습니까.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입니다. 다만 장관 내정 통보를 받고 처음 면담을 하던 날 대통령께서 ‘여러 사람이 천거해 일찌감치 법무장관으로 점찍어두었으며 중요한 일을 믿고 맡기니 열심히 잘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장관 재직중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최근 십수년에 걸쳐 편향된 이념이나 대중영합주의에 빠진 나머지 법질서 파괴행위에 대해 지나치게 소극적 온정주의를 취해왔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생각입니다. 법과 원칙이 바로서야 경제살리기도 가능하고 국민들도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으며 선진일류국가도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에 끊이지 않는 폭력사태와 떼법문화는 반드시 청산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권교체기엔 통과의례처럼 사정정국이 조성되곤 했는데 사정계획이 있으십니까.

“정권이 바뀌면 흔히 종전 정권에서 은폐되었던 부정·비리가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와 경제발전을 좀먹는 부정과 비리에 대하여는 그것이 어느 정권 하에서 생긴 것임을 불문하고 사정활동을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전개해 줄 것을 검찰에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는 우리 헌법의 최고 이념으로 이런 가치가 무너지는 가운데 얻어지는 실체적 진실은 무의미하므로 수사과정에서 사건관계인의 인격이 존중되도록 수사기준과 절차를 확립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검찰에 재직하다 변호사 활동을 하는 분들 중에는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기업 수사시 정상적 경제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과도하고 불필요한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 소환 등은 절제해야 합니다. 법무부 업무보고 때 대통령께서 ‘검찰이 수사를 하다 문제가 없으면 즉각 중단하는 것도 용기다’고 말씀하셨는데 옳은 말씀입니다. 특히 임채진 검찰총장이 이 부분에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어 요즘은 그런 현상이 거의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검찰 수사과정에서 참고인은 물론 피의자 소환시에도 초상권을 보호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성진 전 장관은 삼성특검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혔고 최근에는 특검무용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직인수위에서 거론되기도 한 특검상설화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999년부터 현재까지 총 7회에 걸쳐 특검을 해보았지만, 그 요란함과 막대한 예산투입에 비추어 그 결과가 만족스러운지에 대해 많은 국민이 회의를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또 특검에는 권한만 있고, 이에 따른 의무와 책임이 없어 만의 하나 남용될 경우 대처방법이 마땅치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더구나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 여론의 향배에 따라 특검이 도입돼 수사의 정치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헌법상 권력분립의 원칙 및 평등의 원칙에 비추어서도 문제가 있어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총선이 치러지기 전에는 불법선거운동에 대해 강력한 단속의지를 밝혔다가 총선 이후 검찰 수사 및 기소나 재판과정에서 처벌 수위가 낮아지는 경향이 없지 않았습니다.

“선거사범, 특히 당선자에 대한 수사나 재판이 지연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사건보다 신속한 처리가 요구됩니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돈과 거짓말로 당선돼도 소용없다’는 인식이 정착될 수 있도록 선거 후 당사자간에 고소가 취소되었다고 수사가 흐지부지 종결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또 선거사범의 경우 불법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되도록 수사검사가 직접 공판에 관여케 하는 등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단행된 사면이 사면권 남용이라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사면을 한다고 할 때 이것만은 안된다고 반대할 부분이 있다면.

“사면에 있어서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당리당략적인 사면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언론의 표현처럼 ‘판결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 단행하는 조기사면은 사법정의를 해칠 우려가 있습니다.”

―기업하기 좋은 법제 정비 차원에서 도입을 추진 중인 ‘포이즌 필’ 등의 경영권 방어수단에 대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부실기업까지 보호하는 도덕적 해이의 위험성이 크고 해외투자 유치에 걸림돌이 된다’며 난색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법무부는 소관부처로서 해당문제를 장기간 연구해왔고 재경부등 관련 부처와 오랜기간 실무협의를 거쳐 현재 부처간의 이견이 해소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해 효과적인 경영권 방어수단을 부여하면서도 기존 주주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남용되는 일이 없도록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불법파업이나 불법집회 등을 근절하기 위해 추진 중인 방안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불법파업이나 불법집회의 가해자는 형사처벌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재산상의 피해에 대해서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법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국가나 국민이 불법집단행동으로 피해를 볼 경우 배상명령제도를 통해 손쉽게 피해를 보상받도록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노조가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맹점을 악용, 일단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해 사측을 압박하면서 노사교섭을 진행하는 관행도 문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관련 조항을 개정, 노사교섭 결렬선언이 있어야 찬반투표를 실시할 수 있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안양초등생 납치·살해사건, 일산 어린이 폭행·납치미수사건 등 강력사건이 잇따르면서 사형제 존치론이 다시 힘을 얻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로서 사형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형제 존폐론은 오랜 세월에 걸쳐 격렬한 역사적 논쟁의 대상이 돼왔고 전국민적 콘센서스도 아직 미흡한 상태입니다. 사형제 존폐 여부는 국가형벌권의 근본과 관련되는 중대한 문제이므로 사형의 형사정책적 기능, 사회 현실, 국민 여론 등 여러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신중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제 개인의 어떤 입장에 구애됨이 없이 시간을 두고 한층 더 심층적인 연구와 심각한 고뇌를 거쳐야 할 것이나, 다만 지금 당장 사형제도를 폐지할 단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인터뷰 = 박민 사회부차장 minp@munhwa.com

[ 김경한 장관은 누구 ]

김경한(64) 법무부 장관은 2002년 서울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기까지 30여년간 법무부에서 14년을 근무했을 뿐 아니라 서울지역에서만 26년여를 근무했을 정도로 검찰 내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그는 검찰내 핵심 보직으로 꼽히는 검찰 1과장과 기획관리실장, 법무차관을 두루 거치는 등 법무행정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퇴임후 검찰 출신 변호사로는 처음으로 당시 국내 3대 로펌 중 한 곳인 법무법인 세종의 대표변호사를 맡기도 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김 장관은 10여년 전부터 한센병환자 돕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고 변호사 시절 영등포교도소 교정위원을 맡는 등 소외계층을 위한 활동도 활발하게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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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기기자 bkikim@munhwa.com